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본 사람은 약 500명이었지만 그 중 380명은 집으로 돌아갔고, 120명만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을 기다렸습니다.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것이 휙 하더니 120명이 있던 방에 가득 차면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혀같이 갈라진 불이 임하였습니다. 그 순간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로 120명의 제자들이 방언을 하는데, 16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제자들이 자기 나라 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을 보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사람들 술에 취했는가? 참 이상하네” 하며 사람들이 놀랍니다. 무교동 코오롱빌딩 앞에서 스낵카 ‘석봉토스트’로 유명한 김석봉 사장의 성공스토리 뒤에는 어둡고 고단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전북 정읍에서 날품팔이하던 부모 아래 6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4살 때 공장 다니는 형을 따라 성남으로 갔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사, 정비 공장과 세차장, 합판 공장, 컨테이너 공장 등을 전전했고, 과일 행상도 했습니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 신학교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1997년 시작한 것이 토스트 장사입니다. 그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고급화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세련된 유니폼을 차려 입고 달걀도 비싼 영양란으로 바꾸고 조미료와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새벽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토스트를 구워 팔고 오후에는 하
루 100개의 토스트를 만들어 노숙자, 거리의 노인들과 나누며, 매일 오후에는 고아원,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인형극 공연봉사를 합니다.
3년 전에는 위암 판정을 받아 위의 3분의 2를 잘라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살아있어 기뻐! 일이 많아 바뻐! 하나밖에 없는 나는 예뻐!”라는 ‘3뻐 다짐’을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김석봉 사장은 빵을 굽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토스트 하나로 연봉 1억을 버는 노점상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샌토매니아’라는 브랜드로 중국의 연대에까지 진출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중에서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누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자신의 언어로 간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