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 학교는 꽤나 크다. 방금 엉망으로 시험을 치른 곳은 인문관으로 학교 정문에서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6층짜리 건물이다. 그 건물에서 약간 빠져나오면 정문에서 학교 본관까지 연결된 2차선도로가 있다. 그 양쪽으로 여기저기 건물들이 있다. 그 중에 도서관은 인문관에서 꽤나 반대편에 있어서 대략 도보로 10분 정도나 걸린다.
겨우 힘겹게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눈은 이미 도서관 옆. 이미 물기에 완전히 젖어있는 벤치 몇 개 놓여있는 쉼터로 향했다. 도서관에 들어갈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휴우…… 역시나.”
스스로에게 무안해지는 기분이네. 뺨에 난 여드름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도서관 옆 쉼터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낸다.
쉼터에는 벤치에 물이 묻어있어서 그런지 남학생 한 명밖에는 없었다. 이미 젖은 옷…… 나는 그냥 덜썩 앉는다. 그러나 역시 엉덩이가 차갑고 찝찝하다.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이어폰을 뺀 후 귀에 꼽고 CD Player를 튼다. Queen의 Invisible man이다. 아아…… 이 노래는 아니다. 이어폰의 리모콘으로 트랙을 바꾼다. It's a hard life다.
“휴우…….”
그리고 힘겹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손이 젖어 있어서 필터부분을 손끝으로 잡고 주의 깊게 한 개비 담배를 꺼낸다. 그리고 담배에 불붙인 후 씁쓸한 담배연기를 삼킨다. 허스키한 프레디의 중년의 목소리는 내 기분을 더욱 디프레스하게 만든다. 담배를 두세 모금 더 빤 후 연기를 내뱉는다. 내 입에서 나온 흰담배연기는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예쁘다…….
근처 벤치에 앉은 남학생이 약간은 이상한 눈치를 주는 듯 하지만 뭐, 이런 찝찝하고 짜증스러운 기분 역시, 나의 소심함 때문이겠지 하며 다시 음악에 집중하려한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안타깝게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단 말이지. 그게 문제다. 남들처럼 타인의 시선에 신경 안 쓰고 -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 ‘쿨’해지고 싶지만 뭐 해결책이 없으니…… 손 놓을 수밖에…… 꺼림칙함…….
그리고 나만큼이나 소심해서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를 생각한다. 항상 자기만 생각하는 바보였다. 내가 미국에 연수 가기 전 손가락 벌벌 떨며 겨우 몇 문장 만들어 보낸, 사실은 ‘가지마세요’라는 대답을 듣길 원했던, 문자에 간단히 ‘잘 다녀오시고, 건강하세요.’ 따위의 쓸데없는 답문만 보냈던, 그러고 나서 한밤중에 혼자 소주만 4병 마시고 사고 쳤던…….
무감각하고, 소심하고, 이기적인 그런 복잡한 녀석이었다.
3, 4번 피지도 않았는데 벌써 담배는 필터 바로 앞까지 타들어갔다. 그래서 난 한숨을 쉬며 또다시 담배 한 개비를 문다. 사실 나는 담배를 못 핀다. 한 번에 두 개비라니…… 휴우…… 또다시 내 피부는 툰드라의 눈이 더욱 더 녹아 거칠한 흙이 드러날 테고, 목소리 역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이 끝난 후의 상태와 엇비슷하게 걸걸해질 거 같다. 이제는…… 휴우…… 체념이다.
CD Player는 어느 샌가 건전지가 다 닳아버렸다. 어제 샀었는데…… 그때 때마침 점심시간에 교내 방송국에서 하는 음악 방송이 시작되었다. 짧은 멘트와 함께 Feel so good이 나온다. 약간은 먹구름이 갠 기분. 나는 이 기분을 놓치지 않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 담배는 끄고!
우리 학교 도서관 입구 계단은 굉장히 경사가 심하다. 거기다 비까지 와서…… 너무나도 미끄럽다. 하지만 지금의 그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두 칸씩 뛰어올라간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불렀다.
“누나…….”
난 고개를 든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계단 옆에 둔 화분들도 멈춰 선다. 비를 뿌리고 남아버린 새하얀 구름도 가는 길은 멈춰 선다. 심지어 내 숨소리조차 멈췄다.
그다…… 항상 원망스럽던 그다.
그러나 내 눈의 앵글은 그를 지나 하늘로 높이 솟는다.
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