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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매니저 이운수가 추천하는 여행지 (마음의 고향, 영암을 찾아가다)

김종필 |2006.08.11 21:01
조회 57 |추천 3
   

로케이션 매니저 이운수가 추천하는 여행지
마음의 고향, 영암을 찾아가다

2004년 가을 일본 후지 TV의 이름난 감독인 스키타 시게미치 는 일본 후지 TV 개국 45주년 특집 드라마로 세계 5대 바이올린 명장인 재일동포 진창현 씨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의 한국 로케이션 헌팅을 내게 제안했다. 스키타 감독은 한국에도 초난강으로 잘 알려진 쿠사나기 츠요시라는 배우가 진창현 역을 맡을 것이며, 한국 사람이니만큼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을 일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 진창현 씨의 고향이 경북 김천이라 먼저 내려가봤지만, 그곳은 이미 개발이 많이 돼 당시의 느낌을 살릴 만한 요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스키타 감독이 설명해 준 진창현 씨가 기억하는 고향은 마을 어귀에 개울이 흐르고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양반가였던 진창현 씨 가족은 그 안의 작은 숲을 지나면 보이는 한옥에 살았다고 한다. 드라마 대본을 따라 진창현이라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동안 다녔던 여러 지역에서의 기억을 되짚어보다 전라남도 영암 땅에 생각의 끈을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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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MBC 드라마 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마을 영덕을 한국의 숨겨진 아름다운 보석처럼 부각시켰다. 2004년 11월 27일에 방영된 일본 후지 TV의 드라마 의 로케이션 헌팅을 제의 받은 이는 그 보석을 발견해 낸 이운수 씨인데, 차 없이 두 발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아 다니기로 유명하다. 그는 진창현(1929~ )이라는 인물을 따라 그를 표현할 수 있을 법한 한국의 여러 지역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영암, 강진을 비롯해 경주, 창녕, 안동, 온양 등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됐고, 진창현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은 끝내 일본의 스튜디오에 복원해 세트 촬영을 했다. 일제 시대의 어린 시절을 복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한국에서 촬영이 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진창현이 일본에서 돌아와 고향집을 찾아가는 그 길만큼은, 그 애틋한 감정만큼은 영암 일대에서 표현됐다. 비슷비슷한 자연 경치나 유서 깊은 문화재의 역사를 보고 듣는 여행으로는 ‘여행의 목적’을 100퍼센트 채우지 못하는 요즘, 로케이션 매니저 이운수 씨가 진창현 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은 그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운수 매니저를 만나 그곳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그는 “지금쯤 그곳에 가면 내가 본 누런 들녘은 못 보겠네요”라며 당시의 감흥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배낭에 지도와 나침반을 비롯해 카메라, 캠코더, 대본, 책을 넣어 진창현의 일대기를 퍼즐 맞춰가듯 영암으로 내려가는 버스 대합실에서도,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도 진창현이라는 인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보고 느낀 전남 영암, 남도의 정기가 물씬 흐르는 그 땅으로 드라마 대본 대신 진창현의 자서전 한 권을 챙겨 든 채 그의 고향 찾아가는 길을 따라 나섰다.   photo01 무위사에서 바이올린 소리를 듣다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사사하려 해도 내게는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일본인 제작자는 없었다…. 한국인도 아닌 조센징으로, 개만도 못한 쓰레기 신세로, 대접 아닌 ‘처분’을 기다리면서도 내게는, 바이올린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하늘의 소명이 있었다….” _ 진창현의 자서전 중

바이올린 명장 진창현은 어린 시절 약장수가 손님을 끌기 위해 켜던 바이올린 선율에 매료된 후, 그의 나이 열네 살에 일제 강점기였음에도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혈혈 단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후 조선인이기에 당한 온갖 수모를 꿋꿋이 견뎌내 지금은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이자 전 세계 다섯 명에게만 주어지는 명예인 ‘무감사 제작가 Master Maker’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그의 악기는 현재 일본에서 최상품 대접을 받고 있고, 올해 SBS에서 광복 60주년 특집으로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라마 을 방영한 바 있을 정도로 진창현은 한·일 두 나라로부터 주목받고 재조명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고을, 영암에 도착했다. 마치 너른 들판 한복판에 금강산을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월출산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운수 매니저는 영암의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월출산이 시각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같은 장소라도 다양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본에 숲길을 찍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고 해서 꼭 숲길만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나무 한 그루가 그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로케이션 매니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만들어주는 장면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영암을 비롯, 진창현의 마음과 일생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겨 다녔다고 했다. 영암의 월남리에서 강진 쪽으로 3킬로미터 가다 보면 나오는 무위사에 그의 발이 닿은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는 해 질 녘의 무위사를 보려면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도착했어야 하는데 예상보다 일찍 들어서게 되었다. 무위사는 무위 無爲,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절의 본래 뜻만큼이나 한가롭고 단아하고 소박하기까지 했다. 또한 이곳은 유홍준이 에서 남도 답사 1번지의 첫 기착지로 선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한가로운 마음이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천왕문을 지나면서 정면으로 보이는 단아한 기품의 무위사 극락보전이 아닌,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누워 있는 개 두 마리였다. 그러고 보니 에서도 무위사의 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그 개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그날 본 두 마리의 개 역시 유홍준이 묘사한 바와 다르지 않게 느티나무 아래서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수령 2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시 내달려온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재미난 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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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수 매니저가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낼 때의 감정 그대로 나도 진창현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보자는. 자서전에서 읽은 진창현의 어린 시절 한 장면, 훗날 그가 바이올린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인연인 아이카와라는 일본인 선생이 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켤 때의 정경을 그린다면, 이런 장소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선생은 마을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가에 서서 바이올린을 켰다. 그러면 한 사람 두 사람 선생 곁으로 모여들어 조용히 바이올린 연주를 듣곤 했다.” _ 중

평상에 누워 있다가 뒤늦게 절의 유래는 무엇인지, 극락보전과 탱화 등이 궁금해져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께 다가가 물었다. “다른 절들처럼 입장료를 받지도, 우리를 알리려는 책자도 만들지 않는다”며 그저 잠시 들러 속세의 짐을 덜어놓고 쉬어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단다. 나가는 길에 절 앞에 통나무로 만든 찻집에 들러 월출산 야생 녹차로 잠시 입을 적셨다. 늦가을 무위사 마당에 낙엽이 깔릴 쯤이면 이 절의 형세가 더욱 운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나 역시 속세에 찌들어 쉴 곳을 찾아 헤맬 때쯤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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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

구름 떼가 흘러갑니다. 서쪽 하늘로
구름 속을 헤맵니다. 그 모습이 그리워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불러봅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 끝에
……
나의 자랑 나의 어머니, 이 민족, 이 강산에 태어난 보람
나의 몸에, 나의 후손의 핏줄에 길이 빛나라
……
불초소자 진창현


타지 생활로 몸과 맘이 시퍼렇게 멍들었을 진창현에게 어머니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바이올린 명장으로 성공한 후 고향을 다시 찾는다. 금의환향하는 창현이 온다는 그날 아침부터 마을 어귀에서 한참 떨어진 길목까지 나와 어머니는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과 두 사람의 해후 장면은 진창현이 살았을 법한 마을이라는 장암마을로 들어가는 길에서 그려졌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과 영화에서 본 그 S자 길, 그리고 너른 들판. ‘아, 이 길이었구나. 이 길이 바로 그 두 사람의 한 맺힌 세월을 어루만져줬구나’라는 생각에 한참 빠져 있을 무렵, 땅거미가 짙게 깔리면서 월출산 자락 너머로 천천히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영화 에서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없이 펼쳐진 길을 올라가듯 오토바이 한 대가 휙 지나갔다. 이운수 매니저가 이곳에 왔을 때는 황금 들녘 사이로 난 길로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 농부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곳에서의 촬영은 실제로 진창현이 다시 일본으로 떠날 때 어머니와 함께 달구지를 타고 나오는 것으로 진행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아간 장암마을 입구에서 내 인생의 영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정경이 펼쳐져 잠시 말을 잃었다. 빨간 우체통과 조그마한 평상이 놓여 있는 마을 입구의 구멍가게. 누군가 숨어서 영화 의 한 장면을 영사기로 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상념에서 벗어나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이운수 매니저가 꼭 찾아가보라고 당부했던 문창집 교장 댁을 찾아 나섰다. 누군가 손으로 정성스레 다듬은 듯한 아담한 돌담길과 그 돌담길 아래 핀 꽃과 풀, 형형색색의 대문, 집집마다 걸려 있는 문씨 문패, 그리고 너른 들판을 지나자 꼭꼭 숨어 있다 모습을 드러낸 듯 작은 숲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길 바로 왼쪽에 내가 찾던 ‘문창집’이라는 문패가 보였다. “계세요?”라고 물으며 문을 열자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한옥과 아담하게 꾸며진 앞마당이 보이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대로 넘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에서 이승연이 집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한옥에 들어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와 맘으로 잠을 청하듯, 저 한옥 평상에 잠시 누워 가을 하늘을 마음에 담아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약장수나 하는 바이올린을 켠다고 진창현을 꾸짖던 꼿꼿한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문창집 교장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문익현 목사(1573~1646)의 12대 종손인 문창집 교장의 말에 따르면, 장암마을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남평 문씨 문맹화( ~1487)가 영암의 영보마을에서 은거한 이후 문익현 목사가 1613년 장암마을로 이주해 왔고, 이후 남평 문씨 일가가 그 족세를 확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고 한다. 끝으로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이운수 매니저가 들렀다는 영암의 역사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영보마을과 한대리에 차례로 들렀다. 외관은 세 마을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영보마을에서는 19세기 조선시대 중산층이 살았다는 전형적인 초가집을 둘러보았고, 골목에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오지 마을인 한대리에서는 일본으로 가기 전 고향 이곳저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아 갔을 진창현처럼 유유자적 거닐어보았다. 장암마을, 영보마을과는 또 다르게 폐가가 즐비했고,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 생명력 긴 풀들만이 자라나고 있었다. 농촌에 빈집이 많이 늘면서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가 실로 허튼 말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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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영암군청을 지나치는데 ‘군청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암 기업도시 선정 축’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이번에 전국에서 영암과 해남, 무주 그리고 태안이 레저 관광형 기업 도시로 선정됐다고 하더니, 군청 직원들이 기쁜 마음에 걸어놓은 모양이다. 기업 도시로 선정되었으니 곧 영산강을 가로막는 다리가 놓이고, 골프장과 레저 센터들이 영암의 너른 들판에 상처를 내며 들어설 것이다. 어디를 밟고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발 디디기조차 송구하던 이 땅, 영암을 떠나면서 다시 이 땅을 밟게 될 때는 지금 이 모습이 아닐 것임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난 것처럼 벌써부터 아리다. 진창현의 굳은 심지와 넘치는 기를 닮은 월출산이 사방에서 감싸고 있는 고장, 영암이 내 마음의 고향으로 전이된 듯하다.   1. 월출산이 바라보이는 영암의 황금 들녘 사이로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간다.
2. 느티나무가 길게 드리워진 장암마을에서 문창집 가옥으로 가는 길.
3. 1613년에 건립된 가옥으로 현재 문창집 씨가 살고 있다. 팔작지붕으로 된 정면 5칸의 이 가옥에 누우면 구름 흘러가듯 세상 일에 초연해 진다. 4, 6 남평 문씨가 모여 사는 장암마을의 담벼락과 아담한 대문, 그리고 담장 아래 핀 꽃들은 수수하고 한적한 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5 행정 구역상으로 강진에 위치한 무위사는 남도 답사 1번지의 첫 기착지로 꼽힐 만큼 절에서 풍기는 멋과 고즈넉함이 비견할 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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