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나노기술, 최첨단 유비쿼터스(Ubiquitous), 최첨단 위성통신, 최첨단 자동화 시설, 최첨단 무기들,, 이러한 최첨단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세계는‘진정한 인간 중심 사회의 도래’라는 슬로건을 손에 들고 흥분하며 떠들어 댄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모든 껍데기들이 화려해지고 단단해지고 편리해지고 정형화 되어가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인가? 아니, 진정한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솔직함은 퇴색되어만 간다.
두려움과 맹목적 존경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이런 껍데기들로부터 하나하나 베일을 벗어가면서, 인간이 창조해 낸, 혹은 인간을 창조했을지 모르는 절대적 존재‘신의 형상조차 현대인들의 뇌리에서는 잊혀져가는 것 같다.
파이, 그리고 파이가 풀어가는 227일간의 표류기는 이러한 껍데기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고 있었던, 코 흘린 시절의 그 순수함과, 마치 먼 나라 인도의 선인에게 듣는 죽음과, 신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memento mori -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우렁차게 울며 탯줄을 끊고 세상과 인사했던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인간은 아니라고 자만하지만 나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것이다.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과 동병상련(同病相憐)해야 할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들을 정복해 간다. 세상 어느 생명체도 인간보다 영악하거나 기회주의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순리대로 살 뿐이고 본분을 다 할 뿐이다. 인간처럼 필요이상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필요이상으로 치닫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진실 되다. 지구상의 동물들은 먹이사슬을 가지고 그 순리대로 살아가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느 부분에도 포함되지 않는 방관자이자, 정복자의 관계인 것이다. 파이가 호랑이 리차드파커와 함께 생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를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사상과 양심이 타락했던 혼란기에, 니체는‘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속에서도, 대부분의 신은 죽었다. 그러나 파이의 가슴속에는, 그 신이 힌두교이건, 이슬람이건, 기독교이건, 그것의 성향이나 방법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파이의 가슴에는 어쨌건 절대적 신이 살아 있었다. 그것은 파이에게 어둠속의 빛 이였고, 마른하늘에 단비였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들은 얘기한다. “종교, 단도직입적으로 ‘신’따위는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혹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믿는 것이라고“
인간은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다. why?, 그리고‘왜’라는 질문 속에서 인간의 육체는 관념과 감성을 만들어 내고 관념과 감성은 이성을, 그리고 그것을 초월 한 형태는 신(神)으로 귀결된다.
결국, 신(神)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절대적인 가치이다. 결론적으로 신을 믿는 것은 자신의 이성과 관념을 믿는 것이고,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神), 종교란 어떤 성향에 있어서 특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도 깨트릴 수 없는 숭고한 힘 인 것이다.
파이는 속세에 찌든 우리들이 회귀해야 할 가치를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리차드 파커는 우리가 잊어왔던, 자연의 가치이다. 파이와 리차드파커가 죽음의 문 앞에서, 말은 통하지 않았고 힘은 파멸을 부르는, 그 극단적 상황에서 통했을 마음속의 무언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파이는 진실함과, 순수함, 그리고 신(神)을 가진, 소년 이였다. 파이는 진실한 마음의 눈을 가지고 진실만을 들으려 노력했고, 진실한 것들만 뱉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침춤호 사건을 조사하러 왔던 일본 해양부 조사원들은 그러한 파이의 행동을 우스개 소리로 여겨버렸다.
진실한 마음의 눈을 가지고 진실한 것들만 뱉어 낼 수 있다면 참으로 부끄러울 것이다. 무릇 사람들은 홀딱 벗겨진 자신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으니 말이다. 정말로 진실 되고, 정말로 가슴의 귀에 대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맹목적인 파시즘에, 침묵의 나선처럼 묻히거나 도태되어버릴 것이다.
파이 이야기를 읽고 얻는 교훈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점점 진실이 진실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그 사회에서의 순수함이란 위선과 어리석음이란 거울로 비춰질 것이고, 그런 사회에서의 죽음이란 영혼의 죽음이 아닌, 육체의 죽음으로 치부되어 버릴 것이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