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죽어가는 어머니 옆에서 절규하는 레바논 소년

송호섭 |2006.08.22 18:02
조회 72 |추천 1


 

자신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어머니를 잃고 오열하는 소년.

 

소년은 훗 날, 이스라엘이 말하는 소위 '테러리스트'가 되어, 이 날의 피맺힌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몸이 찢겨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또다른 폭력으로 복수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쏟아부은 이 날 폭탄의 몇 십배는 족히 되는 비용과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누가 자신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에는 피멍이 들고, 두 눈에는 피눈물이 흘렀을 이 소년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이 날 이스라엘이 이들에게 보여준 증오보다 훨씬 더 큰 증오를 가지고 언젠가 이 소년은 이스라엘에 똑같은 아픔을 줄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금언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테러를 또 다른 폭력인 무력으로 뿌리뽑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은 따라서 성립불가능한 말이다. 테러는 힘과 무력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신념'의 문제이다.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속에서 싹튼 좌절과 분노는 증오와 복수에 대한 신념으로 발전되어 확고히 내면적으로 자리잡는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주인공이 미래에 다시 도래한 파시스트적인 독재사회를 타도하기 위해 적과 싸우다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인간의 신념은 그 어떤 총알로도 뚫을 수가 없다'고 외친 것처럼, 한 번 굳게 자리잡은 인간의 신념은 그 어떤 첨단무기로도 굴복시킬 수 없다.

 

누가 이 날 이 후, 저 소년의 마음 깊숙히 자리잡았을 피맺힌 분노와 복수에 대한 신념을 막을 수 있을까.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들이 말하는 테러를 없애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매일매일 더 많은 소위 그들이 말하는 미래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고, 피와 보복의 악순환은 대를 이어 계속되어 우리 미래세대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테러를 진정으로 종식시키는 길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노와 증오가 깊숙한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신념화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으로 이룰 수 없다. 오직 '화해'와 '협력'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다.

 

오늘 이스라엘은 이 소년에 씻을 수 없는 증오와 분노를 주었다. 그 증오와 분노는 점점 이 소년의 내면으로 들어가 오늘 이스라엘이 퍼부은 폭탄의 몇 십, 몇 백배를 더 쏟아부어도 없앨 수 없는 강력한 '신념'이 될 것이다.

 

이제 아무도 이 소년을 막을 수 없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