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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허가관련하여-

최종륜 |2006.08.10 22:05
조회 49 |추천 0

금호타이어 천진공장 건설단 관리부장으로 '04년10월에 중국에 들어온 이래로 저의 가장 크게 할 일들은 서울에서 숙명을 받고온

인허가 준비 및 최종 영업집조 허가및 기공식 일정이었습니다.

 

서울에 근무할때도 열심히 했다 했는데

정말 여기서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주어진 조건에서 주어진 자리에서 견디어 내고

권한과 의무가 생겨난다는 옛말이 있듯이

정말 몇명 안되는 인원으로 물론 조선족이나 한족애들 다들

합심하여 전력질주하여 자료를 만들고 며칠씩을 날밤새가면서

그렇게 열중한 시절들이었지요

새로운 중국에서 은행이나 관공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개선유지를

무던히 노력햇었던 시절이었구요

당시의 제 텔레피아 메일의 제일 하단에 있었던

정형구 "위기는 기회다 "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들이 닥친다 하더라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연구를 하고

다른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월급쟁이가

라는 이야기로 평하기도 했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여건에서 그것은 일에 대한 제 자존심이었고

책임이었습니다.

 

중국에 와서 첫번째 위기라고 생각되던 시절

05년 1월초에 시작한 ndrc-국가발전과개혁위원회의 타이어공장

비준에 대한 상무회의를 시작했었을때

그 일월과 2월중순 사이에 제 체중이 10kg가까이 빠졌다면

이해가 되리라 보여집니다.

매일 회의하고 저녁내 통역까지 동원해서 자료 번역하고

만들고 그 다음날 새벽에 북경에 올라가서 변호사랑 회의하고

하여간 그 두달못된 기간동안에 북경에 30번정도 올라갔다 왔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서울에서의 시간지연에 대한 압박

그리고 애초에 상무를 시작할때 예측하지 못했던

매년3월이면 열린다는 중국의 두가지 전국회의-전인대,정치상무협상회의- 두가지 때문에 한 20일 가까이 시간이 허비되었지요

 

중국에 와서 세번인가 눈물을 흘려본것 같은데

그 첫번째가 ndrc 비준때였을겁니다.

이놈의 중국은 구정때는 어떤곳은 3주일 쉬는곳도 잇고

열흘씩 쉬는곳도 있고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동네였습니다.

그때 첫번째 위기를 넘기면서

"남자의 눈물을 아십니까?)"란 제목으로 만든 장문의 편지를

가지고 여러군데 협조 요청하고 정말 목 매듯이 달라붇었지요

그러면서 시간을 단축하고 자료를 만들고

하여간 그 긴박한 과정을 통하여 기공식-4월22일-을 이틀 앞두고

ndrc의 비준을 받아내였지요

그때의 그 감격이란.

그리고 그때 또 같이 더불어서 준비하여야 햇던것

기공식이었습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 참으로 많은 행사나 윗분들 모셔보면서

윗사람의 입장에서 준비를 많이 했었고 실제로

전체 기공식의 일정을 제가 책임지고 있엇으므로...

참으로 정신없이 바쁜시절이었지요

잠을 자는지 밥을 먹는지 모를시절이었지요

그러면서도 회사의 큰 틀을 빨리 만들고자 처음 들어올때부터

준비했었던 전산개발과 회사의 규정에 대하여 무지하게

신입직원들 별도로 뽑아서 준비 많이햇습니다.

기공식도 잘했다고 무사히 끝나고 영업집조를 4월28일날

오후에 받아내고서 건설단 인원 전체다 동려구 두자촌 동려후로

가서 1박2일 엠티겸 회식을 했지요

저는 그날 아침에 북경에서 내려와 오후 2시에 영업집조 받아내고서 영업집조사본이랑 준비한 세잔의 큰 유리컵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상태에서

딱 세잔 먹고 그냥 뻣어 버렸습니다.

그때까지는 정말 모든것이 회사에 대한 열정이었고

자존심이었고 또한 내가 열심히 일함으로 모두가 편해지고

비젼이 생겨나는 상황이어서 고생한 만큼 보람이 남는 시절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5월 이제 5월은 다음편에 적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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