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위원회가 지난 24일 SK㈜ 노사에 대해 “근로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을 논의하라”는 내용의 중재결정을 내림에 따라 재계가 초비상에 걸렸다.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다른 대기업 사업장 노조들이 임단협 등을 통해 ‘퇴직자 자녀의 우선 채용 명문화’ 등 비슷한 요구를 해 올 경우 사측이 사전에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지난 7월 21일 SK㈜에 따르면 노조가 회사 측에 제시한 80여 개 조항 300여 개 단체협약 개정안에는 ‘정년(만 60세) 이전에 조기 퇴직하는 직원의 자녀를 의무 고용할 것’이라는 조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노조가 단체협약안에 ‘고용 세습’ 명문화를 요구하기는 SK㈜가 처음이라고 보도됐지만 사실 정유업계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정년 이전 퇴직자 자녀에게 우대 혜택을 부여하는 일종의 '세습 고용'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쓰-오일은 작년 임단협에서 공장 근로자가 중도 퇴직할경우 퇴직 근로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며, GS칼텍스의 관계자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신입사원 채용시 명퇴자의 자녀를 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인사 정책에는 정년 이전 퇴직자 자녀들에게는 채용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명시돼있으며, 실례로 이 회사에 입사한 명퇴자들의 자녀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K㈜ 노조 관계자는 “회사 측에서 정년을 앞둔 고임금자에 대해 구조조정하겠다는 입장을 수시로 밝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조기 퇴직자 자녀 취업을 요구했다”고 말했지만 회사 측은 “구조조정 계획이 없음을 수차례 천명했다. 노조의 고용 세습 요구는 터무니없고 ‘인재 채용’이라는 경영 방침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기업체의 경우 직원의 자녀가 입사시험에 응할 때 가산점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일반 응시자와의 형평성 때문에 음성적으로 이뤄졌다. 울산의 모 대기업 노조는 2004년 단체협상에서 ‘고용 세습’을 요구하려다 ‘너무 지나치다’는 안팎의 여론 때문에 자진 철회했다. 퇴직자 자녀에 대한 고용 의무화는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뿐더러 평등권 침해, 고용시장 유연성 악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울산의 한 제조업체 노조원은 “임금과 복리 후생 수준이 국내 기업체 가운데 최고인 SK㈜의 노조가 취업까지 세습하려는 것은 배부른 노조의 이기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중노위가 섣부른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번 중재안을 직접 당사자인 SK㈜ 노사가 어떤 식으로든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SK㈜는 정년 퇴직자나 업무상 재해에 의한 퇴직자 자녀에 한정해 입사 편의 제공을 단체협약 사안으로 규정해 놓았었지만 이번 중노위의 결정에 따라 사측은 ‘조기 퇴직자 자녀 입사 편의’와 관련, 비슷한 조건일 경우 퇴직자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번 중재 결정은 노사 양측의 수용여부에 관계없이 취업 희망자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8월 25일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 같은 ‘대(代) 이은 고용’을 고려시대 ‘음서제’에 빗대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귀족노조의 대물림이 시작됐다”든가, “경영세습이나 고용세습이나 똑같다”는 둥, “세습 대기업사원이라는 뉴 엘리트 계층이 출현하는 셈”이라는 비아냥이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닐 것이다.
‘고용 세습’이 아닌 일부 대기업 노조의 ‘평생 철밥통’ 행태에 대해서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현실이고, 청년실업이 사회전반의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고용세습에 대한 감정이야 이루 말할 바가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웬만해서는 정규직 노조원을 해고하기 어렵고, 정규직 노조원이 늘어나면 경영 간섭이 더 심해지고, 파업의 파괴력 때문에 임금 인상률도 높다. 이러니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두려워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또, 한번 노조원이 되면 무능하건 게으르건 노조의 보호를 받으니 신규 노동인력이 진입(進入)할 기회가 줄어든다. 기득권 노조가 청년실업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철밥통’은 해고 불안을 별로 느끼지 않으니 생산성도 낮다. 이런 노조가 버티고 있으니 기업의 세계적 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국 많은 국민이 먹고살 것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과장된 것일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할 때 경영대권이니 인사고권을 내세워 노동쟁의를 억압할 때 쓰기 위해 전파한 논리가 틀림없다. 정부가 최근 들어 노령화 사회를 우려하여 장기고용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임금피크제니 뭐니 해서 사실상 고용조건의 악화를 댓가로 요구하는 것을 잘 아는 상당수 노조들이 ‘대(代)를 이은 고용’의 확보라는 호기(?)를 놓칠 리 없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등 매년 고임금 등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 노조들이 중앙노동위의 이번 중재안을 토대로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 등 사실상의 ‘고용세습’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재계는 이 경우 기존 채용관행의 변화는 물론 향후 노사교섭에도 악재로 작용,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 일부 대기업들이 명예퇴직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를 논의하거나 수용한 적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 편의제공 등이 관행적으로 명문화 될 경우 경영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젠 퇴직직원 자녀들의 우선채용 요구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기업의 볼 멘 소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중재 결정이 일반 구직자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소지가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가뜩이나 일자리 찾기도 어려운 청년실업 시대에 대기업 다니는 부모를 만나면 취직도 더 잘된다면 누가 동의할 것인가?
경총 관계자도 “결과적으로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은 노조의 힘이 막강하고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좋은 대기업들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이 경우 다른 중소 또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커다란 박탈감을 느끼는 등 사업장간 양극화도 더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을 자식이 세습하도록 해달라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노사교섭 대상"이라고 나 몰라라 한 것을 어찌 보면 될까? 노사관계가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노동 유연성 저해니 기업 경영부담 해소니 하면서 강요했던 노동자의 희생논리와 전혀 맞지 않는다. 재계 안팎에서는 노조측이 설사 이를 관철시키지 않더라도 사전에 인력 구조조정이나 다른 단협 사안과 연계시켜 사측을 압박하는 ‘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조가 기업의 핵심 경영권에 해당하는 채용문제에까지 관여할 수 있는 ‘명분’ 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경영대권이니 인사고권이니 하면서 노조의 개입을 불허하던 구조조정 문제나 인사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주장과 동떨어진 일관성을 잃은 처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구직자 취업기회 제한이며,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도 우려되는 것이어서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부의 지나친 세습을 막자며 세제 개편이니 뭐니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의 세습이야 불가피하니) 부가 세습되는 것이야 자본주의 사회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교육기회가 세습되면 안 된다는 논리로 평등교육을 주창해온 이 나라 현실이 아닌가?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용세습’은 대기업 노조의 지나친 이기주의라는 지적과 함께 결과적으로 일반 취업 희망자들의 기회를 박탈하면서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고용세습이 현실화 될 경우 일반 구직자들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제한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부모 잘 만나면 취업도 더 쉬워지는 것 아니냐”,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퇴직자 자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메리트를 줄 경우 해당기업에 입사하려는 다른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대기업 노조의 지나친 욕심에 다수의 일반 구직자들이 희생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제로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구체적인 사례 등이 나타날 경우 법적 소송 등 분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물론 법적으로는 고용세습제가 노사 자율 결정 사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과 헌법상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남준 노동 전문 변호사는 "조기 퇴직자 자녀에게 해당 기업 고용시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노사 양자간의 합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며 "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는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세습제 논의는) 기업과 노조가 법률적 테두리에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평등권의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법조계의 또 다른 모 변호사는 "조기 퇴직자의 자녀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직업 선택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위헌 소지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번 중노위 결정으로 고용세습제를 노사가 단협에서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중노위가 고용세습제라는 뜨거운 감자를 건드려 불필요한 노사 갈등을 야기할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용세습제가 그 자체로도 노사자율교섭 대상이다, 평등권 침해소지가 있다 하는 첨예한 논란꺼리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인지 모르겠이지만, 알량한 법률관에 기초하여 이를 노사자율교섭 대상이라고만 한다면 그 인간의 법적 상식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정부부처인 국가인권위원회는 퇴직자 자녀를 의무 고용하면 일반인의 고용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반면, 노동부 당국자는 “사기업의 노사가 서로 원해서 자율적으로 이뤄 낸 협상이라면 딱히 간섭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해당 회사에 입사하려는 다른 지원자의 기회를 박탈할 소지는 적지 않다”고 밝혔다. 그런 식으로 노사자율협상을 그렇게 인정하는 정부가 그간의 경영대권이니 인사고권이니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했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번의 결정, 단 한 줄의 결정에 왜 그리 민감하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지만 정부의 노동정책 전반, 아니 헌법질서를 수호하겠다는 국가적 의지의 신뢰성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면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노동부나 중노위의 결정들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데, 정부의 기회주의적 태도만 보여준 것이 걱정스럽다. 극단적인 예로 공무원 노조가 이를 주장하고 정부가 수용한다면, 교수노조가 이를 주장하고 대학이 받아들인다면, 국영기업체들이나 금융기관 노조들이 이를 주장하고 해당기업들이 수용해버린다면 신분세습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해 별다른 법률검토 없이 조건부 '고용세습' 논의 결정 중재안을 내린 중노위 결정 자체에 대해 “평등권 침해소지가 있다면 위헌 소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다. 심각한 직무유기인 것이다. 노사자율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취업상의 불이익을 받은 누군가가 정부를 상대로 공정거래법상의 담합행위로 고발했다든가 헌법상의 평등권이나 직업선택권 침해를 주장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인정한 결과로 인해 정부가 헌법을 위반한 꼴이 된다. 그러한 자유방임적, 아니 무정부적 행태를 보인 나라는 적어도 현대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난 내 아들이 우리 직장에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을 정도의 직장에는 다니고 있지만 결단코 반대다. 더 좋은 직장이라 해도 내 답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속으로는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도 없진 않기에 그런 유혹에 들게 하는 제도는 사악한 제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