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fernee Hardaway
우리들은 재능과 열정과 행운으로 어렵사리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가도 한번의 실수로 낙오하는 운석과 같은 존재를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됩니다. 스타는 대중이 그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스타인 것입니다. 대중은 정직하다기보다 솔직합니다. 대중들의 인기를 끝가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관리와 노력이 필수적이고 연속적인 활약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한 스타는 가차없이 은하계에서 추방됩니다. 그리고 잊혀지는 것입니다. 대중은 쉽게 열광하지만 또한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 NBA에 이 속설이 통하지 않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페니, 앤퍼니 하더웨이'입니다. 그는 "제 2의 마이클 조던" 명단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활약상을 유지하진 못했습니다. 올랜도 매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는 피닉스 선즈와 뉴욕 닉스에서 스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습니다. 부상에 시름했고, 젊은 선수들에게 주전자리를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수 많은 팬들이 기대하던 그의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연속적이지도 그들의 이상향에도 도달하지 못한 페니 하더웨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 대한 칭찬과 한 편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이 속설을 깨버리는 페니 하더웨이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그리움. 오늘 그의 농구 인생에서 그것을 찾으려 합니다.
Anfernee Hardaway
Position : G - F
Born : 07/18/71
Height : 6-7 / 201cm
Weight : 215 lbs / 97.5kg
College : Memphis '93
1993-94 NBA All-Rookie First Team
1996 Summer Olympics in Atlanta (Gold Medal)
Made four straight All-star appearances (1995 - 98)
Named NBA Player of the Month for November, 1995
All-NBA First Team(1994-95, 1995-96) Third Team(1996-97)
페니의 어릴적 친구는 그의 할머니였다. 그의 할머니는 항상 페니를 총명한 아이라고 말했으며, 그에게 귀엽다는 의미에서 "페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따. 페니 또한 할머니를 자신의 부모님과 같이 생각했으며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학교에서 다녀온 페니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를 본 그의 할머니가 말했다. "페니, 무슨 일 있었니?" 곧바로 페니가 답했다. "오늘 학교에서 1:1농구시합을 했는데 제가 졌어요. 일주일전만 해도 제가 이겼는데 말이에요. 어떻게 된거죠?" 그의 질문에 할머니는 말했다. "페니, 니가 일주일전에 아니 어제 이겼다고 하더라도 오늘 또 승리하라는 법은 없단다. 아마 우리 페니가 일주일동안 놀이터에서 놀고 TV시청을 했던 동안 어의 친구는 농구 연습을 했을거라 생각되는 구나. 페니가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했을 거야. 하지만 페니. 더 이상 낙담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니가 왜 패배했는지 니가 패배하기 직전 일주일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려무나." 그 후 페니는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농구연습을 했던 시간이 많았다고 그가 기억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을때 그는 전미 고교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멤피스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멤피스 대학은 그리 유명한 대학 농구팀이 아니였지만 페니는 할머니와 함께 하고 싶어 멤피스를 택했고 후에 멤피스의 아들이라 불렸다. 결국 페니는 대학교 2학년을 마쳤을 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라고 말했고 NBA진출을 선언했다. 그 당시의 드래프트에는 미시간 대학 FAB FIVE의 일원이었던 2학년생 파워포워드 크리스 웨버와 7피트 6인치의 장신센터 숀 브래들리가 1순위로 예상되었으며, 그보다 한단계 낮은 레벨로 페니가 꼽혔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그 전 시즌 플레이 오프 탈락팀 중 가장 승률이 높았던 올랜도 매직은 가장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드래프트 추첨에서 1 순위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었고, 크리스 웨버를 잡게 된다. 하지만 재정상의 이유와 오닐이라는 존재 때문에 드래프트 당일 웨버는 페니와 트레이드 된다. "페니" 앤퍼니 하더웨이의 NBA 입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Orlando Magic (1993-99): 마이클 조던, 그를 뛰어넘고 싶다.
페니가 올랜도에 합류했을때 사람들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샤킬 오닐과 함께 매직 존슨 - 압둘자바에 버금가는 최강의 C-PG 콤비를 이룰 것이라는 평가. 또 다른 하나는 크리스 웨버를 트레이드 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할 것이라는 평가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두 번째 의견. 그러니깐 페니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를 지배적으로 제시했는데 그 이유가 페니가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장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걸림돌. 당시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스캇 스카일스라는 존재를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스카일스는 게리 페이튼이나 케빈 존슨과 같은 스타카드는 아니였지만 팀을 리드하는데 있어서 줄곧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고, 당시 신인으로서 페니가 그를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경쟁 상대" 스캇 스카일스는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 문제로 부인과 다툼을 벌여야 했고, 당시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열망에 빠져 사생활에 집중하다 경기력이 떨어져 버렸다. 덕분에 신인이었던 페니 하더웨이는 주전 가드로 출장할 수 있었고, 그의 뛰어난 실력을 모두에게 펼쳐보였다. 특히 그가 주목받았던 점은 201cm의 신장을 가진 포인트 가드라는 점이였는데 천재적인 패싱능력에 돌파력까지 겸비한 페니는 NBA경력 5년이 넘는 가드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리고 루키 시즌이 긑났을 때 페니는 평균 출장 36.8분,
16ppg, 5.4rpg, 6.6apg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루키 퍼스트팀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 페니는 2년차 징크스를 무색하게 할 만큼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샤킬 오닐과 함께 올랜도 매직을 NBA파이널로 이끌었고 파이널로 오르는 과정에서 당시 컴백을 감행하였던 조던을 꺽어버렸다. 비록 휴스턴에서 0-4로 넉다운 되긴했지만 그가 젊은 팀 올랜도를 파이널로 진출시켰다는 것에 대해 모든 전문가들은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그에게 2년차로서 NBA First Team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다음해에도 20점 4리바운드 7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였으며 2년 연속 NBA First Team에 선출되었다.
" 제가 2m의 장신 가드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큰 키로 미스매치를 이용하지만 저는 빠르고 작은 가드들을 상대하기 위해 항상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당신들의 저에 대한 칭찬은 과찬입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이루어야할 것들은 그 누구보다 높고 많기 때문입니다."
- 페니 하더웨이
또한 그 당시 또 하나의 이슈는 "Post Jordan"으로서의 페니의 가치였다. 페니는 95-96 시즌 초반 샤크가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을 때 올랜도를 홀로 이끌어야만 했다. 또한 이 시기는 컴백한 조던이 다시 영광을 재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또 한번의 "조던-불스 제 2의 황금기"가 시작되고 있던 때였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점은 페니와 조던과의 매치업. 페니는 조던과의 경기에서 위축되지 않았고, 조던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며 경기가 끝났을 때 모두가 그를 "Post Jordan"의 첫번째 후보로 선정하는데 있어서 망설임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95-96 (4게임)
조던 하더웨이
득점 27.0 27.5
"그와 동등했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 조던
어시스트 4.0 3.5
"하더웨이는 제 2의 조던이며 전문적이고 완벽합니다."- 피펜
리바운드 5.3 3.25
"그만큼 내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조던
스틸 2.0 3.0
"제2의 조던이란 말은 불 필요하지만 그를 뛰어넘고 싶다."- 페니
그런데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페니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는 사건이 생겻다. 그와 콤비를 이루었던 샤킬 오닐이 헐리웃에서의 연예활동을 위해 LA레이커스로 떠난 것이다. 또한 페니는 팀의 리더라는 문제로 팀원들과 다툼을 벌여야 했고, 팀내 주전 스몰 포워드였던 데니스 스캇과 공개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올랜도는 이전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페니는 혼자 팀을 이글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리했고,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디비전 1위로 팀을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고 3게임 연속 40득점한 것도 사실이였지만 그는 너무 많은 게임에 불참해야 했고, SG와 PG 사이에서 혼돈해야만 했다. 데럴 암스트롱이 그런대로 팀의 포인트가드로서 페니를 보좌했지만 팀의 득점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페니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였다. 결국 그는 올랜도 매직과 결별하였고, 1998-99시즌 을 마지막으로 올랜도 매직을 떠나 제이슨 키드가 있는 피닉스 선즈에 몸담게 된다.
Phoenix Suns(1999-2003) : 떠오르지 못하는 선즈의 태양.
페니가 피닉스 선즈로 팀을 옮겼을 때 언론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그는 "Captain" 제이슨 키드와 "백코트 2000"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이슨 키드는 물이 오를대로 오른 포인트 가드중 한명이였고, 페니 또한 "포스트 조던"의 선두 주자로서 제이슨 키드라는 천재 가드의 도움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와 "완벽한 슈팅 가드"로의 전향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페니는 돌아온 시즌에 그의 약해진 몸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의 무릎은 항상 좋지 못했고, 점프도 워활하게 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리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그가 시도하는 무리한 페네트레이션은 그의 몸을 더욱 망가뜨렸고, 약해진 다리는 수비시에도 발빠른 가드들을 따라잡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피닉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센터부재"도 문제긴 무제였지만 그보다 페니의 비정상적인 몸이 피닉스가 강팀의 대열로 오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피닉스에서 첫 해 17점 5.8리바운드 5.3 어시스트의 수준급 성적을 보여주었던 페니는 자신의 고질적인 부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1999-2000시즌에 60게임, 2000-2001시즌에 4게임, 2001-2002시즌에 55게임, 2002-2003시즌에 58게임, 2003-2004시즌에 34경기만을 뛰며 총 5시즌동안 236경기만을 소화했다. 분명 팀의 리더중 한명이였지만 수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이 기대했던 페니의 모습은 아니였다. 결국 그는 많은 연봉에도 제 값을 하지 못하는 "먹튀"라는 별명을 얻으며, 피닉스에서의 5시즌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또 다시 트레이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 단지 일정하게 연습장에 나오고, 풀 타임으로 코트위에서 플레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 페니 하더웨이
" 부상 때문에 경기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 보다 누군가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는 이기심이 저를 더 힘들게 합니다. "
- 페니 하더웨이
New York Knicks(2003~ ) : 여기선 아직도 페니가 인기인거죠?
페니가 뉴욕닉스 코트에 첫 발을 내딛었을때부터 닉스의 팬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피닉스에서의 불안한 경기력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그의 고약 연봉은 닉스의 짐이 될거라고 말했다. 이제 "먹튀"가 되어버린 그에 대한 기대는 그만 접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였다. 또한 페니는 그의 올드팬들만이 반긴채 시작된 이번시즌에서도 평균 23분을 출장해 7.1ppg 2.8rpg 2.4apg라는 그저 그런 성적을 내고 있다. 최고를 꿈꾸기에 마이클 조던앞에서도 자신감을 넘쳤던 페니 하더웨이의 농구 말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마치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간 물고기가 다시 그 강물을 거슬로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페니는 너무도 많은 세월을 그냥 그렇게 걸어내려왔다. 새로운 리더 스테판 마버리의 옆 자리에 희미하게 서있는 페니 하더웨이의 모습처럼 제 2의 조던을 꿈꾸던 한 사나이의 꿈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 농구를 포기하거나 은퇴를 선언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팀의 승리를 위해 동료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며 왜 20점 이상씩을 넣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경기에 내보내져야만 합니다. 농구 선수를 벤치에만 있을때 그에게 지불하는 대가의 값어치를 할 수 없습니다."
- 페니 하더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