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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미스터 리(mr.Lee)

박해진 |2006.08.11 22:35
조회 68 |추천 0


난 43번의 다리 수술을 한 절름발이다.

난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이국 땅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이다.

난 돈을 벌기 위해 화장실 청소를 한다.

난 유통기한이 지난 딱딱한 빵을 물에 불려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운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 웃을 수 있을까?

 

웃는 사람, 이철호

 

이럴수가.. 그가 웃는다. 64세의 할아버지가 저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그 옛날 어린 동생이 방에서 혼자 명랑 만화를 보며 저런 웃음을 지었던가?

유럽 노르웨이, 멀고 먼 땅에서 라면 하나로 인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

노르웨이 청소년들의 우상 이철호씨,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유쾌하게 시작되었다.

 

'미스터 리(MR. LEE)' 하나 주세요.

 

노르웨이에서 이 말은 "라면 하나 주세요"를 뜻한다. '라면=미스터 리' 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사람, 그 장본인이 바로 이철호씨다. 그는 '라면'의 발상지 일본을 누르고 ' 미스터 리'라는 브랜드로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장악했고, 노르웨이 초등학생들은 그의 라면 시사회를 보기 위해 결석까지 할 지경이다. 게다가 CF는 물론이고 노르웨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패션 브랜드의 모델까지 되었다. 도대체 노르웨이 사람들이 그에게 그리고 그의 라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날을 이야기 하다.

 

그는 193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14살의 나이로 겪게 된 6.25.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연히 미군 부대에 들어가게 된 이철호는 부대 안에서 행운의 마스코트라 불리며 귀여움을 독차지하지만 갑작스러운 폭격에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노르웨이 행, 그 후 43번의 수술도 힘겨운 것이었지만 노르웨이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혼자 생활을 꾸려 나가기도 벅차기만 했다. 화장실 청소, 동물병원 잡역부, 호텔 벨보이 등의 일을 하며 밤에는 유통기한 지난 딱딱한 빵을 물에 불려 먹곤 했다. 아직도 라면을 퉁퉁 불려 먹고, 음식을 버리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했다.

 

Cook Master

 

항상 굶주렸던 그는 결국 노르웨이에서 '최고의 요리사(cook master)' 훈장을 목에 걸게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는 남보다 더 늦게까지 남보다 더 열심히 설겆이 하고 감자를 깎던 노력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순간을 기꺼이 사랑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언제나 곧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 오랜 시간 서 있지도 못하는 불편한 다리를 하고서도 노르웨이 최고의 요리사가 되게 한 비결이었다.

 

한국과 노르웨이 사이에서

 

그가 인터뷰 도중 한국 시 '부소산'을 읊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노르웨이로 떠날 때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가져간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시. 그는 이 시 한 편을 하숙집 벽에 적어 놓고 매일 매일 읽어댔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라면와으로 성공한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미스터 리' 라면에 한국 관련 퀴즈를 넣는다거나, tv 퀴즈쇼에 한국 여행권을 경품으로 내 놓으며 한국을 홍보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을 키워 준 조국 노르웨이를 위해서는 매년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실업자가 많은 지역에 만두 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나누어 줄 생각이다.

 

----------------------또 다른 기사--------------------------

 

노르웨이 사람에게는 미스터 리로 통하는 한국인이 있다. 노르웨이에 라면을 처음으로 알린 미스터 리. 머나먼 북극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을 바꾼 라면 왕 미스터리. 그는 노르웨이 최초의 한국인 이철호이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의 노르웨이 왕국. 산과 호수의 나라요, 해운왕국이기도 한 노르웨이는 산유국으로 일인당 국민 소득 이만 칠천 달러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진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이다. 그러나 인구 400만. 단촐하기만 한 이 바이킹 후예들의 삶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 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2000년 11월 초, 노르웨이의 북부, 인구 1만 8천명의 작은 도시 나르빅의 지방 신문에는 그 전날 있었던 학생들의 무단 결석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사연인 즉, 그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여는 백화점의 개업 기념 라면 시식 행사에 참석한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일단의 학생들이 결석했다는 것이다. 이때 그 백화점의 라면 시식 행사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바비 인형 같은 북구의 금발 미녀들이 코믹한 외모의 이철호 씨를 둘러싸고 '미스터 리'를 연호하며 미스터 리가 직접 끓인 '미스터 리' 라면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사인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미스터 리'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의 상표이자, '라면'이라는 식품을 최초로 노르웨이에 퍼뜨린 이철호를 가리킨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말한다. 노르웨이에는 왕이 두 사람이라고. 국왕과, 라면 왕 미스터 리. 'king of noodle'로 불리우며 노르웨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철호, 팬클럽까지 있는 그의 목소리와 모습은 영화, tv, 라디오 광고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벽안의 젊은이들. 미스터리 덕분에 이들은 벌써 라면 맛에 길들어져 있다. 이철호가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여 한국의 한 라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스터 리 라면은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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