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찻집 안 테이블에 한잔의 감잎차가 올려져 있다. 차를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중 한명은 맛을 음미할 수 있지만 다른 한명은 혀끝의 쓴맛이 기억날 수도 있다. 김이 피어오르는 차는 한명에겐 아직 뜨겁지만 맞은 이의 취향엔 이미 식어버린 차 일수도 있다. 또한 찻집의 계산대의 주인에게는 찻잔은 작은 공처럼 보이며 마주앉은 두 사람의 앉은 키 차이 때문에 찻잔은 역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동일한 장소의 동일한 차에 대한 이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은 각자만의 서로 다른 세상을 머릿속에서 창조하고 세상을 인식한다. 이렇게 창조된 세상을 관념(생각)이라고 하며 이런 창조의 과정은 전적으로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즉 우리의 관념은 오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내가 눈앞에 있는 책상과 모니터 키보드 역시 단순히 내 머릿속에서 감각을 통해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하단 점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손으로 만져지는 이것이 어떻게 관념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 그럼 이제부터 감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관념이 얼마나 허구적인 존재인지 살펴보자.
앞서 언급되었듯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그 사물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기관에 맞게 편하게 변형된 생각인 관념에 불과하다. 실제로 시각의 경우 붉은 색연필은 적색으로 보이지만 실제 적색이 아니라 적색을 반사하고 그 이외의 색은 흡수하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붉은 색연필은 그 색연필 본질이 아니라 단순히 상상속의 관념에 불과하다.
이런 감각의 불완전성은 의식하지 않으면 넘어가기 쉽지만 의식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전자렌지나 썬텐 기계 역시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외선 적외선을 보지 못하는 눈을 지니고 있는데 적외선과 자외선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납으로 된 벽이 당연한 세상이나 적당한 조도를 위해 벽돌 유리창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은 청각, 후각, 미각의 면에서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공중파 전파의 소리라든지 이런 감각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며 인간에게 적합한 형태로 외곡 되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지만 유달리 촉각은 포기하기 힘들다. 손으로 만져지는 이 키보드를 어떻게 생각에 불과한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볼 것인가. 여기에선 꿈에 대한 비유로 설명을 하는데 우리가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줍고 만지면서 그것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생각에 불과하단 생각을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점을 통해 촉각의 허구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한 것이 바로 영화 메트릭스라고 볼 수 있다. 메트릭스 세상에 살고 있는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은 실제론 실험관안에 머릿속에 케이블인 연결된 체로 컴퓨터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실제로 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메트릭스 세상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메트릭스 세상이 바로 관념인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슈퍼컴퓨터가 제공하는 0101011 같은 이진 데이터인지 실제 본질인 사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육체마저 관념이라는 것을 알 게 된다. 나 자신의 육체마저 확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16세기에 데카르트는 부정 할 수 없는 최초의 진리인 명제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각과 자신의 육체에 대한 부정이후에 그는 수학적 지식 역시 부정하게 된다. 즉 1 +1 = 2 는 모두가 진리로 인식하고 있지만 악마가 존재해서 원래 세상은 1 +1을 하면 3이 되지만 악마가 모두를 속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부정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코기토 명제인 지금 의심하고 있는 나라는 의식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여기에서도 악마가 속임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악마의 속임수가 있다고 하여도 악마가 속이는 대상이 필요하므로 역설적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다른 전제조건 없이 진리인 최초의 확실한 인식인 최초명제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가 탄생하게 된다.
물론 생각하는 순간만 존재가 확실시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500년전에 철학의 주제를 신에게서 인간인 나의 의식으로 옮겨온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