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간의 생존을 위해, 혹은 아픔을 이기기 위해 한 행동과 말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 상처를 받은 다음에 다시 누군가에게 그 상처를 돌려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는 되는 미묘한 알레고리.
2.
어리버리한 신병을 보통의 병사로 만들기 위해서, 섬약하고 착한 고참들은 서서히 '악마'가 되어간다. 악마가 되지 않으면 자신도 당한다. 자신이 고참이 되면 불합리한 질서를 바꾸리라 결심하지만, 순간순간 쌓여가는 위기는 그 결심을 천천히 마모시킨다.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된다. 제대하면, 때로는 피해자로 때로는 가해자로 존재했던 그 시간들을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태정아, 넌 군생활 어떻게 버텼냐?"
"나? 기억 나지도 않아. 밑에 애들 잘해줘라. 너무 갈구지 말고."
뿌연 조명 속에서 나누는 두 친구의 대화는 칼날처럼 파고든다. 나 자신이 그 방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
여자친구와 헤어진 신병은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본의 아니게 마지막으로 그를 갈군 병사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휴가를 나와서 고참이었던 옛친구에게 무언가 하소연하지만, 그는 이미 그 곳을 잊고 평범한 일상인이 되어 있다. 통하지 않는 대화. 그리고, 다가오는 복귀시간.
3.
이등병 시절, 온갖 불합리 속에 치를 떨며 나중에는 다르게 하리라 결심했지만 나 역시 병장이 되어서 몇몇 병사를 '족쳤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단지 '규격에 맞지 않는 잔가지'를 처내는 기분이었을 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과정을 겪으며 남자들은 세상의 법칙을 알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법칙 하나.
"다 그런거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거야."
4.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그렇게 피해와 가해의 순환 속에서 모두들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어간다.
5.
빌어먹을. 게임방에 앉아서 이 영화를 천천히 보고 난 뒤, 나도 모르게 담배를 입에 문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전혀 그곳의 생활을 이해하려고도, 이해해주지도 않는 바깥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소외감. 나와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미칠 것만 같았던 병사들 사이의 '위기의 순간'들. 다시 보지 않겠다고 했던 여자의 마지막 말과, 숨통을 조이던 복귀시간. 자학이 폭력성으로 뒤바뀌던 순간들. 엿 같은 기억, 기억들.
6.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룬 영화 중 이것보다 솔직하고 적나라하며 공감이 가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곳을 쉽게 잊지 않으리라. 나 역시 용서 받지 못한 자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 시절의 시간 속에서 살아남았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내게 그 시간은 과연 끝났는가.
7.
혼자 소주라도 마셔야겠다. 아직 남아 있는 전우들을 위해서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