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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자들

이현주 |2006.08.17 10:25
조회 61 |추천 0

 

 

기억속에는 고통의 부분이 있고, 행복의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두 부분 모두 현실에 있어서는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기억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하나씩 다 털어내야만 한다.

기억의 우물에서 퍼내야 한다.

철모르던 즐거운 시절, 완벽주의에 가까왔던 한 똑똑한 여자..

다가올 불행을 모르는채 세상에 대해 당당하고,

하나님앞에 신실했던 여자...

그 시절에 스쳐 지나간 남자들은 삶의 재미있는 추억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행복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오히려 고통과 그리움으로 다가오게 될 줄

몰랐던...불쌍한 여자...

 

1. 잘생긴 동문 남자 친구가 나에게 조용한데서 잠깐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났을 때 교회의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평소에 늘 농담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 조용한데서 둘만 보자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무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다가가고 싶은데 가까이 갈 수가 없어..뭐랄까..너는 너무 예수님 같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예수님 같아?'

그는 계속 말없이 앉아있는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렇게 어색하게 한참을 내 주위를 돌다가 우리는

그 곳을 나왔다.

 

2. 포천으로 군위문을 갔다가 혼자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오던 길,

내 옆에 한 군인이 앉았다.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고는 종교에 대한 질문을 주로 했다. 그러더니 내 이름을 물었다. 그는 내 이름을 듣고는 자기가 상상했던 이름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휴가를 나오는 중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는 내 옆모습이 예뻐서 무작정 따라서 탄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성남에서 잠시 내릴 것을 제의했다. 멀미가 심해서 그러기로 했다. 성남에서 내려 한참을 걷고 나니 속이 좀 가라앉았다. 그가 등을 두드려주겠다고 했을 때도 거절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광장동의 우리 집앞에 도착했다.

그도 따라서 내렸다. 그는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끈질기게 졸랐다. 피곤해 죽겠는데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속 그와 실랑이를 했다. 난 죽어도 전화번호를 안가르쳐 주느라 버텼고 그는 계속 설득하느라 애를 썼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내 손에 쥐어주면서 협박조로 말했다.

'난 잠실에 살거든요. 서울 하늘은 좁아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어요. 꼭 전화해야 해요.'

물론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3.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남학생이 앉아있는 자리 옆에 아무 생각없이 앉아서 갔다. 남학생이 먼저 내리려 해서 다리를 옆으로 비켜 주었다. 그런데 그 남학생이 내 손에 종이를 억지로 쥐어 주고는 내렸다. 난 얼떨떨해서 그 종이를 펼쳐보았다.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물론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4. 군 위문 가는길 버스 안, 옆쪽 뒷자리쯤에 앉아있는 한 군인이 내게 두 손으로 아무 말없이 껌을 내밀었다. 나는 한 번 쳐다보았다가 모르는 척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순진한 내게 그 껌은 혹 약이라도 묻어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 군인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껌을 들고 있는 손이 무안했을텐데...계속 나를 향해 껌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한참을 들고 있다가 머리까지 두 손위로 숙이고는 계속 아무 말없이 껌을 바치듯 들고 있었다. 나까지 무안해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결국 그 군인은 포기하고 두 손을 거두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 군인에게 하고 싶은 말...'미안했어요!'

 

5. 교회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왕십리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때...한양대학교가 가까와서 한양대학생들이 주변에 많았다. 밤10시가 넘은 시간,

그래도 사람이 없지 않은 동네...

한명의 남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자기와 차 한잔 해 달라고 졸랐다. 물론 난 거절했다. 그 남학생은 끈질기게 조르더니 사실은 친구와 내기를 했다고 말했다. 내가 서있는 걸 보고 내가 친구와 자신중 누구와 차한잔을 할지 내기를 했단다. 그러면서 사정하듯 졸랐다. 물론(^^;;;) 난 거절했다. 잠시 후 그의 친구까지 왔다. 둘이서 합세해서 졸랐다. 그리고 실랑이...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자기들 책을 조금 찢어서 본인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고, 난 얼른 버스를 타고 도망쳤다.

 

6. 나보다 한 살 연하인 남학생이 대학부에 새로 왔다. 대학부 부회장이었던 나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며칠 후 그 남학생에게서 러브레터가 왔다. 난 물론(^^;;) 외면했다. 한참 후 그 남학생이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

 

7. 나보다 한 살 연하인 대학부 후배, 나보다 키가 많이 컸고, 청바지와 청쟈켓이 무척 잘어울리는 꽃미남(^^;;), 내가 자기의 첫사랑과 닮았단다. 그러더니 적극적.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라는 말을 신봉하는듯 계속 찍어댔다. 한순간 넘어가주기로 한건지 나도 모르게 그 후배와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시작전 광고 화면, 된장선전(-_-;;)...그가

'누나도 시집가면 저런 거 다 해야돼'하고 속삭였다.

'어, 그래서 나도 걱정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도 둘이 같이 앉아 예배를 드린다든가 했다.

그 당시의 일기장을 보면 임원회의가 있어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나를 그가 허리를 낚아채안고 들어가지 말라고

졸랐다고 써있다.

어느날엔가는 그가 교회 뜰의 벤치에 다른 친구와 앉아 대화중이었을 때 내가 지나가다가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난 손을 놓고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데 그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계속 친구와 대화하면서 벤치 옆에 서있던 내 손을 꽉 잡고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그냥 악수하는 느낌이었지만 한참동안 꽉 잡고 말없이 만지작거리니까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가야된다고 말해서 설득하고는

간신히 손을 빼고 도망갔다.

후배를 더 이상 따로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가

만나자고 전화해도 거절했다.

내가 얼굴에 뭐가 돋아서 못나간다고 핑계를 댔더니 자기가 뽀뽀해주면 다 나을 거라고 말했다. 닭살이 돋는 듯(-_-;;)

했다. 그는 전화에 대고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하여간 그를 떼어내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 신입사원 세명이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회사의 마스코트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기분 으쓱(^^;;)...한 명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 다른 한명이 왜 뿌리치지 않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그들끼리 입씨름을 하다가 날더러 빨리 결정하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교통정리를 해야지 안되겠다고 말했다. 30대초반의 멋진 유부남인 실장님은 그들을 늘 부추겼다.

내가 애인이 있다고 말을 했더니 그 실장님왈

'내가 보기에 먹기 좋은 떡은 남이 보기에도 먹기 좋은 법이야, 당연히 애인이 있겠지. 골기퍼가 있다고 골이 못들어가나,

열심히들 해봐'

기분 엄청 나빴다!!! 떡...(-_-;;;)..

그건 성차별이야!(-_-;;;)

그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마지막 날 회식 자리,

모두들 술을 마셨고 난 교회다닌다는 이유로 물론(-_-;; 진실은 술이 써서 못먹는다는)  술을 안마셨다. 갑자기 실장님이 벌떡 일어서셨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하게 실장님을 쳐다보았다.

실장님이 반대편에 앉은 나에게 손을 길게 내밀었다. 마치 잡아달라는듯 손바닥을 위로 한 자세였다. 난 어리둥절해서 계속 실장님 얼굴과 팔을 번갈아 보았다. 실장님은 내가 손을 내밀어 잡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계속 팔을 뻗어 손을 내민

자세로 한참 서 있었다.

모두 침묵으로 실장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꼼짝않고 가만히 있자 실장님 왈 '프로포즈 하는 거야'

그러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황..

 

9. 내가 봉사하던 초등부...젊고 키카 큰 전도사님이 계셨다. 조용한 성격의 나...게다가 교사분들이 모두 나이많으신 분들이어서 생일축하 담당인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교사 회의 때..

전도사님 왈 '이 선생님 울었어요?'

엉뚱한 질문에 '네? 아니요?' 그러자 전도사님왈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서 운줄 알았어요..'

어찌라고...-_-;;;

초등부 수련회를 갔었는데 전도사님과 나와 다른 젊은 선생님들과 풍선불며 게임준비를 하던 중, 난데없이 전도사님이 내 허리를 껴안았다. 섬짓할만큼 놀란 나...

전도사님 멋적게 웃으며 '허리가 날씬한가 안아본 거에요..'

헐....-_-;;

이후에 내 남친에게 전도사님이 나를 결혼상대로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10. 내 남동생의 과외를 해주던 대학부 선배 오빠...우연히 우리 집에서 둘만 있게 되었다. 나야 뭐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생각하던 때여서 좀 어색하긴 했지만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내 짓궂은 질문에 얼굴이 빨개져서 망설이던 오빠...

잠시 후 '여기 너 밖에 없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지 뭐'

헐...-_-;;; 그 오빠는 이후로도 뜬금없는 말들과 행동들을 많이 했었다. 다 기록하기 귀찮음..^^;; 이후에 그 오빠는 내 남친에게 나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11. 대학부 회장 오빠...자상하고 착하고 미남..오빠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오빠도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발렌타인때 다른 여자들이 준 쵸콜렛은 다 식구들 나눠주고 내가 준 것만 자기가 먹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번 단둘이 만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만남이 시작되자 나의 환상이 깨어진 것인지, 원래 사랑이 아니었는지 내 마음이 돌아서게 되었다. 결국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헤어졌다. 지금도 교회 선후배 사이로 가끔씩 만난다. 오빠는 아직도 모른다. 내가 왜 오빠에게서 마음이 돌아섰는지..상처받았을테고 미안하고..그런데 나도 모른다..

내가 왜 오빠에게서 마음이 돌아섰는지...

 

자질구레하게 하지만 소중하게 스쳐 지나가던 인연들이 많이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Second가 필요하다며 손내밀던 뻔뻔한 유부남에게 집에 전화해서 Second가 필요하다고 부인에게 말씀하시라고

쏘아붙인 적도 있다. ^^;;;

 

아무래도 난 희안한 경험들을 많이 할 운명 혹은 팔자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_-;;;

하여간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끄적임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 스쳐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작은 기억일 뿐이다. 내가 지닌 과거의 기억들 중의 한 단편이다.

진실하게 사랑했던 기억들은 오히려 말할 수 없다는 건

내가 인간인 탓이겠지. 그러나 그 기억들조차도

하나씩 지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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