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화장실서 샤워, 수건은 화장지, 세면대는 쓰레기통

김영종 |2006.08.13 20:10
조회 52 |추천 0

[한겨레]
“아들 또래에게 욕을 먹어도 참아야지 어쩌겠어.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인데.”

김복순(가명·64·여)씨는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1호 화장실의 막힌 세면대를 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해수욕장이 문을 여는 여름 두달 동안 해운대해수욕장 관리사무소에 고용된 일시 사역인부다. 일당 3만1310원을 받고 하루 8시간씩 화장실을 청소한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보다 돈을 아끼려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막힌 세면대를 뚫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화장실 앞에서 “발 좀 털고 들어오세요”라며 목이 쉬도록 말해도 소용없다. 화장실에 걸어둔 화장지는 사람들이 수건대신 사용하는 바람에 30분도 안돼 바닥난다. 물 젖은 휴지뭉치는 세면대에 버려져 구멍을 막는다. 화장실이 온통 물바다가 된다. 지난 주말에는 하루에 네번이나 세면대가 막혔다.

5000ℓ까지 오수를 저장할 수 있는 간이화장실도 금방 물이 차고 넘친다. 이를 막기 위해 간이화장실 안에 있는 세면대 수도관을 잠가버리면 발 씻는 곳까지 물이 나오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수도관을 열어두면 샤워하러 몰려드는 해수욕객들 때문에 하수구가 막히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다른 사람 다 하는데 왜 못하게 하냐” 아들뻘에게 욕먹고 눈물 훔쳐


화장실에서 샤워를 못하게 막으면 “다른 사람 다하는데 왜 나만 못하게 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오늘도 아들같은 사람에게 욕을 먹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같은 시각 모래사장에서는 박순자(가명·61·여)씨가 뜰채와 포대자루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공공근로사업자인 그는 일당 2만5천원에 매일 3천원의 식비를 받고 하루 4시간씩 해운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청소한다.

매일 아침 6시 기계장비가 동원돼 모래사장을 청소하지만 모래에 파묻힌 담배꽁초, 유리조각, 애완동물 배설물 등은 일일이 손으로 치워야 한다. 해수욕장에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있고, 애완동물 배설물을 방치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뒷처리는 박씨 등 해수욕장 미화원들의 몫이다.

어쩌다 해수욕객이 모래 속에 파묻힌 유리조각에 다치거나, 애완동물 배설물을 밟으면 “여기는 청소도 하지 않느냐”며 미화원들에게 따져 묻는다. 유리조각이나 배설물을 버리고 그냥 간 사람이 원망스럽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박씨는 “일이 힘들어 젊은 사람들은 며칠 못버티고 가버려, 해수욕장에서 청소하는 사람은 대부분 50~60대”라며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해수욕장이 훨씬 깨끗해질텐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일당 3만원에 해운대 1호화장실 하루 8시간 청소

해수욕장 바깥쪽 화단에도 사람들이 드러누워 쉰다. 화단에 들어오지 말라는 펼침막과 대나무로 엮은 울타리가 설치돼 있고, 수시로 출입금지 방송이 나오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펼침막이 만들어주는 그늘로 더 몰릴 뿐이다.

앞서 이날 새벽 5시부터 모래사장 청소에만 50명이 투입돼 아침 9시가 다되어서야 겨우 청소를 끝냈다. 6번과 7번망루 사이에서만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돗자리 20여개와 50ℓ들이 포대자루 7개 분량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새벽 2시에 청소를 끝내고 겨우 3시간 만에 다시 청소를 했는데 이렇다. 이 구역을 청소하던 김의성(55)씨는 “이게 해수욕장인가? 쓰레기장이지!”라며 “자신이 머문 자리도 치우지 않는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한겨레> 최상원 기자, 오주원 인턴기자(경성대 신문방송4) csw@hani.co.kr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