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털 뽑는 것이 에티켓? / 고은광순(우먼타임즈 기고문)
나는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빚었다는 창조설을 믿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영어성경을 빌어 엄격히 말하자면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땅 위의 티끌’-dust of the soil-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의학을 전공하면서 인체의 생리와 병리를 요모조모로 관찰하면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우주가 엄청나게 공을 들인 기획 끝에 만들어낸 생산물‘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인체에서 우주의 기획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의 하나가 털이다. 가장 중요한 머리를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풍부한 머리카락. 눈 위에 둑을 쌓아 빗물과 이마의 땀을 막아내는 눈썹. 먼지가 안구에 닿는 것을 차단하는 속눈썹. 공기의 먼지를 걸러내는 귀와 코 속의 털. 외관으로 수컷임을 드러내어주는 남성들의 턱수염.(외모로 성별을 알아내기 힘들었던 원시시대에는 유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통기를 위해 최고의 역할을 하는 남녀 성기 주변의 털과 겨드랑이의 털이 바로 그것이다.
성기와 겨드랑이는 그 위치도 그렇거니와 살갗이 연하여 습해지면 짓무르기 쉬운 곳이다. 특히 한의학적으로 보면 겨드랑이는 수소음 심경과 족소양 담경이 지나가는 곳으로 내장의 열기가 밖으로 분출되는 연통과 같은 구실을 한다. 이렇게 땀이 많거나 습하여 피부의 건강을 위해 통기가 필요한 곳, 그곳에 우주는 여지없이 털을 심어 놓았다. 그곳에 직모가 아니라 꼬불꼬불한 곡모가 나도록 한 것은 곡모가 통풍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섬세한 우주의 기획력을 미쳐 못 알아채고 공들여 심어놓은 털을 무자비하게 뽑아내는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 제모용 면도기, 왁스, 젤, 패드 등으로 털을 녹여내고, 털뿐 아니라 뿌리까지 제거해준다고 요란을 떤다. 겨드랑이의 털이 부끄럽다거나, 미용상 보기 싫다거나, 심지어는 에티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여성이 민소매 옷을 마음 놓고 입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이 어깨를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인권이 신장됨과 더불어 여성의 몸에 대한 노출이 보다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것이 있다. 혹 그것이 남성 등 타자의 필요와 시선에 길들여진,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노출이 당당함, 자연스러움, 해방감을 의미하는 진짜 아름다운 것이 되려면 길들여진 시선에서도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겨드랑이 털? 이것을 추하게 보는 것은 편견이다. 여성의 드러난 어깨를 천박하게 여기던 시선이 차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뀌듯이 여성의 드러난 겨드랑이 털도 차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성들이 많아진다면 말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인체에서 불필요한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겨드랑이 털도 아름답다고 편견 없이 보아주는 것, 그것이 우주와 자연에 대한 에티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