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 Piazzolla - Libertango Yo-Yo Ma
내가 너무좋아하는 Libertango
누에보 탱고(Nuevo Tango)
"내게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것이다" Astor Piazzolla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누에보 탱고의 기수
쿠바와 브라질 등 리듬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역시 탱고라는 리듬을 탄생시켰다. 4분의 2박자 리듬을 기본으로 싱코페이션이 붙고 리드미컬하게 연주되는 것이 특징인 탱고는 크게 보아 정열적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아르헨티나 탱고와 이것이 유럽으로 건너가 정착한 세련된 컨티넨탈 탱고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탱고는 군사 독재 정권이 위세를 떨치던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침묵의 시대'를 겪게 되는데 클럽 등에서는 연주가나 가수를 고용하기가 어려워졌고 경제적 이유에 따른 우수 오케스트라의 해산, 대중의 음악적 기호의 변화 등으로 많은 악단들이 해외로 떠나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탱고의 침체기를 극복하고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즉 새로운 탱고의 바람이 불게 된다. 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위대한 작곡가 겸 연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1921-1992)로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자기가 이끈 새로운 사조를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 이름붙였다. 탱고에 독창적인 화음 개념을 도입한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4계' 등의 걸작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차원을 탱고 음악을 제시했다.
십대 시절 우연히 만난 카를로스 가르델-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곡 'Por Una Cabeza'를 부른 주인공-은 피아졸라를 1935년 자신이 죽기 직전 만든 마지막 영화 [El dia que me quieras]에 출연시켰고, 피아졸라는 이 영화에서 연주도 맡게 된다. 그 뒤 피아졸라는 탱고 앙상블에 들어가 반도네온 솔로 주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 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기도 했다.
1955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밴드를 결성하고 작곡과 연주에 힘을 기울인 그는 전통 탱고에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가미해 젊은 층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전통 탱고 리듬을 포기했다는 이유 때문에 보수 세력으로부터는 비난을 받았고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그의 음악을 너무나 진보적이라며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간 피아졸라는 10여년간 유럽 각지에서 연주와 녹음 활동을 하다가 1985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1992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