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우리 헤어져."
그는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낌새도 없었는데.
왜?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한 행동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나?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보도블럭 위를 걷고 있는, 내 발에 신겨진 구두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주며 바닥이 단단하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물컹하다. 끈적하고 울렁인다. 마치 진창 위를 걷는 느낌? 다른 사람들은 힘차게 걷고있는데, 나는 휘청인다. 귀 속에 있는 반고리관이 고장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
3일째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그날 화장도 지우지 않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 덕에 지금 내 베게는 화장품이 가득 묻어 더럽다. 눈물도 묻어 더럽다. 그리움도...슬픔도...
*
화장실이 너무 급해 어쩔수 없이 침대에서 나왔다. 얼굴이 가렵다. 손으로 만져보니 우둘투둘, 말이 아니다. 방 안도 한번 둘러보았다. 화장대에 먼지가 1cm는 쌓인것 같다. 안그래도 도로변에 지어놓은 빌라라서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금방 공기가 탁해지는데.
볼일을 보며 거울로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Oh! Jesus.
*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려 애썼다. 얼굴만 빼면, 이제 모든 것이 정상이다.
방 안을 한번 죽- 둘러본다. 깨끗하다.
그나마 내가 프리랜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힘든시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겠지.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내생각을 한 번 이라도 했을까...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
핸드백을 정리하다 잊고 있던 휴대전화기가 생각났다.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고,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 39통
수신분자 5건
나이를 먹으니, 문자보다는 전화가 더 많이 온다. 부재중 전화 39통 중 15통은 나와 정신적인 연인인 휘경이에게 온 것이었다. 15통은 내게 자주 일을 의뢰하는 대학선배에게 온 것이었고, 3통은 그에게서, 다른 3통은 P에게, 또다른 3통은 J, 나머지 한 통은...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딸내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엄마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
휘경이에게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 전화로 이야기 하면 하루종일 말해도 다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 헤어졌어."
휘경이를 만나면 술집이 떠나가도록 그새끼 욕을 할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이 말을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흐어어..어떡해.. 흐어어엉~"
술집은 욕 대신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 사실 지난주에, 그러니까 네가 헤어진 다음날, 네 애인이랑 만났어."
네가 왜? 뭐하러? 너는 그사람 잘 알지도 못하잖아! 목구멍에서 수많은 말들이 맴돈다.
"그래서?"
"그사람이 그러더라, 너 잘 챙겨주라고. 너한테는 말 못했지만, 진짜 사랑했다고, 그런데 헤어져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 말은 무슨 말이야?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자기도 어쩔수가 없데. 그사람 진심같더라. 너 사랑한다는 말."
휘경이는 그에게 감화된 것 같다. 남자들이 하는 말중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중에 하나,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네가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인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