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사랑에 대한 또 한 편의 생각을 담아낸 허진오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는 잔잔하지만 여운이 남는 수작이다.
허진오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이 가장 잘 담겨진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유지태(상우)와 이영애 (은수)의 연기는 담담하고 절제 되어 있다.
소도시의 라디오 방송국 진행자이면서 프로듀서인 은수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엔지니어링인 상우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잦은 만남을 가진다.
갈대밭에 서걱거리는 바람소리,개울가의 물소리,소나무 숲에서 이는 바람까지 그들에겐 자연을 징검다리 삼아 점차 가까워 진다.
한번의 이혼의 상처를 가진 은수는 외로움에 익숙치도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지도 못하는 현실적 사랑에 눈을 두고 있으나 상우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상우는 은수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리움을 알기 시작한다.
그녀가 있는 소도시를 찾아가는 그의 얼굴은 연인에 대한 주체못할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다.
사랑을 시작한 모든 연인들이 공감하는 그 보고픔에 대한 갈증과 한밤중에도 연인을 찾아가는 그리움에 대한 영상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들의 만남이,사랑이 허진오 감독이 말하는 봄날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봄날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는 것이라는 그 진부함이 이들에게도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은수는 사랑이 자신의 삶을 ,미래를 바꾸어 줄 수 없을 거라는 현실적 거리때문에 상우를 멀리하기 시작하고 결국 사랑에 대한 갈등을 하면서도 현실에 손을 내밀고 만다.
" 우리 헤어져"
은수가 말했다.
"내가 잘 할게"
상우였다.
그녀가 돌아섰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상우는 사랑에 대한 이 한마디를 남겼다.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맘이 변하는 거야"
상우의 사랑의 방식은 자기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었지만 은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혼의 상처를 가진 여자의 모습이다.
상우에겐 치매에 걸려 젊은 시절의 남편과 사랑을 기억하는 할머니가 있다.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다"
그 할머니가 말해준 사랑의 처절한 모습이다.
할머니에겐 젊은 시절 자신을 버리고 간 젊은 할아버지의 모습만 가슴에 남아 있고 어느 봄날 그 그리움을 찾아갔는지 아니면 그리움을 끝내기 위해서인지 연분홍빛 한복과 고은 양산을 쓰고 집을 나갔다.
상우의 사랑이 바로 할머니가 간직한 사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허진오 감독은 영상으로 잡아냈다.
은수와 헤어진 후 사랑에 대한 아픔만큼 쌓인 술병, 그리고 그 봄이 다시 왔다.
어느 날 은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그들은 만난다.
벗꽃이 휘날리는 그 봄날에 은수는 상우의 팔짱을 끼지만 상우는 그녀의 손을 떼어 놓는다.
가버린 사랑에 대한 그의 상처가 아물고 있었고 사랑이 변한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 준 것이다.
벗꽃 길에서 그들은 이미 잊혀진 연인처럼 아팠고 그 영상이 하도 아파서 잊혀지지 않은 장면이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은 열병처럼 왔다가 잊혀지고 또 그 열병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지는 것,상우가 앓았던 그 사랑의 상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은 순간,봄 날같은 순간이었음을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래된 가요가 흐르고 영화는 모두가 그런 사랑에서 헤매였음을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