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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봉준호의 영악함(스포일러)

김기환 |2006.08.10 02:31
조회 206 |추천 3


 

* 영화의 시작

 

영화의 시작을 생각해보자. 포르말린 버리는 장면(그건 프롤로그에 가까운 장면이니)이후, 강두가 잠을 자고 - 강두의 가족에 대한 간략한 설명 - 괴물의 등장 - 아수라장이 된 한강 - 괴물의 살육 - 잠깐의 대항과 포기 -  도주 중 현서의 손을 놓치고 - 현서의 납치 - 현서와 함께 사라진 괴물, 상황종료. 

 

그야말로 대범한 설정과 부족함 없는 리얼리티(이전에 한강에 나타났던 괴물은 '둘리'였고 게다가 그건 만화였다.) 잘 짜여진 동선과 카메라 워킹은 '괴물'과의 추격과 도주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아찔하도록 잘 담아낸다. 또한 현서의 손을 놓친 순간 강두의 절망감과 현서와 괴물이 한강으로 사라지는 순간의 (비현실적인) 허탈함, 게다가 이 와중에도 봉준호표 유머들이라니. 이 15분간 변하는 감정들은 다양하며 굉장히 극적이고 무엇보다 마지막의 허탈함으로 집중하고 있다.

 

이 15분은 유례없는 <괴물>의 관객동원보다도 실로 한국영화에 유례없는 충격적인 오프닝이었다. <괴물>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갖고 입장한 관객이든간에 이 오프닝으로 <괴물>은 관객을 단번에 제압해버린다.(아마도 이 때문에 혹평은 나와도 돈 아깝다는 말은 안 나오는게 아닐까? 110억의 제작비나 7000원의 입장료나)

 

<괴물>에서 가장 훌륭했던 장면은 이 장면을 포함해서 세 장면인데, 변희봉이 괴물에 목숨을 잃는 장면, 현서가 탈주에 실패해서 괴물에 습격당하는 장면. 이 장면들은 모두 <괴물>의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장면들이다. 봉준호감독이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느껴지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훌륭해야할 장면을 가장 훌륭하게 만들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 영화의 크기와 이야기의 크기.

 

- Size does matter.

 

<고질라>의 어리석음은 응당 스스로를 반추해야할 영화보다 훌륭한 저 <고질라>의 광고 카피를 단순무식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크기가 문제인 것은 맞는데 '커야'하는 것이 아니고 '작아야'한다. 물론 거대한 고질라가 뉴욕 한복판을 휩쓴 장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장면은 뭐랄까 광안대교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냥 흥미로웠을 뿐이다. 단지 크기가.

 

<괴물>은 굉장히 영리한 영화이다.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던 야심만만한 '대작'영화들은 그 크기가 자신을 갉아먹었었다.(<내츄럴 시티>, <무사>, <로스트 메모리즈> 들 수 있는 예는 아주 많이 있다.) 거대한 스케일, 그에 걸맞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뭔가 재밌는 것이 많아 보이긴 한데 제대로 정리는 안된다. 정리가 안되니 그저 관객들에게 꾸역꾸역 이미지만 주입시키는게 고작이었다.(게다가 그 이미지라는 것이 조성모 뮤비같은 비극적인 죽음, 그에 따른 슬픔 따위다.)

 

문제는 크기다. 고질라의 크기가 아니고 이야기의 크기. 맥기 선생님은 '창조'란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그것에 걸맞는 커다란 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될수록) 작은 원 안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때 나타난다 하셨다. 

 

'한강'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가족'이라는 제한된 인물들에 의존한 채 <괴물>은 과욕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물론 봉준호라는 감독이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결합시키는 재주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괴물>에서는 (소위 바둑에서 말하는) '맛'으로 영화 중간중간에 심어놓았을 뿐이다 - 뭐, 생각처럼 유쾌하진 않았던 블랙코미디 였지만.

 

역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부분이 아닐까 싶다. '한강'이라는 배경으로 보나(영화 속 한강의 그 음울하고 익숙하기에 더 공포스런 이미지들을 떠올려보라) 등장인물들 면면을 보나 '괴물'이라는 소재로 보나 <괴물>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즉, 봉준호감독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여지'가 아주 많았다는 점이 <괴물>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아쉬움이랄까.(박찬욱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처럼 계층의 문제에 집중할 수도 있었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복수'라는 폭력을 선정적으로 그릴 수도 있었다.) 이런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유혹은 그 무엇보다 떨쳐내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괴물>은 이야기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괴물>에는 '괴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박사 두 명이 나와서 괴물에 대해 떠들어대느니, 바이러스에 대해서 설명한다느니 이런 장면이 괜히 쓰이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괴물'이 물고기를 토하는 장면을 보고 괴물이 새끼를 낳았다는 '괴물'에 대한 앎의 욕구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괴물'이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것만큼의 임팩트가 영화가 끝나고 느껴지지 않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의 어색한 CG 때문이 아니라 '괴물'이 평면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새삼 <에이리언>의 위대함이 생각난다.

 

물론 <괴물>은 '현서'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로 이런 것들은 보완한다.(영악하게 '현서'는 비중이 작은 것처럼 홍보되었다.) 현서는 이 영화에 '희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고아성의 연기는 누구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를 <괴물>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소박함과 간결함으로 획득해낸다.

 

조금은 실망적이긴 해도 <괴물>은 그동안 많은 한국영화들이 그 크기에 짓눌려 실패해 왔던(또한 많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실패해왔던) 이야기라는 줄타기를 (여러 것들을 포기함으로써) 성공한 듯이 보인다.

 

 

* 영화를 만든다는 것

 

은 역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자가 된 영화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100억이 들어간 영화의 이야기를 저예산 독립영화나 김기덕감독의 영화의 그것과 같은 관점으로 읽어야 할까? 그렇다고 마냥 생산자의 입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는 없다. 아무리 고생고생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해도 그것이 하품을 참아가며 2시간을 극장에 앉아있어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한국영화 산업 속에서의 거대 자본의 투입과 이와 많은 관련을 갖고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산업에서 일종의 '실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간의 '과욕'은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 '과욕'이 누군가의 꿈이기도 했을테니까. 

 

이 영화를 보는 관점만큼이나 <괴물>의 이야기는 미묘한 줄타기를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사실 <괴물>의 이야기를 보면 강두의 동생이나 누나는 별 필요 없는 역이라는 생각이 든다.(박해일과 배두나의 연기가 실망스러워일까) 아니, 그 작았던 비중에 비해서는 너무 뒷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서로 너무 많은 갈등관계를 지닌 탓이라 생각한다.)라고 할까.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강두를 둘러싼 바이러스와 정부의 대응 문제는 블랙코미디라기엔 너무 이야기의 비중이 컸고 그 크기에 비해선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봉준호감독은 최선의 선택을 한 것 이란 생각이 든다. <괴물>은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대작보다 그 크기가 작은 영화(제작비는 어떤 영화보다 많이들었어도)였고 그 영악함으로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영화의 완성도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 속의 뛰어난 추격장면이었다. 영화를 보고 다음 작품은 스릴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괴물>은 만족스럽지만 살인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넘실거리는 논을 생각하면 음울한 한강은 역시 뭔가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제멋대로이고 순 억지이기 때문에 영악한 타협이 힘들다. 꼭 맞는 영화가 나타날 때까지 찾아 헤매는 수 밖에.

추천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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