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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다스 조지 소로스

강명국 |2006.08.12 15:37
조회 13 |추천 0
조지 소로스 美 퀀텀펀드 회장

1947년 겨울 런던 라이온스 코너 하우스 앞에 한 헝가리 출신 소년이 서 있었다.

이리저리 주머니 속을 뒤져봤지만 동전 한 푼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먹은 저녁이 자신에게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즘 같으면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을 17세 소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소년은 우울해지는 기분을 달래며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상황까지 왔으니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영국에서 밑바닥을 경험했던 소년은 45년이 지난 1992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상대로 도박을 시작한다.

파운드가 고평가돼 있다고 믿었던 그는 파운드화 매도에 나섰다.

당시 유럽환율조정체제(ERM)에 따라 마르크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해야 했던 영국은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하루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45년 전 돈 한 푼 없음을 실감해야 했던 외국인 소년이 중앙은행을 이긴 셈이다.

영란은행과 전쟁을 통해 `검은 수요일(92년 9월 16일)` 단 하루 만에 10억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였고 영국은 33억파운드라는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하루 사이에 영국은 이자율을 10%에서 12%, 15%로 올렸지만 사태 수습이 힘들자 결국 ERM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두 일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이다.

지난해 연봉만 8억4000만달러(약 8200억원)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국제금융시장 대부다.

첫 번째 일화는 그가 금융 쪽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됐고 영란은행과 벌인 일전은 그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소로스 회장 인생에서 영국은 그만큼 특별한 인연을 지닌 셈이다.

14세가 되던 1944년, 소로스 회장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며 가족들에게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말을 꺼내긴 했지만 당시 소로스는 나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아버지(티바다 소로스) 질문에 아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회주의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러시아를 가거나 BBC(방송사)가 있는 영국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한때 러시아에서 감옥에 수감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던 티바다 소로스는 영국을 추천했고 결국 아들은 아버지 추천을 따른다.

소로스 회장은 "무일푼이 됐던 시절 기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치를 피해 탈출하는 다른 유대인들을 도왔던 티바다 소로스는 돈 가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 직업이 변호사였지만 `근근이` 살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로스 회장이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근검절약하는 것도 이때 밴 생활습관 덕분이다.

그래도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만 현실 속 자신은 무일푼인 외국인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이것이 이후 소로스 회장의 철학으로 발전된 재귀성(reflexity) 이론에 토양이 됐다.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이란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머리 속 현실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이 실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가를 예로 들자면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주식 가치와 실제 정확한 주식 가치는 다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믿고 행동에 나선다.

이 때문에 실제 가치와 달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가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기존 경제학의 균형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신만의 불균형 이론을 만든다.

시장에 균형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자신만의 철학을 런던경제학교(LSE)에서 칼 포퍼 제자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발전시킨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철도역 짐꾼, 여행 세일즈맨, 은행 수습사원으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던 그는 56년 미국으로 건너와 금융산업에 투신한다.

그 후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업계에서 관심을 받는다.

69년 1만달러로 시작한 퀀텀펀드는 20여 년 후 2100만달러 규모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달성한 연평균 35% 성장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금융의 연금술사` `20세기 미다스` `월가의 황제` 등 갖가지 별명을 얻는다.

실제로 1993년 초 그가 미국 한 광산업체 주식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나자 전 세계적으로 금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또 96년에는 일본에 나타난 그가 "일본 주식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닛케이지수는 폐장 직전 10분 동안 270포인트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소로스 회장에 대한 설명에는 `환 투기꾼`과 `자선가`란 상충되는 수식어가 공존한다.

그를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든 영란은행과 벌인 일전도 그렇지만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마하티르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가 그를 외환위기 주범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로스 회장은 "외환위기 발생 전후 수개월 동안 아시아 통화는 거래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한편 자신이 가진 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갖은 박해를 당해야 했던 어린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그의 자선활동은 1979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정책)로 신음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학생 지원으로 시작됐다.

그 후 소로스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스승 칼 포퍼 뜻을 따라 `열린사회` 구축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위해 93년 옛 소련지역에 세운 열린사회재단을 현재 미국을 포함한 60개국으로 확대했다.

이런 노력으로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꼽은 자선가 순위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열린사회재단 등 기부활동에 소로스 회장은 연간 4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그는 군사력에 기반한 패권주의로 국제사회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시 대통령을 매우 싫어한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2500만달러를 부시 재선 반대 운동에 쏟아부었다.

부자임에도 부자를 위한 부시 대통령 감세안에 반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자기 철학을 담은 신작 `오류의 시대(The Age of fallibility)`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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