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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고생들과 선생님들께,

이재웅 |2006.09.04 17:43
조회 72 |추천 0

0. 서론

 

지난 십수년간 대한민국의 중/고교와 교육부는 수능 만능주의에 빠져 정작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들에 대해 제자리 걸음뿐인 커리큘럼을 제시함으로써, 21세기인 지금에 이르러 경제 재난, 취업난, 그리고 '도덕난'의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혁 역시 수능에만 중점되어 근본적인 문제는 쉬쉬하게 되고,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교육의 주체되는 학생들이야말로, 국가의 향후 50년과 국운이 자신들에게 걸려있음을 인지하고, 자각을 통해 성숙된 교육을 실현하는 데에 앞서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작성합니다.

 

 

1. 교복

 

대한민국이라는 민주 국가에서 그 근간이 되어야 할 평등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생소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학교에서는 그것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지요. 국가의 근본을 이루고 미래의 투자가 집중되어야 할 교육기관에서 그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입니다.

 

과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그럴듯한 구호 아래 평등을 짓밟는건 아닙니까?

 

민주주의라는 말이 대한민국에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억울하면 나이 먹어라 는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학교입니다. 물론, 학생들의 안녕을 위해 어느정도의 통제가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평등의 이념은 남겨두어야 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청바지를 입은 선생님이 교복 점검을 하며 체벌을 가하는 모습은 어이없는 모순의 희극일 뿐입니다. 이건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복의 시스템 곧, 군대에서나 볼수 있어야 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교내에 어느정도의 의복통제는 있겠지만, 그 이유는 획일화가 아니고 지나치게 주의를 분산시키는 의복을 제한하기 위함입니다. 두발제재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학생이 죄수입니까? 자신의 두발조차 감당치 못하게 하면서 어찌 민주국가의 교육이라할 수 있습니까?

 

교복을 예로 들게 되었지만, 이것은 학교내 비평등의 모습을 찾기 위함입니다. 교복의 편리성을 들어 선호하는 분들도 있고, 디자인이 좋으면 사복보다 오히려 낫다는 쪽도 있습니다만, 저는 교복의 왜곡된 용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맨날 입만 열면 나오는 '통일성'이라던가 '애교성 증진'이라는 거짓말좀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교복 점검을 할수록 반발심 생기고 학교가 싫어지는 겁니다. 교복의 용도는 그 원래의 용도대로, 실용성 외에는 전부 버리고 다시 평가되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요, 그런 왜곡된 교복에서 알게 되는 억울하면 나이 먹던가의 논리는 극히 모순된 논리입니다. 나이가 적으면 뇌가 다르게 생겼습니까? 학생들의 사상을 존경할 줄 아는 스승이 참된 스승입니다. 연장자를 무조건 우대하는 유학(儒學)의 알량함이 학생들에게 평등이란 단어를 생소하게 만들고, 지난 십수년간 잘못된 어른의 모습을 심어주었습니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진정 평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그 생각을 존중하는 성숙된 교육현장의 모습이 절실합니다.

 

 

2. 의무와 도리

 

대한민국의 교사, 아니 스승님들에게 고하고 싶습니다.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에 그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담기기 마련이요, 상대방은 자신의 거울입니다.

 

학생들에게 존경을 못 받는 교사들의 볼멘 소리는 대부분, "나는 내 도리를 하는데, 학생들은 나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 입니다. 진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도리를 다하십니까? 아니면, 사실 그건 의무를 다하는 것 뿐일까요?

 

대한민국 교육계가 직면한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교육 노동자는 많은데 마음의 스승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문제 하나 풀어줄 선생님들은 있지만,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할 선생님들은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반에 수십명이 되는 학생들은 하나하나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지 않고 어떻게 스승이 되려는지, 저는 반문하고 싶군요. 참고서적 카피해서 나눠주고 교탁에서 교과서를 낭독하라고 국가의 녹을 받는다면, 차라리 학원 강사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존경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요즘 애들을 욕하기 전에, 과연 자신들에게 돌아올 존경을 학생들에게 주었는지 돌이켜 보십시오. 여러분은 스승입니다. 설령 존경을 받지 않아도 학생들에게 존경을 가르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행동에 대한민국의 향후 50년의 사회가 변하는 것을 어찌 모르시며, 학생들의 '어른'의 기준이 여러분이 됨을 어찌 모르신단 말입니까?

 

의무는 교육 노동자로써 행할수 있지만, 여러분이 스승들로써 도리를 하심은 곧 학생들의 진심으로 돌아옵니다. 학생들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불신의 눈매는 여러분이 어른으로써 학생들을 믿지 못하는 데에서 그 시작이 비롯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의심하고 불신하기 전에, 책임감을 길러주고 존경해주어 성숙한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3. 책임감

 

이어, 학생들께 고하고 싶습니다.

 

무의식중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른들의 여러분에 대한 불신은 어느정도 여러분의 행동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요행을 쫓게 되고, 때론 그것이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도 남의 눈이 없다면 유혹에 빠지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스승님들께 당부했듯이, 상대방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자신이 그 사람을 대하는 모습입니다. 존경은 주지 않고서는 절대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양쪽 모두 서로를 불신과 의심으로 대하기 때문에, '네가 안주니까 나도 안준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과연, 그것이 지난 십수년간 올바른 방법이었습니까?

 

여러분이 명심하셔야 하는 것은 두가지 입니다. 존경을 얻도록 하는 것과 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이루는 방법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다 시피 책임감이 있는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서는 될 것과 안되는 것, 그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입니다. 굳이 예까지 들어가며 지적해내기는 싫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양심에 맡겨야 할 것이니까요. 하나 분명한 것은, 몇몇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어쩌면 국회의사당에서) 그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행동들이 여러분을 선생님들의 스승이 되게 할 것이며, 존경의 관계가 성립될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러분이 향후 대한민국의 50년을 결정짓는 인재들입니다. 여러분의 성숙과 책임감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국운이 위기에 처할 것은 자명한 일이며, 여러분의 힘으로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교육의 주체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변하면 학교는 변화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정입니다. 여론의 힘이 바로 정치력이며, 그것이 정의를 향할 때에 국운이 흥망하는 체제임을 잊지 마십시오.

 

 

4. 정의

 

앞서 말한 평등과 같이, 정의라는 단어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정말로 생소한 말입니다. 허나, 새로운 교육현장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그 근간이 되어야할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정의란,

감독관이 없는 시험실에서 컨닝을 하지 않는 것이며, 

친구가 돈을 빌려준 사실을 잊었음에도 갚는 것이며,

힘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못된 곳에 쓰지 않는 것이며,

눈앞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잘못이 돌아오더라도 진실만을 추구하는 것이며,

어떠한 무력 앞에서라도 불의라면 거부하는 것이며,

세상속의 논리에 전부 썩어간다 해도 자신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교육현장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것을 명심하고 가슴에 새긴다면, 서로는 신뢰하지 않을래도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썩어갈 때에도 교육계에 정의가 살아있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같은 목표로써 정의를 추구할때에, 학생들의 책임감이 강해지고, 평등이 이루어지고, 서로의 존경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학생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초심에 정의라는 두글자를 새긴다면, 어디서든 당당할 것이며, 국운이 흥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지난 수년간 약속된 껍데기뿐인 개혁을 지켜보았고, 그안에서도 적응을 강요당하고 살았습니다. 정부의 개혁은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정의의 존재들임을 기성세대들에게 보이고, 교육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년간의 정부의 개혁에서 보셨듯이, 교육 개혁은 그들이 풀어낼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미 중/고교에 대한 불만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수많은 학생들이 분노속에 묵묵히 참아내고 있습니다. 인격체로써, 여러분은 그것을 바꿔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억압을 부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의이고 근본입니다. 학생 여러분마저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으며,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자명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중해야 할 문제는 교복을 입고 안입고가 아니며, 머리를 기르고 안기르고가 아닙니다. 현재 학교들의 불신과 모순을 그 기반부터 바꾸는 혁명을 일으켜, 미래의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5. 맺으며

 

중/고교의 교육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의 6년이면 끝날 과정이 아닌, 국운의 열쇠가 쥐어진 국가의 중책입니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사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고교 6년과 대학교 4년간 쌓아지는 지식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학생들이야말로 정의를 추구하고 평등을 누려야 하는 민주주의의 근간들이며, 그것을 앗아가는 6년은 이미 국가에 있어 60년의 후퇴나 다름 없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갈구하는 개혁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횃불이 될 것이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될 것입니다. 마음 속에 한 가닥의 정의심이 남아있다면, 학교 내의 불신과 모순의 악순환을 깨고, 억압을 깰 의지와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교육의 주체인 여러분이야말로 교육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침묵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그 힘을 쓸 의무 역시 여러분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운은 대통령도, 정치인도 아닌 바로 여러분께 달려있음을 명심하시길 바라며,

 

이 재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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