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둘’을 의미하는 듀스는 1992년 절친한 친구 사이인 이현도와 김성재의 2인조로 결성되었다. 1972년 생 동갑내기인 둘은 고교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가수를 꿈꿔 왔다. 특히 관절을 격하게 꺾는 것이 특징인 두 사람의 댄스는 춤꾼들 사이에서도 흉내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었고, 특히 이현도의 경우에는 작곡과 프로그래밍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현진영의 백댄싱 팀인 ‘현진영과 와와’에서 활동하다가 제작자의 눈에 띄어 듀스를 결성하게 된다.
듀스는 서태지 이후 한창 댄스그룹들이 창궐하던 1993년 데뷔 음반 [Deux]를 내고 활동을 시작했다. 고만고만한 기량의 댄스팀들 사이에서 듀스는 특별한 존재로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었다. 격렬하고 힘에 넘치는 남성적인 안무와 강렬한 힙합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특히 서태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속사포 같은 랩까지 가미하고 있었다. 기존의 얌전하고 예쁘장한 댄스 그룹들과는 차별화되는 강렬한 이미지로 듀스는 단숨에 정상의 그룹으로 떠오르게 된다. 첫 음반에서는 타이틀곡인 ‘나를 돌아봐’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잠깐의 활동 중단 이후 발표된 2집 [Deuxism]에서 듀스는 1집에 비해 한층 진일보한 음악으로 돌아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게도 무려 14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섬세하고도 현란한 화성 전개와 사운드 구조가 펼쳐지는 타이틀곡 ‘우리는’을 비롯해 라임의 중요성을 파격적인 형태로 보여준 ‘Go! Go! Go!’, 랩 가사도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무제’ 등 놀라운 곡들이 담겨 있었다. 음악성과 대중성이 완벽하게 조화된 듀스의 2집은 ‘우리는’이 정상을 휩쓸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특히 이현도는 서태지와 견줄 만한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2집의 성공으로 고무된 듀스는 활동 중단 기간 동안 리믹스 음반을 내놓는 색다른 시도도 감행한다. 1994년 발표된 비정규 음반 [Rhythm Light Beat Black]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리믹스 음반은 기존의 히트곡들을 전혀 새로운 분위기로 선보이면서 정규 음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고, 또한 신곡인 ‘여름 안에서’가 히트하며 공백 기간을 효과적으로 메우는 역할을 했다. 1995년에는 댄스 그룹으로서는 드물게도 라이브 음반인 [Deux Live 199507151617]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1996년 듀스의 3집 음반이자 마지막이 된 음반 [Force Deux]가 발표된다. 듀스가 그간 선보인 모든 음악적 아이디어가 총 집결된 3집은 듀스의 음반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훵크와 재즈를 결합시킨 세련되면서도 그루브감 넘치는 음악은 이현도의 음악 세계가 단순히 힙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타이틀곡 ‘굴레를 벗어나’를 비롯해 김성재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상처’가 히트했고, ‘의식혼란’과 ‘Message’ 등의 곡은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듀스는 3집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한다. 그들의 해체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들이 나왔지만, 진정한 이유는 본인들만이 알 것이다. 해체 이후로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는데, 이는 이현도가 김성재의 첫 솔로 음반 [김성재]를 전곡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도맡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김성재는 안타깝게도 솔로 컴백 첫 무대를 마치고 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이후 이현도는 솔로 가수이자 힙합 프로듀서로서 김성재의 몫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