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9일
태풍소식과 함께
대원이탈의 소식도 들었다.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려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 비참했던 것은
나는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두고서
나를 믿는 대원들을 이끌고 가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난 그 사명감으로
굶어도 배불렀고
잠을 못자도 졸립지 않았다.
나는 그 사명감을 감히 사랑이라 부르련다.
2006년 7월 10일
출발 전날.
마지막 최종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다들 의미심장한 표정.
그리고 기대반 두려움반의 모습들이었다.
학과장님에게도 인사드렸고
준비는 이제 끝난 것 같다.
2006년 7월 11일 맑다가 흐림
출발이다.
아침부터 난 당했다.
어이쿠. 광희와 대환이의 계략에 깜빡 속아 나를
잠시나라 놀래켰다.
“나 광희인데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 시간에 못간다”
컨디션까지 사들고 찾아왔건만
그들의 계략에 내가 빠져들줄이야
잠시나마 긴장감을 푸는 순간이었다.
짐을 운반하기 정신없었다.
사진도 찍고
아쉬움과 두려움을 간직한 체 우린 떠났다.
차 시간에 딱딱 맞추어
우리는 밝은 햇살을 가르며 달렸다.
예상치 못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첫 번째 숙영지 평해읍 도착.
예상치 못한 귀빈대접을 받았다.
첫날, 체육관의 하루를 보내며
촛불을 켰다.
모두들 신이 났다.
아직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장성진의 도착.
그는 우리들을 위해 단하루 일정에 참가하기로 했다
2006년 7월 12일 흐림과 소나기
구름이 많이 낀 하루.
날씨는 여전히 좋다.
월송정, 망양정터의 추억.
전 대원이 걸으며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느꼈을까?
우리가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것이었으며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의미를 무엇인가..
사진이 추가 될 때마다
우리의 추억도 하나 하나씩 기록되고
우리가 내딛는 걸음마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오늘 밤은 모기가 많았다.
전대원 잠을 못잤다.
간간히 저녁에 소나기.
그 때문에 빨랫감을 안에서 말려야 했고
열어둔 창문틈으로 모기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문자 한 통.
내겐 충격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게 짐이 되어 잠이 오지 않은 체
뜬 눈으로 보냈다.
각성이 덜 된 체로 담배를 입에 물다가 현철이가 일어났다.
현철이와 난 새벽바다를 거닐었다.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했다.
2006년 7월 13일 맑음과 소나기 그리고 비
햇살이 강렬하다.
우리들은 두 번째 날임에도 매우 지쳐가고 있었다.
다들 잠이 부족한 상태.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이 고운이의 어깨에 화상을 입혔다.
선택이의 발톱이 빠지려 한다.
신발에 문제가 있는 듯.
그 동안 단련을 하고 있었음에도
가장 중대한 내 실수를 내가 발견했다.
나도 미쳐 새신을 길들여 놓지 않은 상태에서
내 발은 곪아가고 있었다.
망양정의 추억.
성류굴의 추억.
이어지는 차량 접촉사고. 대환이의 냉철한 판단으로
잘 넘어갔지만 어제에 이어서 2번째 차량흠집이 생겼다.
서서히 지쳐갔던 우리들
어제의 흥분을 감추지 못해 난
걸음속도를 잘 유지할 수 없었다.
곪아가는 내 발에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체 그렇게 그렇게.
대원들을 챙겨야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생각만 하지말고
더 나쁜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길 한복한의 소 한 마리가 있다.
얼마나 엉뚱한가?
그 엉뚱함을 반영하듯 소나기가 내리고
그것은 비로 발전했다.
이 비는 우리가 훗날 당하는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울진 군수님의 방문.
그리고 우리는 회를 먹었다.
밤이 길다. 대원들이 모두 잠에 들었다.
밤중에도 간간히 내리는 소나기.
오늘 밤 대원들이 못한 빨래를 내손으로 쥐어 짜며..
늦은 밤 행여나 일이 생길 까봐 숙영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차에 난 흠집을 확인하고 쓰다듬으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개구리도 지쳐 소리가 그칠 즈음 난 잠을 청했다.
7월 14일 아침에 부슬비였다 조금 맑고 다시 소나기
간간히 내리던 부슬비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오전 길을 걸으며 겨우 멈추었다.
울진 원자력 발전소 홍보관 방문.
울진군의 경계를 넘어 강원도로 들어왔다.
우리들은 이내 서로들 너무 친해졌고
너무 익숙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다시 비가 한두방울 씩 떨어진다.
모두의 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호산초등학교에서 첫 야영.
떨어지는 비 때문에 주변 중학교와 교회 어린이집을 돌아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구령대에 걸터 텐트를 치고 잤으나 큰 피해는 없다.
다들 불침번이 처음일텐데.
첫 야영.
성질이 날카로워졌다.
웃고 떠드는 대원들 보기는 좋았지만
이내 난 소릴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기전 동네 청년들이
우리를 아냥 곳 않고 축구에 몰두한다.
나는 눈치를 살펴야 했다.
지난 3년전 지역 불량배가 차를 타고와 시비를 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운영진들이 한사코 안 좋은시간대에 불침번을 서기로 한다.
모두들 잠든 시간.
은선이와 면담을 하고
그 다음 홍주가 불침번을 선다. 난 몇 번이고 학교주변도 멤돌고 학교밖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불침번 차례
주의의 조금한 소리에도 민감했다.
그리고 윤광희 차례.
오늘도 몇시에 잠을 자지? 음...... 제발 아무일도 없길 바라며
새벽5시반 주영이가 나를 깨워줬다.
현철이를 잘못 깨우고 나서...
7월 15일 비
소공령을 과연 넘어야 할 것인가?
어떤 결단을 내려야 옳은 것인가?
그 덩치 커다란 개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까?
비는 아직까지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귓 속의 매미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말을 하며 생각할수 없었다.
“가자”
대원들은 영문을 모른다.
내 발은 이미 소공령을 향하고 있었다.
소공령의 추억.
개집 사건.
점심이 되기 전 가느다랗던 빗방울은 우리가 걸음을 옮길수록 커져만 갔다.
우리는 외부 소식을 들을수 없었으나
간간히 들려오는 전화엔 영서지방에 집중호우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기운이 삼척 외곽에 들어서는 오늘 집중적으로 퍼지고 있다.
오늘은 인성이형의 합류가 있고
외부 손님의 방문이 있었다.
내 전화기는 항상 켜놓고 있어야 했다
이 비속에서 장호초등학교에서 야영하기 까따로워
대환이와의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어야 했다.
대원들의 빨래는 좀처럼 마르지 않았고
내 걱정거리는 늘어나는 빨랫감처럼 마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구간은 신7번국도의 개통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척후를 보는 중이었다.
죽음의 7번 국도.
언덕길과 급커브길로 우리나라 국도상 교통사고 사망률 1위인 지점이다.
곪아가는 내 발을 신경쓸수도 대원들의 체력안배도
신경쓰지 않았다.
삶이 아니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아주 위험한 도로였기 때문에
나는 앞장서 행군중에 뛰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도 어긴체
앞에서 질주하는 차들을 서행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서히 우리 모두는 젖어 들고 있었고
이 내리는 비는 곧 내 눈물이 될 것 란걸..
전화가 갑자기 되지 않는다. 켜지지도 않는다.
아니다 이미 비를 많이 맞은 내 전화기는 고장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녀와의 연락이 끊겼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와 외부로 연결된 모든 이들의 연락이 끊겼다.
이 지겹고 악랄한 비와의 사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