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파이 이야기
범주 : 소설
저자 : 얀 마텔
역자 : 공경희
출판사 : 작가정신
기간 : 4/13 ~ 4/25
(▶ '파이 이야기'을 읽는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나는 조그마한 배에 의지한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정처없이 헤매이는 '파이'와 뱅골산 호랑이 '리처드 파크' 그리고 그들의 또다른 동승인이 되어 생존을 향한 끊임없는 사투를 펼치던 나날이었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문득 이 책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 책은 '로빈슨 크루소'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와 같이 홀로 외딴 어딘가에 갇혀 생존을 위해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파리대왕'에서와 같이 생존을 향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1차원적 동물성의 발화를 말하려 한 것인지... 후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이 책의 범주는 '소설'에... 그것도 '성장소설'에 분류되어 있었다. '성장소설'이라...... 불연득 '성장소설'이라는 분류표를 달았던 과거 내가 읽어보았던 책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행복한 가정에서 신을 사랑하고, 부모님의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어느 순수한 소년이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게 되면서 과거 유년의 때를 벗고 한층 성숙해 진다는 어찌보면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태를 갖추는 듯 싶지만, 나는 그 '성숙'의 출처가 궁금하다. 소년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표류는 하되, 혼자가 아니다. 동행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랑우탄과 얼룩말, 하이에나 한마리, 그리고 거대한 뱅골산 호랑이. 여기서 그 어린 소년의 생존은 단순한 삶 영위가 아닌 투쟁이 된다. 먹이 사슬의 한가운데 놓인 그는 참혹한 생태계의 인과율을 접하게 되고, 그 인과율속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만일 생존을 향한 그의 몸짓이 '성숙'이라는 단어에 부합하다면 이 소설을 '성장소설'의 카테고리 속에 포함시키는것에 무리는 없어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성숙이라 함은 사회성을 깨닿고, 자의식을 발견하며 성인(成人)이 되어가는 과정이지만, 그런 '성숙'이라는 범위에 '생존'을 더하게 되면 그 의미는 크게 달라져 버린다. 적어도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종(種)차원에서 생존을 위한 욕구는 가장 저차원적 욕망의 대상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의 욕구 외에 다른 욕구는 모두 배재당한채 어느 무인도라던가 바다 한가운데 갇혀있게 된다면...?
이 소설은 단순히 어른이 되어감을 의미하는 '성장'이 아닌, 자연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 인간이라는 종(種)이 다른 대상들 틈에서 어떠한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것이다. 그런점에서 이 소설은 어쩐지 참혹하기도 하고, 비참하기조차 하다. 자연의 인과율은 우리의 안락한 인간적 테두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 부터 이 소설은 해피엔딩임을 강조한다. 온갖 역경 속에 '파이'는 살아남았고, 훗날 가정을 이루며 삶을 영위하지만, 문득 '살아남은 것'이 과연 행복과 동일시 되는 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분명 살아남음으로 인해서 맛있는 비스켓을 먹을수 있고, 동종의 인간들과 대화를 나눌수 있지만 그것을 과연 happy라 일컬을수 있는 것일까?
지구상에는 나 아닌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잊곤한다. 마치 이 세상의 무분별한 독재자가 되어 다른 존재에 대한 의미 자체는 사념의 대상에서 조차 배재한채 말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세상 모든 존재의 소리에 귀을 기울일수 있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할수 있기를 바란다.)
# 성스런 의식의 언어, 도덕의 찬미, 고결함과 의기양양함과 환희의 여운, 도덕관념이 되살아나 사물을 지성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해진다. 우주를 도덕적인 선을 따라 정돈한다. 존재의 기본원칙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때로 명확하지 않고, 분명치도 않고 즉각적이지도 않다.
# 무신론자들이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을 상상할 수 있다. "하얗군, 하얀색이야! 사-사-사랑! 아, 하느님!" 죽으면서 믿음이 생긴다. 반면에 불가지론자들이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누룩 없는 사실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면, 몸을 감싸는 따스한 햇살에 "뇌-뇌-뇌의 산소가 부-부족하군"이라고 하리라. 마지막까지도 상상력 부족으로 더 좋은 이야기를 놓치고 말겠지.
#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 형을 잃는 것...... 함께, 나이 드는 경험을 하고, 형수와 삶의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를 칠 조카들을 선사해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 길잡이가 되어 도움을 주고, 가지를 받쳐주는 기둥처럼 나를 든든히 받쳐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어머니를 잃는다는것...... 머리 위의 태양을 잃는다는 것.
# "난 죽지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랴, 신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 공포심만이 생명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명민하고 배반 잘하는 적이다.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접근해, 쉽게 약점을 찾아낸다. 공포심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우리는 잠시 차분하고 안정되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다가 가벼운 의심으로 변장한 공포심이 스파이처럼 어물쩍 마음에 들어선다. 의심은 불신을 만나고, 불신은 그것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불신은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병과 다름없다. 의심은 간단히 불신을 해치운다. 우리는 초조해진다. 이성이 우리를 위해 싸워 온다. 우리는 안심한다. 이성은 최신 병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부인할 수 없는 여러 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성은 나자빠진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초조심감에 끔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