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ers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출연 : 마이클 피트(매튜), 에바 그린(이사벨), 루이스 가렐(테오)
1968년, 봄,
어느 날.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그 혁명의 해 2월 9일, 시네마테끄 프랑세즈의 설립자앙리앙글루아를 해임한 사건이 발생한다. 권력에 의해 상상력이 침해된 이 사건은 70여일 간의 긴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세계가 영화를 통해서 폭발한다.
혁명의 한 복판에서 세 젊은이가 만난다.
그리고 촛점은, 혁명에서 이 세사람에게로 이동한다.
왜 시선이 이동하는가? 그들은 어떤 인물들인가?
혁명에서, 세 사람으로의 이야기가 이동하는 것은, 중요한 전환이다. 그들의 인물 관계를 통해서, 혁명의 본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매튜, 이자벨, 테오. 그들을 살펴보자.
그들의 역활 분담
노동 계급 출신의 미국.
매튜는 말끔한 양복을 입은 단정한 모습과, 이자벨과 테오를 대하는 태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의가 바르다.
매튜는 "싸구려 학생 호텔, 뤼 말르브랑쉬"에 머무는 미국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비난할때 없는 친절하고 예의바른 태도는 이자벨과 테오의 가치와 문화권에 편승하고 싶은 미국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매튜가 그의 공간에 홀로 남게 되었을때를 보자. 그는 복도를 흐트러진 모습으로 노래 부르며, 세면대에 소변을 보고, 가족에게 편지를 쓰다가 자위행위를 한다. 이런 매튜를 통해, 미국적 보수주의를 보여주고 있다.매튜의 외피는 단정한 양복으로 감싸고, 인사를 하며,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은근히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며,상대방을 조롱하고 있다. 매튜가 이자벨의 집에서 세면대에 소변을 누고, 테오의 칫솔을 거절하는 것을 보라. 테오는 매튜의 소변이 자신의 칫솔에 뭍은지도 모른채, 열심히 이를 닦는다. 양복 입은 매튜가 테오를 얼마나 점잖게 예의바르게 조롱하고 있는가. 자신은 오염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매튜의 모습은, 미국적 태도가 얼마나 이중적인것인가를 보여준다.
소부르주아 출신의 프랑스
이자벨과 테오는 샴 쌍둥이다. 그들은 매튜를 대하는 태도는 "평등" 이다. 이자벨과 테오는 자신의 몫을 동등하게 매튜에게 나누어 주고, 이자벨과 테오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도, 그들의 어머니가 식사 몫에 알맞은 분배에 대해서이야기 하는 것은, 프랑스가 미국을 동등하게 대하고자 하는 시선의 반영이다.
하지만, 이것은 친절한 외피일 뿐. 매튜를 앞에 두고, 프랑스 어를 쓰는 이자벨과 테오, 그들의 어머니. 또, 싸구려 학생 호텔을 강조하며, 매튜를 소개하는이자벨과, "나는 말르브랑쉬 호텔이란 말을 좋아 하지 않는단다" 라며, 매튜보고, 자고 가라는 그녀의 어머니의 은근한비아냥 거림.
이것이 그들이 진정으로 미국을 보는 시선이다.여전히, 미국은 그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한 국가인 것이다.
We accept him, one of us.
매튜는 그들의 일원이 된다.
어떻게?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영화"이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 배경은 영화로 대두 되는 문화에서 극복이 되는 듯 보인다.매튜와 테오는 서로의 문화를 찬양한다. 키튼과 채플린을 두고 벌이는 논쟁을 보라.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국가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공존과 이해" 이것이 문화의 가치이다.
문화적 가치로, 그들이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가?
영화로 퀴즈를 내서, 그들은 서로에게 벌칙을 준다. 이자벨과 테오의 이상한 벌칙들.매튜는 혼란스럽다. 이자벨과 테오의 비정상적인 관계.
얘네들 왜 이래?
테오와 이자벨은 벌거 벗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다. 그들이 이상한 남매 관계.
그들은 왜 이래야 하는가.....?
테오는 아버지가 베트남 참전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시대를 방기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아버지 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는 기존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혁명을 통한 사회적 선을 믿는다.그는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자유주의자다. 자유의 여신에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붙여 놓고, 모택동의 작은 조각상을놓아 두는, 테오의 사상은 노동계급의 그것이다.
이자벨은 테오와 아버지 사이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 집안 이 곳 저 곳을 엉망 진창으로 만들고,매튜의 단정한 옷매무새와 머리를 흐트러 뜨리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그녀의 방을 보자. 그녀의 태도의이중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른 방은 자유롭게 흐트러트리는 그녀는 자신의 방은 말끔하게 정리 정돈을 하고,목욕하는 장면에서도 매튜와 테오가 베트남전에 대한 논쟁을 할때, 그녀는 무심히, 자신의 물건과 욕실의 화장대를정리 정돈하고 있다. 또, 영화속 그녀의 소품들은 - 모자, 원피스, 코트 - 모두 빨간색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녀역시, 테오처럼 사회주의를 동경(?)하지만, 자신의 영역의 질서는 포기 하지 않는 소부르주아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칠 뿐, 애매모호한 태도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자벨의 소부르주아적 태도는 타파가 아닌, 유지에 중점을 둔다.매튜와 테오와 벌거벗고, 셋이 장면을 부모님께 들킨 것을 알았을 때, 당황하며, 수치심에 자살을 택하는이자벨을 보라. 그녀의 자유로움이, 부모에게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혁명을 통해서 서로 얻고자 하는 "자유"는 상이하게 다른 그것이며, 혁명에 동참하는 이유 역시,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매튜가 보기에, 테오와 이자벨의 관계가 이상한 이유도 상이하게 다른 정신의 합이, 혁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너와 테오가 서로 다른 각자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까?
매튜는 퀴즈의 벌칙으로 이자벨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그리고 모든 면에서 자유로웠던 이자벨이 처녀 였음을 알게 된다.이자벨에게 더욱 사랑을 느끼는 매튜.
이자벨의 처녀성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프랑스인 이자벨과 테오의 두가지 사상의 공존은, 미국인 매튜에게, 다가갈수 없는 거대한 벽과 같았다.하지만 그녀가 아직 아무도 받아 들이지 않은 처녀라는 사실은, 그녀의 사상의 순수성과, 각자의 본질이분명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매튜는 두 사상의 각자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다시 말하면, 미국적 사상이 개입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혁명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동거는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같은 한사람의 반처럼, 그리고 지금 너는 내가 너의 부분처럼 느끼게 만들었어"
꿀을 먹으며, 말하는 매튜.
지금까지, 그들의 동거는 꿀처럼 달콤하다. 하지만....
"이자벨과 내가 썀쌍둥이라는 거, 농담이 아니라구"
"퐁듀 아니면 라타투유야?"
"뭐가 어떤거야?"
"이게 라타투유, 이게 퐁듀야"
"아니야, 이게 퐁듀, 이게 라타투유야"
"먹는게 꼭 토하는거 같아"
결국, 매튜는 먹지 못한다. 똑같이 새카맣게 타서, 어떤게 어떤건지 모를 음식을 말이다. 그리고 쓰레기 통에서 가져온 한개의 바나나.매튜는 한개의 바나나를 자연스럽게 세개로 나눈다. 세 조각으로 나누어 지는 바나나.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이제 더이상 하나가 될 수 없는 바나나 처럼, 그들 역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것이다.
매튜와 이자벨과 테오가 같은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자. 욕조 앞에 세 부분을 나누어진 거울로 세 인물을 비춘다. 한 욕조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로 논쟁을하며, 거울속에 홀로그램처럼 따로 존재하는 매튜와 이자벨, 테오의 모습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본질을 보여준다.
누가 누구의 영향으로 발생했던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떨어져 나온 이상, 이것은 합쳐 질 수 없는 다른 개체가 된 것이다.매튜는 이자벨과 테오의 사상적 본류에서 떨어져 나온 다른 개체이며, 매튜가 이자벨과 테오의 주위를 빙빙겉돌기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희는 성장하고 있지 않아"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을 증명하라는 이자벨에 화를 내는 매튜.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이자벨과 테오의 각자의본질을 찾아 나눠 놔야 해.매튜는 이자벨과 데이트를 나가고, 그녀의 방을 보게 된다. 단정한 숙녀의 이자벨의 방. 기존의 질서들을 착실하게 잘 따르는 듯한 반듯한 모습의 이자벨, 침범당하길 원치 않는 그녀 내부의 공간. 그녀의 방을 보고,누나들의 방을 떠 올리는 매튜. 같은 집, 같은 방, 같은 차. 자유주의 속에 은근히 내제하고 있는 사회주의의 모습.
이자벨의 또다른 본질. 결국, 매튜는 이자벨과 테오가 서로 확연히 다르면서도,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야, 내 방에서 나가!"
매튜는 이자벨에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각자 다른 방에서 생각에 빠진 세 사람.
그들만의 혁명.
테오는 100만명의 홍위병들이 책을 들고, 폭력이 아닌, 문화로 대항하고자 한 아름다운 영화속 혁명을 믿는다. 매튜에겐, 단지 영화 일뿐, 명백한 모순이라고 한다. 테오가 정말로 영화속 혁명을 믿었다면, 그는 지금 거리에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와인에 취한 매튜는 그가 테오를 바라보는 본심을 술김에 드러낸다.사회주의를 동경하는 테오가 지닌 이중성, 소부르주아적 속성을 꼬집어 내며, 그런 태도가 영화를 개인들이 꿈꾸는 몽상으로 끝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한다.
테오 너는 정말로, 혁명을 원하기는 한 것이냐....?
이것이 68혁명의 본질.
분명 영화에서 시작된 문화 혁명이, 왜 과격한 폭력으로 번지게 되는가...?
테오가 믿는대로라면, 사람들은 손에 책을 들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자벨과 매튜가 그들의 방에서 나와서데이트를 하는 거리에, 파괴적인 혁명의 흔적들은 영화가 설파했던, 가치를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상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혁명은, 이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너지게 되고, 영화속 혁명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되는 68혁명.
믿지 않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치를 사람들은 동경은 하지만, 믿지 않는 것이다.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꿈만 꾸는 몽상가들.
그렇다면, 영화는 헛된 몽상일 뿐인가...?
물론 현실에서 극복될 수 있다. 매튜와 이자벨, 테오가 "국외자" 라는 고다르의 영화를 흉내내며,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단축 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변화시키는가...?
단지, 세 사람.....
영화 또는 문화의 목적은 집단적 계몽이 아니라, 개인을 계몽하는 것. 집단화된 문화는 또 하나의 파시즘의 양상.
매튜는 말한다. 100만명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 둘, 또는 셋의 혁명일 뿐.
그들만의 혁명은 성공하는가..?
이자벨은 거실에 세 사람이 함께 잘 수 있는 작은 천막을 만든다. 이자벨을 사이에 두고 테오와 매튜가 나란히 눕는다. 매튜가 와인에 취해 이자벨에게 말한다.
"아름답다"
"그래, 난 취했어."
"그리고 넌 너무 이뻐"
"내일 아침에 나는 술에서 꺨거지만, 넌 그때도 여전히 아름 다울 꺼야"
값비싸고, 오랜 전통을 지닌 와인, 아름다운 이자벨은 미국이 동경하는 유럽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은 잠에 빠지고, 그 사이에, 테오와 이자벨의 부모님이 그들이 벌거벗고 공존하는 모습을보게 된다. 이자벨은 매튜가 잠든 사이, 테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것은 분리 될 수 없는 그렇다고,합쳐질 수도 없는 상이하게 다른 두 가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들만의 혁명은 기성세대인 부모에게 그들의 치부를 들킴으로써, 수치스럽게 끝이 난다.
부모는 말없이 수표는 놓고 떠난다.부모의 수표 없이는 생계도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세대가 이룩해 놓은 경제적 발전에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문제를 방기한 부모를 과연 그들이 문책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자벨은 깨어나서, 부모님이 왔다 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테오와 매튜가 잠든 사이, 가스를 새어나오게 해서,함께 자살을 시도 한다. 테오를 포기 하느니, 동반 자살을 선택하는 그녀.
우리 둘, 아니 우리 셋. 영원히 공존하는 길. 그리고 갑작스레, 창 문을 뚫고 들어 오는 돌.
몰래, 자살 시도를 감추는 이자벨. 이기적이며 갈팡질팡하는 소부르주아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In the streets.
창문을 뜷고 돌이 들어 온 순간, 영화의 촛점은 다시 거리의 혁명으로 돌아간다.
매튜와 테오와 이자벨의 동거가, 실패로 결말이 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혁명으로 다시 전환된다. 세 사람의 통합의 실패로, 왜 혁명이 미완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 이제 시작하는 혁명의 장으로 세 사람이 나온다.
처음, 거리의 혁명을 보여주며, 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어 갈까 라는 궁금증을 세 사람의 가치 충돌로보여주고, 다시 거리의 혁명으로 돌아오는 구성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이자벨롸 테오, 매튜가 그들만의 방에서 연극을 끝내고, 새로운 막의 시작 처럼.
어떤 혁명
이제 결론이다.
거리를 물들인 빨간 깃발들. 돌을 던지고, 불길이 치솟는 거리.테오는 점점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혁명에 가담한다. 매튜는 테오를 저지한다.
"이건 폭력이야"
라는 매튜의 말에 화염병을 손에 들고 이것은 "이상"이라고 말하는 테오. 영화의 이상과 현실의 이상의 괴리를 보여주는 장면. 테오는 영화속 책을 들고 행진 했던, 홍위병들을 동경했다. 영화속 혁명은 고귀하고 우아함 어떤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혁명은 "폭동"이며, 타도에 의해 다른 것을 규정 지어 버리는 격렬한 행동일 뿐.
문화에서 시작된 혁명이, 결국은 문화는 사라지고 폭력만 남는, 또 하나의 다른 모습의 파시즘일 뿐이다.
그들의 방에서 갑작스레 뛰어 나와, 너무도 갑작스럽게, 혁명에 가담하는 테오와 이자벨.
무엇을 위해 거리에 나왔는가...?
반체제? 반문화? 부모의 집에서 경제적 안락을 누리며, 그저 고민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이런 목적의식을찾을 수 있는가...?
그들의 행위의 목적은 이미 사라졌다. 단지, 그들에게 억압하는 경찰과 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을행사 할 뿐. 매튜의 말처럼, 엿같은 병속에 담긴 파시즘이 그들의 혁명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고 자 했던, 이상의 실패.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 혁명을 이룩하자는 사람들의 구호.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것이 파괴되어 져야 하는 것인가...?
혁명은 우리가 믿는 문화적, 영화적 가치를 가차 없이 파괴했으며,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꿈으로 끝나 버린 것.
이자벨과 테오는 혁명 속으로 사라지고, 혼자 남는 매튜.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보라.
파괴된 흔적들...
감수성과 국가적 정체성.
미국인 매튜는 제 삼자로써 이자벨과 테오의 사이에 개입해서, 나름대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하지만, 매튜가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시각과, 68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매튜 역시 그 안에 내제하고 있는 국가적 정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프랑스 영화와 문화를 동경한다고 할지라도, 감수성과 국가적 정체성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 된다.화염병을 들고 있는 테오에게, 키스를 하며, 이것을 사용하자고 부르짓는 매튜, 하지만 또 베트남전의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들먹이는 매튜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항상 다른 곳에서 이상을 찾으려 하고, 현실에는 그럴 수 없는 나름대로의 당위를 부여한다.
매튜는 자신의 믿는 가치를 찾아, 프랑스에 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간다. 니콜라스 레이의 자니 기타라는 미국 영화 처럼, 총잡이 자니는 기타를 치다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총을 선택한다. 이것이 미국이 보여주는 현실적 선택이다. 이자벨과 테오에게 키스를 하며, 이것을 사용하라는 매튜의 부르짓음은, 매튜가 꿈꾸는 몽상이다.
미국적 현실에서 도망쳐 나온, 매튜는 프랑스에서도, 그가 찾는 이상은 보지 못한다. 개인의 감수성이, 국가적 정체성에 압도 되는 모습은, 무력한 문화적 이상을 보여준다.
어떤 곳에서도 우리의 꿈을 볼 수 있는 현실은 없다.
우리는 모두 몽상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