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였습니다.
몹시던 춥던 겨울,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를 할머니 손에 맡긴
채 세상을 뜨셨습니다.
덩그러니 남은 우리 삼남매와 할머니는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
었습니다
"우아앙.엄마,엄마야.........;
"이 어린 것들을 데불고 우예 살라고.....;
엄마를 부르며 우는 우리를 보듬으시며 할머니도 눈물을 지으
셨습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우리 삼남매의 엄마고 하늘이며 울이고 담
이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철부지 손주들 먹이고,입히고 공부시키느랴 할머
니의 나날은 고단하기만 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그 굽은 허리로 빨래하고 밥짓
고, 동트면 어디론가 나가 땅거미가 진 뒤에야 돌아오시던 할
머니.그렇게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할머니는 부쩍 늙
으셨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소풍 갔다 오는 길에 읍내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멀리
서 할머니를 보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머리에 벽돌짐을 한아름 이고 3층이나
되는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하...할머니!""
순간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린 마음에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그날밤 나는 구들장이 무너져도 모를 만큼 곤히 주무시는 할
머니에게가만히 다가가 속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잠든 할머니를
가만 보니 정수리 부분이 벌겋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와 엉엉
울었습니다
할머니 머리위의 그무겁던 벽돌짐은 다름아닌 우리 삼남매였
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박은미씨 실화
박은미씨는 일본 쿄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이다.
저는 가난을 극복하지 않았어요.
가난을 인정하고 단지 남들보다 못입고
못먹고 못자는것 빼고는 별다른게 없었어요.
음악만 들으면 전 제게 필요한것들이 다생겼답니다.
가난은 욕심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마음속 산물입니다.
출전/월간
사진: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