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13=중심(주일 11시)
제목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성경 : 히브리서 3:1~6
요즘 일반 서점가에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분 1, 2 ,3 위가 스님들의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서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기독교를 대표할 만한 작가가 없다는데 있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인 중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드물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다 세상을 주도하고 세상 속으로 향해야할 기독교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가 퇴색되어진다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 퇴색되어 간다는 말이고, 기독교 정신이 퇴색되어 간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이 퇴색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기독교의 탈은 쓰고 있지마는 그 속에 있는 기독교의 생명이 점점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자크 엘룰”의 말대로 뒤틀려진 기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근대까지 세계 역사는 기독교 문화가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분야든 기독교 문화가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 생명을 잃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명과 능력을 잃은 종교는 항상 세상에 끌려가고 세속화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면 세상을 향해 기독교인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레이 스테드먼’이라고 하는 성경학자는 “왜 세상은 우리의 말하는 바를 믿지 않는가? 그것은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은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말하는 바를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믿는 자답게 살도록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답은 한마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의 배경은 당시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저들의 전통, 즉 천사를 통한 기적과 모세율법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확실한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배교하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바로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분명한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예수를 아는 체 하지만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왜 한국 기독교인이 860만 명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까? 교인은 많지마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그 수가 적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일 낯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 안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교회가 교세와 사업과 전통을 자랑하지마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성도가 되지 못하면 결코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기적을 앞세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주로 천사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수많은 기적을 나타내심으로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적중심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유대인들은 기적을 구하고 기적을 좋아하는 신앙에 젖어 있는 천사를 숭배하기까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13,14).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뛰어나시면서 사람이시기 때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구속의 은혜보다 천사의 기적이 더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은 기적 같은 역사로 부자 되고 만사형통하고 출세하는 종교를 더 선호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어떻게 살든지 기적적인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 교인들에게는 더 먹혀들어가는 것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업에 지나치게 바쁜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너무 바쁘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으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속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에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목사님과 교인들에게서 종종 봅니다.
그러면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1절에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믿는 도리’란 말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고백하신 신앙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그리스도를 사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성경에서 여기 한군데 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을 사도라고 했을까요?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완전한 속죄 제사를 지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 모일 때마다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은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은 잘하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생각이 툭 튀어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잘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풍자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당장 내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내게 얼마나 이익이 될 것인가? 예수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신앙생활을 통해 내가 어떤 유익을 얻느냐? 이런 것들을 먼저 따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익을 따라서 교회 생활을 하고 그 이익을 따라서 교회도 얼마든지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나의 관심은 달라집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것은, 예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망상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내가 예수 믿고 나서 이렇게 축복 받았다. 나는 예수 믿은 이후로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도 잘 드리고 착실히 봉사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본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을 본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작은 예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전반부에서 가장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까? 4장 15-16절 말씀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5절).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지만 죄는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절).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했을까?” 내일부터 우리 교회 장년수련회가 열립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분명히 그 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에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내 마음에 어떤 느낌과 반응이 나타날까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감격이 솟아납니다.
성도는 이 감격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믿어줍니다.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종말의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창조해 주신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모세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크게 여겼던 것입니다. 자신이 축복받아 누리는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나타내는 삶보다 더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의 최고의 덕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실 바로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 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그를 닮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저들이 존경하는 모세를 내세워 그리스도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세의 말이라고 하면 꾸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세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훨씬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비교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어떻게 하나님과 피조물이 비교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확신을 위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모세와 예수를 비교하므로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우선 보기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충성하신 것이나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 즉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께 충성한 것이나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3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집이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는 하나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충성한 것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교회를 세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5-6절에서 모세는 그 집의 사환으로 충성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맏아들로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환(심부름꾼)으로 충성한 모세는 존경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을 상속받아 다스릴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과 예표에 불과한 모세에게는 영광을 돌리면서 모세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전혀 영광을 돌리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다보면 신앙의 전통이나 습관, 그리고 제도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자신 속에 예수의 생명과 복음의 감격은 잃어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번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세요. 나도 지금 유대인들같이 전통의 껍데기만 남아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진정 예수 믿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교회라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6절 말씀대로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견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담대함은 바로 확신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염려하는 것은 외부적 모습과 종교적 의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참된 신앙을 가진 일이 결코 없는 교인들에게 깨우쳐 주는 권고입니다. 혹시 나는 지금 교회생활 잘 하고 있다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고 형편이 나아졌다고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신앙을 확실히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은 바로 신앙의 내용을 말하며 긍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요, 예수가 우리의 긍지인 것을 붙들어야만 우리가 세상에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 내게 이 확신과 이 자랑이 있습니까? 없다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만이 희망이요 자랑임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단순한 묵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챨스 셀돈의 책 제목처럼 “모든 일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형식과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내용을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깊이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