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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를 회상하며 긴 글을 써본다 & 2집 "우리는" 영상과 함께..

김진우 |2006.08.15 16:08
조회 303 |추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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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힙 합은 듀스(Deux)라는 힙합 그룹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현도와 김성재로 이루어진 듀스..

이들은 3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혁신적 음악 스타일과

자조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묘한 어법으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군에 입대하게 된 구준엽과 강원래의 뒤를 이어

현진영의 댄싱팀 '와와'에서 춤꾼으로 활동했던 이현도와 김성재는

1993년 8월 본격적인 힙 합 그룹을 표방한 듀스를 결성했다.

이현도가 작곡과 작사, 프로듀스를, 김성재가 안무와 코디네이션

각기 역할을 분담했던 이들은 1993년 4월 23일 1집을 발표했고,

'나를 돌아봐'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으며 두각을 나타냈었다.

(자세한 것은 동영상폴더를 보세요..가요톱텐 출연영상 있음..)

 

- 여기서 잠깐 나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오륜초등학교 6학년 때 학력평가 음악시험을 보는데,

주관식 시험문제가 '한국의 작곡가 3명을 쓰시오' 였다.

 

난 처음에 "홍난파,안익태,윤극영이라고 썼었다.

그러나 솔직히 졸라 짜증났다. "왜 항상 뻔한 작곡가들 뿐이야?"

 

그래서 마지막에 시험지를 낼 때에는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

"홍난파,안익태,이현도" 라고 대놓고 써버렸다. ㅎㅎㅎ

 

그 날 담임 선생님한테 완전 또라이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종례시간에 애들 시퍼렇게 보는데서 욕을 먹었으니..에휴..

그 때까지는 이미지가 좋았는데 그 날 이후로 선생님한테 찍혀서

졸업할 때까지 개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후훗..

벌청소하느라고 수학올림피아드 예선도 놓친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보다 수학 못하는 애가 올림피아드 나가는 걸 지켜보니

어린 나이에 기분 참 더러웠다. 내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굴욕이다.

 

- 빌어먹을 주입식 한국의 공교육 같으니라구..

- 그땐 친구들조차도 내가 잘못했다고 다들 그랬다. 아니..왜?

- 홍난파는 작곡가고 이현도는 작곡가가 아니던가?

- 난 지금도 그 당시 선생과 아이들의 핀잔을 수긍할 수 없다.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집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같은 해 11월

듀스는 곧바로 두 번째 앨범을 출시했다지~~

이현도의 진가는 바로 그 2집 에서부터 발휘되었다.

힙합과 록, 펑크(funk) 등 흑인음악 요소에다가

발라드를 적절히 가미한 이현도 특유의 스타일이 느껴졌으니깐..

'지금 그대 다시', '우리는' 등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Go! Go! Go!', '약한 남자', '無題(무제)' 같은 곡들도 정말 좋았다.

 

그 때 듀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오에오~오에오에오~"

약한 남자 인트로 따라하면서 막 춤추고 개난리였다지..ㅋㅋ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애들은 항상 듀스 춤을 추고 있고,,뭐 그랬다.

 

 

- 2집의 성공으로 국내 힙합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듀스는

1994년 '여름 안에서', '떠나버려' 등의 신곡과 함께

기존 히트곡들을 리믹스해 수록한 앨범 을 발표해

정규앨범 못지 않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12년이 지난 2006년 지금도 6월 7월만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여름안에서는 바로 이 시절의 추억인 것이다. ㅋㅋ


 

그리고..내가 중학생이던 1995년 4월에는 3집이자 정규음반으로는

마지막 음반이 된 Force Deux 를 출시했다.

이현도 스스로 '듀스의 앨범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앨범'이라

자부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명반이었다.


앨범 발표한 지 3개월이 지난 1995년 7월 듀스는 매니지먼트,

병역 등 여러 문제가 겹쳐 결국 해체했다.

 

이후 솔로활동을 준비하던 김성재는 귀국 후 1995년 11월19일

솔로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으나,

바로 다음날인 11월20일 의문사하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었던

김성재 여자친구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는데,

 

당시에 검사가 무능했는지, 여자가 무죄였는지는 몰라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무죄판결이 났다지..

특히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기각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분이 안풀린다.

흐흐흐~ 졸라 정의로운 사법부 같으니라구..ㅡㅡ+18

관심있는 사람들은 당시의 항소이유서 등을 찾아보도록~ㅎ

(그 검사는 그 유명한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에서도 무죄를 맞았다.

..검찰 내부에서 상당히 말이 많았다고 한다....)

 

담당 변호사는 서정우 변호사..

몇 해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비자금 때문에 구속되었었다.

 

이 얘기는 여기서는 그만하도록 하고,,

 

암튼~~ 결론적으로..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되던 그룹이다.

 

이 두 팀은 모두 1990년대 이후 가요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듀스는 언제나 2인자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주류중의 주류..왕중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듀스는 주류 속에서도 주류에는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채

다소 억울한 미완의 제왕으로 남았었다지..

오죽하면 당시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류라는 말도 들었을까..

특히 매스컴에서 듀스를 까대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 봐선 듀스가 결코 2인자의 위치가 아닌 듯싶다.

 

최근 워낙 힙합이 강세이며 주류로 올라선 데다가

그 수많은 힙합 팀들이 듀스를 한국 힙합의 효시로 받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듀스가 이제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셈이다.

 

 

- 나 자신은 지금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지독한 팬이기도 하지만

- 또한 듀스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듀스의 팬이기도 하다.

 

- 굳이 전설과도 같은 이들의 우열을 가리고 역량을 따지는 것은

- 철지난 매스컴과 저널리즘의 우스운 말장난으로 밖에 안보인다.

 

- 후훗..그냥 쿨하게~ 서태지도 좋아하고 듀스도 좋아하면 안되나?

- SES 팬클럽은 핑클 노래를 들으면 안된다는 규정만큼이나

-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인거 같다. ㅎㅎ

 

 

-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며..

 

- 듀스는 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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