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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징이라고 이지메를 당했습니다

유종현 |2006.08.18 12:11
조회 930 |추천 1

이번엔 호테이에 관한 사담을 몇 가지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중 일부는 일본의 호테이의 팬이라도 잘 모르는 사실입니다.



▲ 어머니와 함께한 어릴적 사진

* 호테이의 아버지 *
호테이의 아버지는 재일교포 한국인으로 흑진주 수입을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해서 성공한 실업가로서 매우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의 집은 언덕 위에 있었고, 당시 하우스전문 잡지에 취재기가 실릴정도였습니다.
어릴 적 생일파티는 볼링장을 통째로 전세내서 치를 만큼 부유하였습니다.
한편 호테이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미스 훗카이도 출신으로 매우 미인이었지요.
그러나 그가 어릴적 아버지는 어머니와 갑자기 이혼을 하고 가족을 떠났습니다.
그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셋의 처지는 하루아침에 바뀌어서 갑자기 저택을 나와 아파트 생활을 하게되 어머니가 두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호테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고 간 사람" 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소년기는 불우하였습니다.
그의 고통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철저하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그에게 견디기 몹시 어려운 상처가 되 버렸습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호테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아무튼 그 후로 그는 아버지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92년 한국의 병원에서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으며 당시 그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호테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이 점만으로도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에 참배를 왔었습니다.

* 방황 그리고 기타 *
호테이는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입니다.
학교에서 급우들로부터 조센징이라고, 혼혈이라고 이지메도 많이 당하였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군마현에 있는 명문 사립 학교(미션 스쿨)를 다니던 그가 Rock을 지향해 머리를 기르자 교사가 호테이를 불러 그것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호테이가 예수도 머리가 길지 않느냐 라고 말하고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그는 그 후 도쿄로 와서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기타를 잡은것은 17살때부터였습니다. 방황하던 시절, 길을 가다가 T-REX의 리더 마크볼란이 기타를 잡고 있는 포스터를 보자 그 멋진 포즈에 반해 기타를 시작한것입니다. 그 포스터의 기타를 잡은 마크볼란의 기분 좋은 표정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날을 위해…



▲ 그가 기타를 처음 잡은것은 17살 때 부터이다.

1979년.
당시 아마츄어 뮤지션의 등용문이었던 "East West"라는 락 페스티벌이 있었습니다.
주최는 악기제조사로 유명한 YAMAHA 였습니다.
여기에서 두 락 그룹이 지방 결승 (참고로 보위 멤버중 이 셋이 군마현 출신입니다)에서 만나게 되는데 바로 히무로 쿄스케와 마츠이 츠네마츠가 있는 "데스페날티"와 호테이 토모야스가 이끄는 "Blue Film"이었죠.
결국 승리는 데스페날티에게 돌아가고 전국대회로 진출하게 되죠. 하지만 데스페날티도 승리는 하지 못했지만 히무로 쿄스케는 베스트 보컬상을 받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호테이는 기타리스트로 우수상을 타게됩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계속 머물지 않고 호테이는 런던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더욱 음악을 배우게 됩니다. 그의 우상이었던 데이빗보위의 나라에서...



▲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가였던 마이클 케이먼(1948~2003)과 공동작업한 음반 Kamen & Hotei-Guitar Concerto. DECCA 레이블로 판매중이다. 케이먼은 몇번 호테이를 프로듀스 한적있다. 아틀란타 올림픽 페막식에서 그의 지휘로 오케스트라와 호테이의 일렉기타 퍼포먼스 랑데부를 선보였었다.

*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
“한때 아버지는 기타쳐가지고는 먹고살 수없다. 라고 하였는데 나는 지금 기타로 먹고 살고있으며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라고 작년4월 내한 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호테이는 말하였습니다.
2005년 3월25일에 개막되는 일본의 아이치 만국 박람회 개막식에서 일본대표로 오케스트라와 호테이가 협연을 하였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 음악 프로젝트 'Love The Earth'에서 음악 고문을 맡은 에릭 크랩튼(59)이 "일본을 대표할 기타리스트는 호테이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그의 작업실에 있는 기타들. 거의 Zodiac Works-일본 기타 제조업체-모델이다.



▲ 그의 메인기타인 모델 TE-HT. 호테이의 심볼마크인 기타. 원래 페르난데스라는 일본 기타 제조업체의 것인데 후에 Zodiac Works 로고가 달리게된다. 이 기타의 특이한 선의 교차된 디자인은 호테이의 것인데 그 아이디어의 탄생이 재밌다. 보위의 그룹당시 공연중 뒷풀이하던중 기타위에다 펜으로 장난삼아 그린게 이 문양이었다.

어찌보면 안타까운 삶일 수도 있습니다.
어릴적 불우함을 겪으며 로커가 된다는게.. 사실 록은 반항의 음악이며 좌절의 쓴맛을 호되게 본, 인성이 어느정도 파괴된 사람일수록 그 깊이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는 자주 "고독" 이라는 주제가 사용됩니다.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고독을 많이 타는 사람으로 그는 우울함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염세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음악과 인생에서 고독을 화려하게 승화시키는 독특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무라이 픽션의 홍보차 당시 한국땅을 처음 밟아본 호테이. 나가노 히로유키 감독과 함께. 호테이는 사무라이 픽션의 영화음악을 담당하였는데 무려 70곡이 넘는 곡을 만들었다고한다. 그래서 이영화 OST에는 수록되지 않고 영화에만 나오는 곡들이 꽤 된다.

록스타의 부재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때 주목받지 못하는 장르였던 록 앤 롤을 메이저 장르로 끌어올려 현대 일본 록 음악 역사를 바꿔버린 주인공으로서 납득가는 소리입니다.
“Rock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Rock & Roll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말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 일본 음악계에서 큰형님으로 통하는 위치… 그러면서 한국에대한 인연을 기꺼이 수긍하며 우정적인 태도로 한국을 대하고있습니다.
이정,블랙홀에게 자신의 곡을 기꺼이 주었고 CF,영화등에서 자신의 곡을 기꺼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기아,대우자동차광고배경음악, 최근에는 투가이스,웃찻사의 단무지 아카데미 인트로 등등 우리는 이미 모르는사이 그의 음악에 익숙해져있습니다.



▲ 2000년. 신 의리없는 전쟁 제작팀들과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호테이.사진은 부산 남포동 PIFF광장에서 사카모토준지와 도요카와 에츠시와 함께 무대인사를 하고있다.

여전히 정통 록을 잇는 고독한 길에서 화려한 삶을 살고있는 190cm키의 비쩍마른 인간 막대기. 공연에서 그를보면 세로의 막대기(자신)과 크로스된 가로의 막대기(기타)로 두개의 막대기로 보입니다.
한때 자살한 X-Japan의 리더 히데가 가장 존경하였던 사람…
현재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거의 무한에가까운 창작력 이 있는 기타의 신. 그는 매년 하나의 앨범을 발표하며,매년 전국투어를 갖습니다. 그것도 아내와 여러 신인가수들을 프로듀스 해주면서.. 그의 정력이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지금은 확실히 그의 전성기입니다. 자신과 일을 사랑하며...



▲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 의리없는 전쟁에 공동 주인공이었던 도요카와 에츠시(러브레터)와 함께.

토모야스 호테이 {한국이름: 인태}
그는 어찌보면 일본속에서 거둔 한국인의 승리일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든, 밤이면 나는 언제나 혼자 기타를 치고 있다고 생각해줘” – HOT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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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테이에게 기타리스트로서의 모티브를 주었던 T-REX의 마크볼란. 비틀즈의 링고스타가 가장좋아했던 뮤지션이며 데이빗 보위와 오랜친구이다.



▲ 호테이는 마크볼란처럼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는 어릴적 꿈을 이루었다.



▲ 호테이의 프로듀스로 인해 제기에 성공한 이마이 미키. 정든후 결혼하였으며 둘은 지금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이다. 둘사이에 딸 하나가 있다. 아직 애기인...



▲ 가장 최근 발표된 호테이의 신곡 싱글.LIberty Wings-해방의날개의 포스터. 2005년 4월27일 발매. 현재 필자는 이 음반을 주문한 상태이다.



▲ 1995년 발매한 호테이의 첫 베스트 앨범인 기타 리듬 포에버 Vol 1,Vol 2. 이 두 앨범은 생산에 들어가기도 전 프리오더(예약)으로만 200만장 전량이 단 일주일만에 매진되었다. 이 기록은 1995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ps: 배경음악은 호테이작곡,연주의 Velvet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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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구성:
an old Fan of Hotei,
Luke

추천수1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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