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중국에 적응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잊을 만하면 가끔씩 소동이 벌어져 나를 놀라게 한다.
이번에는 ‘물 소동’이었다.
밤 9시가 되어갈 무렵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에 당장 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가끔 예고 없이 물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내일이면 나오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혹시나 하고 물을 틀어보니 나오지 않았다. 당장 세면이나 밥을 하기가 곤란해졌다.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이미 우리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이유를 물으니 돈을 내지 않아서 그러니 아침 8시 반 이후에 돈을 빨리 가져오란다. 그래서 사전에 통지를 했냐고 물으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통지를 받은 사실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 통지했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을 사전 예고도 한마디 없이 끊어버리다니! 국내에 있으면서 좀처럼 누구와 싸우거나 다투지 않는 내 성격인데 이곳에 와서는 더 쉽게 화를 내고 말다툼도 하게 된다.
등교시간(중국의 등교시간은 8시까지임)을 늦추고 관리사무소에 돈을 가지고 갔다. 화를 누그러뜨리고 차분히 말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우선 돈부터 내고 물이 언제쯤 나올 것인지 확인했다. 퉁명스럽게 아파트 동이며 호수를 묻는 직원을 보고 있자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이 끊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삿대질이라도 하며 달려들고 싶었지만 참고 설명을 기다렸다.
그 사람들이 설명해주는 이유인즉슨 이러했다.
이곳에서는 물을 미리 사서 써야 한단다. 그래서 돈이 지불된 만큼 물을 다 사용하게 되면 1차 경고로 자동적으로 물이 끊어지는데 이때 수도계량기의 버튼을 하나 누르면 다시 물이 3톤 정도 나온다고 한다. 이때에 물 값을 다시 지불하면 아무 문제가 없고 그 기간 동안에도 돈을 내지 않으면 물이 정말로 끊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나 절차가 있었다. 겸연쩍은 생각에 화를 참고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이 한국적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매우 화가 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어 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하다 보니 그런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적응성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아직은 없어질 때가 아닌가보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공공요금납부 체계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아보았다.
아파트 관리비는 미리 선납하는데 출입구에 붙여 공고하든지 직접 받으러 온다. 우리 집에는 저녁에 갑자기 몇 사람이 와 3개월 치 관리비를 달라고 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도시가스는 미리 선납하는데 계량기를 보며 확인하고 다 쓰기 전에 다시 돈을 내야 끊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주인에게 계산했기 때문에 어디에 납부해야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전화연락을 해서 납부처를 확인하고 납부해야 한다.
전화비용은 집전화와 휴대전화가 다르다.
집전화는 2개월을 사용하고 나서 한꺼번에 납부하는 후불제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 아직 납부해보질 않아 정확히 어디에 내야하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알아보니 근처 옆 동의 지하 주차장에 사무실이 있는데 토요일 오전에 사람이 받으러 오니 그 사람과 약속을 하고 내라고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아니고 전화회사도 아니며 특별히 우리처럼 고지서를 보내주지도 않는다.
휴대전화는 전화회사 사무실에 가서 비용을 선납하고 그 돈을 다 쓰고 일정액이 남게 되면 메시지로 통보가 되니 그때 충전을 다시 하는 방식이다. 수도세는 관리사무소에서 받는데 이미 말했듯이 선납이고 다 쓰게 되면 경고성으로 1차 단수가 되고 계량기 버튼을 눌러 물을 3톤까지 쓸 수 있는데 다 쓰기 전에 반드시 물 값을 선납해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전기세는 관리사무소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고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다. 아직 납부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전화세와 같이 주차장에 있는 사무실에 가야 한단다. 2개월 치를 후불제로 납부한다. 사실 전기세는 한국 못지않게 비싸다. 초봄에 추워 난방에어컨을 틀고 생활한 인근 한국사람 말로는 10-15만원 정도를 냈다고 하니 적지 않은 돈이다.
텔레비전 수신료는 1년 치를 한꺼번에 선납한다. 고지서는 없고 은행에 가서 주소를 대면 얼마인지 알려준다.
모두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청도 시내에서도 각 구마다 납부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선생님에게 물이 끊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그 분이 하는 말을 듣고 알게 된 사실이다.
공공요금납부가 우리처럼 고지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얼마가 나왔는지 먼저 전화로 확인해보고 일일이 납부 장소를 물어서 납부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이런 복잡 난해한 공공요금 납부를 위해서 어떤 때는 등교시간을 늦추고, 어떤 때는 아침밥을 못 먹고 세면을 못하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너그러이 이해가 되겠는가?
우리처럼 먼저 국가나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나중에 정식 고지서를 통해 돈을 납부하도록 하고 또 비용납부가 되지 않더라도 몇 개월까지는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공공서비스 아닐까?
- 끝 -
"중국에서 살아남기" 한꺼번에 보기
http://paper.cyworld.nate.com/1000279843
이기수의 싸이월드 홈피 (http://www.cyworld.com/rak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