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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사랑이 꿈꾼 환상의 순간

플래닝쿠튀르 |2006.08.14 17:56
조회 12 |추천 1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누군가는 이 그림을 일컬어 보는 것만으로도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고 예찬했는데,
에로틱 무드와 관능이 꿀처럼 흐르는 현란한 그림에서 눈을 감고 황홀경에 취해 있는 여자는 실로 그림 밖 관객들의
관음증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저토록 달콤한 키스의 황홀경에 취한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사로잡힌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14명의 사생아를 낳았다고 전해지며,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수많은 모델,
사교계 여자들과 자유분방한 섹스를 즐겼던 클림트의 생애는 그의 그림만큼이나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 관심을 방증하듯 최근 그의 생애를 소재로 두 편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그중에서도 저 황홀한 키스의 여주인공이 누굴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엘리자베스 히키의 장편소설 는 그 주인공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클림트 곁을 지켰던 에밀리 플뢰게라고 상상하며 그녀의 시점에서 소설을 풀어나가고 있다. 자유분방한 클림트의 애정 행각에서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에 대해서 탁월한 균형감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클림트의 마지막 연인이기도 했다. 오로지 자신만 사랑받고 찬양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예술가를 사랑하면서 가슴속에 종양 같은 고통을 품고 살았던 여인의 순정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키스’는 그녀가 결코 사랑을 놓을 수 없었던 치명적인 순간을 포착해낸 그림일지도 모른다.

꽃이 가득한 들판에 무릎을 꿇고 남자의 목에 팔을 둘러 매달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여자. 언제부터 그 자세로 기다려왔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기다림이 키워낸 황금빛 덩굴이 여자의 발목을, 종아리를, 무릎 안쪽을 휘감으며 들판 전체로 퍼져나가 마침내 그녀 자신이 들판에 솟아오른 커다란 꽃나무로 변해가도 여자는 눈을 감고 온몸을 내던져 기다리기만 한다.

기대감의 표현인 듯 반짝이는 꽃과 별, 그 속에서 여자의 마음이 기다림의 탑을 만들어나간다.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의 상념도 잊고 매달려 있는 남자도 잊고 그러다 기다림을 시작한 자신의 욕망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린다. 오직 기다림만이 남은 그 여자의 세계. 그 세계를 둘러싼 황금빛 안개는 여자가 시간과 공간을 잊고 낯선 꿈에 잠긴 채 몇십 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키스’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운 에로티시즘은 낯선 어딘가를 헤매는 느낌을 준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한 귀퉁이. 지금도 아니고 옛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래의 어느 때라고도 말할 수 없는 시간. 아니, 그 시간조차 멈추어진 곳에서 평온한 합일감에 도취된 연인이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입맞춤도 하지만 누가 그들처럼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오직 둘만 남는 우주적 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까. 황금빛 안개가 꼭 부둥켜안은 그들을 더욱더 한 덩어리로 엮어준다. 황금가루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 가득 펼쳐진 광경은 연인이 느끼는 황홀경의 시각적 표현이다. 여자의 옷은 연인이 자리잡은 풀밭을 옮겨놓은 듯 둥글고 다채로운 색의 꽃들로 장식되어 있고 남자의 옷은 황금빛 바탕에 회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의 직사각형 도형 무늬이다. 인간적인 욕망과 충동을 추상적인 장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이 무늬들은 어쩌면 키스라는 행위보다 한결 수월하게 남녀의 화해와 조화를 포착하는 듯하다.

여자의 옷은 온통 꽃밭이다. 눈을 감고 남자의 입술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마음속에도 꽃이 피어나고 있을까. 사랑의 승리가 사방에 퍼지고 있건만 왜 여자는 눈을 감고 있을까. 그림 속의 주인공이 클림트와 그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라면, 현실을 초월해야만 만족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치명적인 사랑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포옹을 감싼 황금빛 안개는 무척이나 비밀스러운 느낌을 준다. 비밀은 거리감을 부르고 거리감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이어진다. 몽환적인 색채의 배경 역시 그림 속 연인의 행복이 사회적 현실을 떠나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종의 구원이라 할 수 있는 이 합일과 충만의 경지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여자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 낯선 꿈속으로 들어갈 테고 그래야 꿈에서나 가능한 일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클림트는 19세기 말에 활동한 오스트리아의 화가로, 계몽주의식 이성이 흔들리던 혼돈의 시대에 에로티시즘을 손에 쥔 유겐트 양식의 대표 주자다. 동양적인 장식 양식에 착안하고 추상화와도 관련을 가지면서 템페라·금박·은박·수채를 함께 사용한 다채롭고 독창적인 기법을 구사했다.

Wedding21 06년 6월호.,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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