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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우리네 인생을 닮은 산

고승희 |2006.08.25 20:39
조회 120 |추천 0

2005년 4월 27일 여행 14일째~!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주인공

-태산에 다녀온 이야기 입니다.

 

태산에 오르는 대표적인 방법은 두 가지이다. 칠천 개가 넘는 계단이 시작되는 홍문에서부터 오르는 정석코스와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중턱까지 오른 다음, 중천문에서부터 등반을 시작하는 속성코스가 있다.

 


 

나는 3년 전 어학연수 중에 사귄 3명의 친구들과 함께 타산을 심야에 등반했다. 정상에서 일출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젊음의 패기로 기세 등등하게 시작했다. 해발 1,545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 그것도 중턱부터 오르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며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 기세 등등함도 잠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야밤에, 경사 60도에 달하는 가파른 산길에,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든 폭 좁은 계단을 오른다는 건 공포였다. 오르는 중간에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올라야 할 길보다 내려갈 길이 배는 더 멀어 포기하고픈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날, 구름에 가려 일출을 못 봤지만, ‘태산이 높다하되’의 그 태산을 올랐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날이 밝고 정상에서 내려다 본 끝도 없는 계단 아래 또 계단들. 그 계단을 떼를 지어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경악케 했다. 실수로 한 명이라도 넘어진다면 등반 중인 모든 사람들이 도미노가 되어 쓰러질 판이다. 혹시 내 잘못으로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한 손으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난간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한 계단씩 한 계단씩 내려왔다.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보다 무사히 산에서 내려왔다는 기쁨이 배로 컸던 특별한 산행이었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공포의 계단들.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다. 우리는 중턱에서 시작하는 속성코스 대신, 홍문에서 시작하는 정석코스를 택했다. 의욕이 넘쳐흐르는 남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산을 오르기 전인데 나는 걱정이 밀려온다. 공연히 풀리지도 않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마음을 다잡았다.

 

‘혼자도 아니고 평생 짝꿍인 남편과 오르겠다, 어제 한국 음식으로 몸 보신까지 확실히 했겠다, 운 좋게 가이드 자격증으로 할인도 받았겠다. 이렇게 시작이 좋은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야. 그냥 한 발 한 발 천천히, 각자의 페이스만 유지하면 못 오를 이유는 없어. 미리부터 겁 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다.’

 

 

태산의 정기를 받으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 등반객이 유난히 눈에 띈다. 검소한 인민복 차림에 바닥 얇은 실내화를 신고도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과시하신다.

 


 

태산은 도교의 성지이다. 유교의 발원지인 중국, 유교의 고향이라는 산동에서 이제는 유교는 흔적조차 희미하다. 태산 산기슭에 자리한 수 십 개의 사찰도 모두 도교의 사찰뿐. 계단을 오르는 등반 여정이 지루해 질 때쯤 하나 둘 나타나는 사찰 안 풍경이 흥미진진했다.

 

사찰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북적이는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일곱 살 꼬마만한 크기의 향을 피우는 할머니가 보인다. 돈을 상징하는 노란색 종이다발을 불에 태우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또 어떤 할아버지는 볏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을 불구덩이에 던지시고는 정성스레 합장을 하신다. 다양한 형태의 기도 방식이지만 그 염원을 똑같을 것이다.

 

‘우리 아들과 딸들,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 건강하고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하고.

 



태산의 봄 풍경은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 푸른빛이 온 산에 감돌고, 눈부신 햇살을 받아 나무마다 생기가 있다. 자연이 보여주는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 정기를 빨아들이기 위해서 머리를 하늘로 젖히고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깊이 들여 마셨다. 몸에도, 마음에도 봄이 왔다.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 상쾌했다.

 

불타는 우리의 산행의지는 중천문에서 딱 꺾였다. 이게 모두 남편의 엄청난 흡연량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수영선수를 했을 만큼 엄청난 폐활량을 늘 자랑하던 남편. 꼭 정상까지 걸어서 오르겠다는 호기를 부리더니만 간신히 중천문에 올라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헉헉 대면서. 그래도 자존심 때문에 날이 더워서라는 핑계를 댄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담배 앞에 성할 폐 없다는 걸 모르나.

 

사실은 나도 내심 남편이 먼저 반기를 들어주길 바랬다. 이까짓 등산이 뭐가 힘드냐며 남편에게 호기를 부렸지만, 케이블카를 타러 가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케이블카를 타니 그 험난한 여정도 초고속이다.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 허무했다. 비지땀을 쏟아가며 올랐던 길인데 돈으로 육신의 고통도 줄 일 수 있고, 덤으로 시간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슬했다.

 

혹자는 태산이 유명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우 해발 1,545미터에 불과한 태산 이름 앞에 ‘오악(五岳)’이라는 명성이 걸 붙는 이유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힘들게 태산에 오르고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님을. 만만하기는커녕 같은 높이의 보통 산에 오르는 것보다 몇 곱절의 힘이 든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여정이 태산을 닮았다. 태산의 한 계단과 우리 인생의 한 계단. 열심히 올라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지쳐서 주저앉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고 올라야 한다. 어느새 우리는 정상에 서있을 테니까.

 

“여보, 정상에 오르니까 기분이 어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데.”

“남편이랑 와서 그런가. 나도 야간 등정했을 때보다 훨씬 좋다. 여보 올라오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했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응, 산에 오를 때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데. 왜냐면 내려갈 때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겠지.”

 

태산은 내 짧은 인생을 돌아보게 했던 산이다. 언제쯤 내가 바라는 정상에 서게 될지, 그 산이 얼마나 높은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느리지만 내 걸음으로 끝까지 가리라는 의지가 있다. 내 짧은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히 인사해야겠다.

 

“힘 내세요.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거든요.”하고.

 


 


 


 


 

 

 뚱딴지 부부, 태산에서의 추억

 

"이얼싼 치에즈' 중국인이 사진찍어달라는 부탁에 찰칵!

 

우리의 점심식사. 여행은 종종 전투가 되어버리 곤 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라면을, 물만 부으면 그만이라는 이유로 중국여행 내내 친구로 삼아야 했다. ㅜㅜ  

문명의 이기속에 태어난 딴지여사.

오늘도 편리한 문명의 힘으로 4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를

단 5분만에 주파. 신났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어도

폼만큼은 '종주등반'이다.

 

 

 

 

                                         글: 딴지여사 고승희

                                  사진: MR. 뚱

그동안 제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짧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짧게~!!

 

열심히 읽어주는 주형오빠.

미국에 인공위성 쏘아올리러 가서도 내 글 읽어준 우리 오빠.

안 읽는 척해도 내 글 열심히 읽어주는 우리 남편.

페이퍼 구독 신청은 안 했어도 중국에서 꼼꼼히 읽어주는 인식이.

 

그 외에 제가 모르는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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