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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님

한지섭 |2006.08.14 16:33
조회 39 |추천 1
  신채호 (申采浩:1880∼1936)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언론인,독립운동가.
호는 단재(丹齋).
본관은 고령(高靈).
충청남도 대덕(大德) 출생.
18세 때 전 학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그의 천거로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1901년 향리 부근의 문동학원(文東學院) 강사로
신규식(申圭植) 등과 계몽운동 및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의 뜻을 버리고
장지연(張志淵)의 초청으로
《황성신문(皇城新聞)》의 기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황성신문》이 무기정간되자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대한매일신보》을 통하여
배일사상(排日思想)과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논설,역사관계논문 등을 발표하면서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충무공전(李忠武公傳)》등을 쓰고,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을 역술하였다.
한편 양기탁,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에 참여하였고
논설을 통하여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을 거쳐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윤세복(尹世復) 등과 광복회(光復會)를 조직,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상하이(上海:상해)로 가서
동제사(同濟社)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문일평(文一平),조소앙(趙素昻),박은식(朴殷植)등과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여 교육에도 힘썼다.
이듬해 만주로 가서
펑톈청(奉天城:봉천성) 화이런현(懷仁縣:회인현)의
동창학교(東昌學敎) 교사로 재직하면서
《조선사》 집필에 전념하였다.
1919년 베이징[北京(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단장이 되었고,
같은 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의원이 되었다.
한성정부(漢城政府)에서는 평정관(評定官)에 선임되었고,
이어 전원위원회(全院委員會) 위원장 겸
의정원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의 노선에 반대하여 사임하였다.
1922년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의 초청으로 상하이로 가서
이듬해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을 작성하였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였다.
1928년 무정부주의 활동과 관련, 체포되어
1930년 다롄(大連:대련시) 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여순) 감옥에서 복역중 병사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등이 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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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이런 훌륭한 분이..무국적자이고..

그 자손은 사생아라는게....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다.

대한 민국 도대체 왜 이러나..

부끄럽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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