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서울 도심에 나타난 ‘OTL맨’…폭염 속에 표현된 ‘좌절’

김동진 |2006.08.21 13:00
조회 75 |추천 1


[쿠키 사회] 무더위가 한창이던 8일.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쫄쫄이’ 옷을 입고 얼굴에도 흰 가면을 쓴 남자가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양손과 두 무릎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고개를 떨군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3∼5분간 미동도 없던 그는 몸을 일으켜 잠시 팔다리를 풀어준 뒤 옆 골목으로 옮겨 같은 포즈를 취했다.

행인들은 대부분 눈길 한번 건네곤 무심히 제 갈 길을 갔지만 그는 하루종일 이를 반복했다. 또 이 날부터 일주일간 광화문,종로,여의도 공원,홍익대 앞,청계천,시청 앞,국회 등 서울 도심을 돌아다니며 같은 자세를 되풀이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지,그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 지 설명도 없이 묵묵히 같은 동작만 계속 보여줬다.

예정된 일주일이 지난 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서울 곳곳에서 벌인 ‘도심 공연’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게재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OTL 퍼포먼스’였다. OTL은 머리를 형상화한 O,팔과 몸을 가리키는 T,다리를 뜻하는 L이 합쳐진 이모티콘이다. 사람이 고개를 떨군 채 무릎 꿇고 엎드린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좌절’을 상징한다.

OTL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온라인에서 ‘김치 샐러드’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작가 윤명진(27)씨였다. 윤씨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미술 작품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게맛살로 만든 인체의 신비’ ‘순대로 만든 순대렐라’ 등이 대표작이다. 서양 명화를 쉽게 풀어 블로그에 연재했던 만화는 최근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이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군중 속에서 오히려 소외당하는 개인의 좌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왜 나만 불행한 걸까’란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이를 무관심 가득한 도심이란 공간에서 좌절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에 실어 표현했다는 것이다.

몸에 달라붙는 의상 탓에 땀은 비오는듯 했고 귀를 덮은 모자 때문에 주위 소음조차 희미하게 들렸다. 3분 정도 바닥에 엎드려 있다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란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36도를 웃도는 날씨 때문인지 행인들은 그의 희한한 행동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윤씨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번 작업이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좌절이 더욱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좌절해 상태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비로소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라며 “좌절의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라는 뜻밖의 교훈을 얻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윤씨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OTL 퍼포먼스’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중국 일본에서도 쓰이는 OTL의 국제적 기호성에 주목해 아시아 각국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다”며 “내년 초 쫄쫄이 복장을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이라고 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