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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공 이야기: Telnet의 추억

이외 |2006.08.12 14:14
조회 52 |추천 0


예전에 "불한당들의 모임"이란게 있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패러디한 "불한당이 쏘아올린 작은공"이란 천리안 소모임. 당시는 인터냇이 본격화 되기전 이른바 telnet으로 소통하던 시대. 그림을 다운 받기에는 시간이 오래걸리고 배경음악이란 엄두도 못내던 text-based world...그때 홈피는 프로그래머나 겨우 가질까 말까한 그런 거였다...


하지만, 바로 그 기술의 (물론 IT 기술에 한함)의 원시시대가 인터냇속에서의 글의 시대의 황금기였다. 당시는 매달 돈을 내야만 하이텔,천라안, 나우누리 등의 telnet company에 접속할 수 있었고, 철저하게 text기반이므로 글발만이 자신의 대부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당연히 얼짱같은 것은 쓰임새를 찾을 수 없던 시절.  그 얕은 기술의 깊이 때문에, 아무나 쓸수 있는 쉬운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고따라서, 아무나 텔냇에 들어오진 못했고, 사람들이 갈곳은 하이텔 아니면 천리안... 천리안 회원이 백만을 막 넘었을 당시엔 하나의 회사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채팅으로 밤을 샜다. 그땐 원조교제를 위한게 아니고, 음악과 영화와 책을 얘기하기 위한 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꿈같다... 지금은 이제 불가능해진 꿈같은 시절이다... 소설가도 영화감독도 스노보드 선수도 모두 그 채팅방에서 만날수 있었다...

난... 일제 바이크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모터사이클 동호회에 들 필요성이 느껴져서 천랸에 든 바 있는데, 그 정보는 내가 직접 일본에서 바이크를 수입하는데 드는 서류를 작성하기 위한것이었다. 이 불쏘공 모임은 문화비평 동호회라고 분류되어서 어찌 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실, 과 동기 C군이 이 모임에 속해 있었는데, 당시 C군이 유난히 이 모임에 자주 가는것을 지켜보던 나는 1) 그 친구가 내가 불쏘공 모임을 깊이 아는것을 환영하지 않는데다가, 2) 당시 부시샵까지 맡고 있는 걸로 보아 (따라서 내가 생각하기에 권력을 등에 업고 작업을 하면 더 쉬우므로), 3) 또한 그의 "여친 비공개의 원칙"과 그가 이 동호회에 대해 내게 언급을 회피하려는 경향으로 미뤄보아,
불쏘공안에 그의 여친이나 그의 작업대상이 있을게 틀림없다 싶어 염탐차 들게 되었다.

그리고 C군의 작업대상이 누구였는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으며 ( 뭐 헛집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자 친구라고 불리울 만한 관계를 가진자 또한 없었다. 내 본래 목적에 비춰보면, 괜히 관심없는 동호회에 든 것이다. 

지금도 시샵이던 "콜라"와 대부분의 글다운 글의 생산자 "루"형을 잠실 실내 체육관 앞의 "smashing pumpkins"공연을 위해 늘어선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아낼 때의 기억이 선하다. 난 내 일제 경주용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기에 가서 그들을 첨 만났다. 그 공연했던 밴드는 그때가 한국 방문으로 최초자 마지막이고, 그 공연이 있은후 얼마안돼 그룹은 해체됐다. 이때가 메탈리카 공연과 불과 한달차를 두고 있던 차에, 입장료가 10만원인지라 나는 메탈리카와 이 smashing pumpkins 사이에 하나를 택한 것이었다... 

세상이 점차 telnet에서 공짜 website기반으로 넘어가자, 불쏘공은 사람들이 쳔란을 떠나게 되고, 각자 자기 홈페이지를 가지면서 와해됐다.... 이는 동호회에 있어 교류할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교류와 서로에 대한 자극없이 어찌 어떤 그룹이 활력을 찾겠는가? 설사 각자의 홈피는 그 이전 동호회 공간보다 훨씬 fancy하게 그림과 음악이 곁들여져 꾸며 졌지만, 그 contents는 결코 telnet시절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런 것은, 여러사람의 교류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난 당시에 완전히 망하기 전에 빨리 천랸을 떠나 프리첼이나 사이월드같은 웹사이트 기반 동호회로 옮겨가자고 우겼으나 (내가 보기엔) 우유부단한 동호회에서 받아들여 지질 않았다. 세상이 변할때, 홀로 세상을 뒤업거나 바꿀 능력이 없으면, 용기라도 내서 그 변화에 따라 가야한다. 물론... 참 어려운게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그때 만약 Daum cafe정도로만 옮겼더라도 불쏘공은 평균적으로 그 깊이는 옅어졌겠지만, 활발하고 폭넓은 동호회로 살아남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첨 만난게 99년 여름 쯤이었던 같은데, telnet에서 알게되어 스매싱 펌킨스 공연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그래도 아직까지도 교류하고 있다. ... 콜라와 루와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탱고를 추려는 것은 동호회를 되살리는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여튼 그들은 내 인생의 친구들이 되었다.

여튼, 그 불쏘공이 이제 천랸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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