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은 , 로 유명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8년 작. 국내에는 비교적 늦은 2002년에 개봉됐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으로 조기 종영됐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MBC 주말의 명화에 방영된 뒤 이 영화를 접한 사람들이 숨겨진 명작을 찾았다며 무척 기뻐했다고. 그 뒤 네이버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화 사이트에서 관객 평점 9점 이상의 놀라운 점수를 기록 중이다. 은 과는 다른 느낌의 감동을, 와는 다른 느낌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동시에 천재의 불행하지만 불행하지만은 않은 삶을 보여준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감성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 자,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유람선 버지니아 호에 초대합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다른 작품들-과 가 동심을 간직한 소년의 성장에 관한 영화라면 은 일평생을 배 안에서 생활한 천재 피아니스트에 관한 판타지 영화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인 나인틴 헌드레드는 1등실 연회장 피아노 위에 버려진 아이였다. 우연히 흑인 노동자 데니 부드맨에 의해 발견되어 자라게 된 이 아이는 데니의 이름과 아이를 담고 있던 과일바구니 상표, 그리고 아이가 발견된 20세기 첫날 1900년 1월 1일을 기념해 ‘데니 부드맨 T.D. 레몬 나인틴 헌드레드’라는 긴 이름을 갖게 되었다.
흑인이며 석탄 나르는 일을 하던 노동자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양부의 사랑과 노동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화물칸과 연료실을 놀이터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인틴 헌드레드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데니는 사고로 죽게 되고 이후 나인틴 헌드레드는 우연히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돼 버지니아 호의 피아니스트로 살게 된다.
은 나인틴 헌드레드의 절친한 친구인 트럼펫주자 맥스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트럼펫을 팔기 위해 들른 중고 악기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오리지널 레코드. 그는 그 레코드에 얽힌 한 천재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가 왜 배 밖으로 나갈 수 없었는지를 들려준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도저히 연주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이 택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였던 것이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 만해. 좋아한다고. 하지만 막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것으론 연주할 수가 없었어.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야. 그건 신이나 가능한 거지.”
결국 낡은 고철이 돼버린 버지니아 호의 해체 폭파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마는 나인틴 헌드레드. 맹자의 ‘성선설’을 증명하듯 때 묻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에게 세상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더럽혀진 곳이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있어 버지니아 호는 어머니의 자궁이었으며 바다는 양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10개월이 되지 않은 탓에,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용기가 채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 밖으로 나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소 슬픈 결말로 끝맺지만 은 멋진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져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폭풍우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맥스에게 다가가 피아노 고정쇠를 제거하고 흔들림에 맞춰 움직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장면이라든지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도전장을 내던진 ‘재즈의 창시자’ 제리 롤 모튼과의 숨 막히는 피아노 대결은 ‘피아노’를 소재로 삼은 다른 여러 영화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색적인 장면들. 레코드 녹음 중 창 밖으로 보인 여인의 모습을 보며 그녀를 위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장면도 매우 아름답다(그리고 이 녹음반이 맥스가 발견한 유일무이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레코드다).
DVD는 비교적 최근작임에도 불구하고 화질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간간히 보이는 필름 그레인과 거친 톤의 영상, 암부 표현이 서툰 화면은 1900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잘 어울리지만 보다 늦게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못 미치는 화질인 점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팬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평균보다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지, 최악의 퀄러티는 아니니 안심하시길.
반대로 돌비 디지털과 DTS를 지원하는 음질은 시원시원하다. 장르 특성상 영화 내내 울려퍼지는 피아노와 재즈 연주 등의 음은 음이 곧고 환산감이 제법 좋아 라이브한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조금 오버한다면, 마치 나인틴 헌드레드와 함께 항해하며 파티장에서 그의 피아노를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 피아노의 섬세한 음을 100% 구현하지는 못하지만 팀 로스의 명연기와 그의 손끝에 주목하다보면 자잘한 단점들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 화질과 음질이 최근 작품들에 비해 특기할 만한 점은 없다지만 부록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DVD에는 서플먼트가 거의 없다. 극장 예고편과 뮤직비디오,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가 서플먼트의 전부. 하지만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환상적인 피아노 연주야말로 만의 스페셜 피처일 듯하다. 그리고 초회 한정판에는 본 DVD 외 재즈계의 거장 허비 행콕의 공연 실황 DVD를 보너스로 증정하니 쇼핑몰을 샅샅이 뒤져 초회판을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이 보너스 DVD는 오래 전 공연인 관계로 AV적인 퀄러티 평가는 무의미하지만 재즈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공연일 듯하다.
사족 : 나인틴 헌드레드를 연기한 팀 로스는 실제 피아노를 쳐본 적 없는 배우. 때문에 대부분의 장면이 CG로 처리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나인틴 헌드레드의 친구 맥스를 연기한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는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즈 출신으로 영화 속 트럼펫 연주를 직접 했다고.
네이버 리뷰중 tearhunter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