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왜 삼국지를 말하는가?

박종민 |2006.08.27 21:10
조회 62 |추천 0

왜 삼국지를 말하는가?


 사실 글을 한번 써보려고 ‘왜 삼국지를 말하는가?’ 라고 제목을 써놓고서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 그래서 유명하다는 삼국지 칼럼니스트들의 사이트에 들어가 그들은 어떻게 썰을 풀어나갔나 참고를 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런 글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 가끔 나오는 글들이라고 해봤자 “삼국지 왜 읽냐? 우리 역사도 모르는 것들이.”라는 내용이다. 난 중학생 때부터 삼국지와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왜 삼국지냐?’ 라는 글은 나 역시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항상 지금처럼 제목만 써놓고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글을 쉽게 쓰기위해 ‘나’부터 시작해 보겠다. 나는 왜, 어떻게 삼국지를 처음 접했는가. 내가 삼국지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친척형 집에 갔었는데 형이 갑자기 물었다. “제갈량이 위나라로 쳐들어가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수명을 연장하려고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데 그 불을 꺼뜨린 사람이 누군지 아니?” 난 대답을 못했다. 생각해보면 친척 형은 그때 요코야마 미스테루의 ‘만화 전략 삼국지 60권’을 읽었던 것 같다. 어쨌건 나는 그때 기분이 좀 상했나보다.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고, 상중하로 된 삼국지를 그때 처음으로 접했다. 난 그렇게 처음 삼국지를 접했고 또 읽으면서 많은 재미를 느꼈다.


 여기서 의문. 당시의 난(혹은 형은) 우리나라 역사라곤 하느님아들이랑 인간된 곰이랑 결혼해서 단군할아버지가 태어났다는 것밖에 모르는 나이었는데, 우리나라 역사보다 중국의 역사를 보고 있었나. 앞에서 말한 바대로 삼국지 회의론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린 애들부터 이렇게 우리역사보다 중국역사소설(그것도 1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담고 있는)이나 처보고 앉아있으니깐 나라가 이 모양이지. 그딴 중화사상만 가득담긴 책. X까. 그럴 시간에 우리나라 역사나 공부해.”


 사실 난 이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이사람들이 무식해서? 아니다. 이 말에 대해서 “아니야. 삼국지는 동양인들의 사상이 담겨지고, 우리의 인생사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영원한 고전이자 베스트셀러라고. 그래서 꼭 삼국지를 읽어야해” 라고 말하는 건 너무 식상하고 별로 공감도 안 되니까. 또 요즘 들어 특히 느끼는 것이지만, 삼국지 속에는 너무도 많은 중화중심주가 반영되어 해가 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역사책으로서 삼국지연의의 가치는 0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에 흥미는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나 위에서 말한 바대로 채 100년도 안 되는 중국사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질 것이며, 더욱이 삼국지연의는 소설책이지 역사책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은 30% 정도에 불가하니깐 말이다.


 따라서 그보다는 먼저 삼국지를 좀 더 재미의 측면에서 봐야한다. 내가 그 어린 나이에 인생사에 대한 교훈 때문에 삼국지를 읽은 건 아니지 않은가. 무언의 사회적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친척형의 사례와 같이, 남들은 대입 등에 의한 압박이나 부모님의 강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가 없었다면 그냥 책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인기를 가질 수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무엇이 삼국지를 재미있게 하는가. 오히려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것이 “왜 삼국지인가”(우리나라 역사나 서양사가 아닌)를 말하는데 가장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삼국지는 재미있는가.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들은 왜 삼국지와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가.


 첫째, 오랜 시간동안 다듬어진 이야기와 방대한 사료들, 이야기꾼들과 작가의 뛰어난 소설가적 능력을 삼국지의 매력으로 들 수 있다. 잠시 우리가 보는 삼국지연의의 역사를 살펴보자. 삼국을 통일한 진의 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썼다. 이때의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소설이 아닌 역사책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위의 임금에게만 황제라는 칭호를 붙였다는 것이다. 이는 위나라에게 정통성을 부여한 것으로 지금 우리들이 주로 읽고 있는 촉한 정통의 삼국지와는 매우 다르다. 또한 형식 역시 기전체로 이루어져있다. 그 후 송나라의 배송지가 각종 고사자료들을 붙여 삼국지에 주를 달았다. 나관중이 삼국지를 쓸 때 주로 참고한 것은 진수의 자료보다 ‘배송지의 주’에 인용한 자료들이 오히려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의 주석들 역시 역사책에 달려있는 참고자료일 뿐, 소설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 후 900년의 세월동안 민중의 상상력과 민간전설들이 더해져 1320년경에는 ‘전상평화삼국지’가 등장했다. 이는 지금 삼국지의 분량에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중요한 줄거리들이 포함되고 기전체 방식을 벗어났다. 또한 유비를 선으로 조조를 악으로 묘사하는 촉한정통설에 입각한 스토리가 나오게 되었다. 즉 이때부터 역사적 사실을 지나 소설이 구성요소들을 지니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나관중에 이르러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삼국지의 원형이 완성된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풍부한 살을 붙이고 주제의식을 담게 되어 드디어 소설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게 된 것이다. 이후 강희 연간(1662∼1722)에 모윤, 모종강 부자에게 의해 수정되어 모본이 나온 것이 최후의 완성본으로 오늘날의 정본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삼국지는 천 백년간의 세월동안 완성된 작품으로, 역사의 기록은 물론 민중들의 전설과 민간 이야기꾼의 노력, 문인들의 재창작으로 인한 대작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처럼 역사에 의한 뼈대가 만들어지고 민간인과 소설가들의 뛰어난 민담과 재담들이 살을 붙여가며 천오백여년의 세월동안 다듬어진 이 이야기가 어찌 사랑받지 못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잠시 우리나라는 왜 중국에 뒤지지 않는 삼국시대와 뛰어난 역사를 가짐에도 삼국지와 같은 이야기를 가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사정을 한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시대 ‘묘청의 난’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묘청이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한 후, 금나라를 정벌하여 황제를 칭하자는 ‘칭제북벌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파에 의하여 실패하고 묘청은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반란하게 된다. 이때 반란군의 토벌대장이 ‘삼국사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반란군을 제압함은 물론 많은 북벌론자를 제거한다. 독립투사로 이름 높은 단재 신채호선생은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1대 사건’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묘청의 난에서 김부식이 승리한 것이 우리민족을 남의 일본의 노예로 전락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까지 말했다. 이로 인하여 고려의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죽게 되고 김부식 등 유교학자들이 조선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특히나 훗날 김부식이 역사편찬자의 임무까지 맡게 되었다. 김부식은 유교학자로서 지독한 사대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사기’에서 그는 고구려의 영토를 반 넘게 한강 이남으로 옮겼으며, 발해사는 아예 무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김부식의 무지가 아닌 고의였다. 이처럼 자신의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지 못한 사대주의의 빠진 위정자들의 아래에서 우리민족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또 이로 하여금 삼국지연의와 같은 좋은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역사들을 잃게 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이야기꾼과 재담가, 소설가가 있다고 한들 어찌하겠는가.

 

 둘째, 수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가하고 어떤 책보다 몰입성이 뛰어나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 ‘삼국지’를 먼저 접하고 그것을 즐긴 후, 더 큰 재미를 얻기 위해 책으로 된 삼국지를 읽었다고 한다. 책이라는 아날로그자료가 게임이라는 디지털자료에 후속하여 재미를 준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이는 삼국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라고 보인다. 게임 속에서 내가 인의의 화신 유비가 되기도 하고, 난세의 간웅 조조가 되기도 하며, 무적의 여포가 될 수 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삼국지연의 속에서도 유비가 되고 조조가 되며 여포가 되어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치고 몰입성이 뛰어나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삼국지처럼 내가 ‘다양하게’ ‘누군가’가 되어보는 만드는 작품은 많지 않다.


 셋째, 나이와 시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누가 뭐래도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좌원에서 한나라의 대군을 박살내버린 명림답부, 살수에서 당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당 태종의 침입을 막고 오히려 공격한 연개소문, 말로 거란을 물리친 서희, 임진왜란의 이순신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말이지 당대의 영웅들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 유비, 제갈량, 관우 등보다 뛰어나면 뛰어난 인물이지 떨어지는 인물들은 아니다. 허나 우리는 왜 이들을 역사가 아닌 새로운 소설과 이야기로 재탄생시키지 못했는가? 잠시 그들이 싸워온 상대방을 살펴보자. 한나라의 군대, 당의 대군, 거란족, 왜구. 그렇다. 이들은 한국인인 우리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다른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설가가 원균은 변호해 줄 수 있지만 왜구까지 변호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에 비하여 삼국지는 아와 적의 구별이 필요 없다. 적벽의 조조를 변호해 줄 수도 있으며, 이릉의 오나라 편에 설수도 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양심적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절대선과 절대악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바라보며 또 평가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흥미롭다. 혹시나 아직까지 촉만을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보고 있다면 편협한 시각을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삼국지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말하겠다. 삼국지는 어디까지나 ‘그네들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에 맞게 다시금 조조의 복원, 오나라의 회복이 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재미있게 읽고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상에서 왜 우리는 삼국지를 말하고 있으며, 그 흥미의 요소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이야기들 보다 사랑받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그렇다면 이러한 삼국지를 어떻게 보아야 바르게 보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참고자료

 

여러 인터넷자료들.

유시민-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