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동에 발을 디디면 높은 담을 한 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허나 조금만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살펴보자. 그러면 집이라고 하기에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곳이 더러 보인다. 유명 패션 부띠끄와 보기에도 멋스러운 카페나 레스토랑 매장들이 바로 그 곳. 젊은층의 활기차고 세련된 압구정동과 바로 밀접해 있으면서도 고급스럽고 중후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청담동. 이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색다른 음식점들, 이른바 퓨전푸드점. 각 나라의 정통 음식들을 맛 본 적이 있다면, 이번엔 청담동의 대표적인 맛거리 문화인 퓨전푸드점에서 이색적인 맛을 한번 즐겨보는 것도 이 가을 입맛을 돋굴 듯한데… 그럼 '퓨전푸드란 무엇인고?'하며 의문을 품는 이도 많으리라. 설명도 없이 마냥 경험해 보랄 순 없지. 퓨전푸드(Fusion Food)는 아직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새로운 요리장르이다. 알고 보니 느끼한 음식이 주를 이룬 미국인들이 건강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퓨전푸드의 시초라고 하더군. 퓨전푸드를 직역하면 '혼합음식'(으하하하, 이만하면 번역가를 해도 되겠군). 즉, 서양의 조리기법과 동양 조리기법의 장점만을 조화시켜 정통요리와는 색다른 맛을 만들어내지. 뭐 정통요리의 격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재료혼합이나 조리방법으로 만든다고 하더군. 그래서 일명 누벨꾸진(Nouvelle Cuisine 아니, 불어까지!), 뉴 웨이브 푸드(New Wave Food), 탈국적음식, 다국적음식 등 다양하게 부른다고 어느 누가 그럽디다. 뭐니뭐니해도 퓨전푸드 맛의 비결은 바로 독특한 향신료때문이지. 예를 들어 서양 와인이나 크림소스에 동양적인 향신료(겨자, 후추 등)넣어 보기엔 서양음식 같은데, 맛을 보면 우리네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단 말이야. 향신료를 사용해 서양음식의 느끼한 맛을 없앤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그렇다면 퓨전푸드의 매력은 뭘까? 바로 주방장의 상상력, 능력, 취향에 따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하여 프렌치아시아 퓨전푸드, 제패니즈이탈리안 퓨전푸드, 프렌치타이 퓨전푸드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럼 '퓨전푸드는 동양음식과 서양음식을 섞으면 되는 거잖아'하고 생각한 이가 있는가? 그건 코끼리 코 만져 보고 코끼리 구경했다고 하는 거라 똑같지 그럼.(비유가 맞았는지 좀 갸우뚱해지는군) 퓨전푸드라 해서 기본적인 조리의 법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양음식과 동양음식의 기본적인 조리기법들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 어떤 식자재와 어떤 소스가 합쳐졌을 때 더욱 맛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아는 감각이 필수이다. 고로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맛을 만들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 그래서 퓨전푸드점의 주방장들은 호텔급 수준의 주방장만이 할 수 있다는 설이 생기고 있대나 어쨌대나. 백문(白文)이 불여일식(不如一食). 백번 설명한다고 해서 고것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아닌 터. 백번 듣는 것보다 맛을 한번 보는게 낫겠지. 청담동 일대의 이름난 퓨전푸드점들. 이 곳들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내부 인테리어로 더 유명하다. 그래서 요리잡지보다는 건축잡지사 기자들이 더 많이 찾기도 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럼 한 군데 한 군데 문을 두드려 볼까? ●전망도 일품, 맛도 일품, 영화를 패러디한 요리 제목을 보는 재미까지.. '라인클럽'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돌아온 후크선장', '초원의 집' 등 영화제목을 패러디한 요리 제목에 엷은 미소를 먼저 띄우게 하는 곳. 거기에 로데오 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멋드러진 정경까지. 요리사 경력 20년의 송태열 주방장(프라자호텔)은 한식을 서양음식과 믹스시켜 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우리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한 요리들을 선보인다. 분청자기에 담아내는 음식들은 맛뿐 아니라 눈까지 싱글벙글. ·조로의 번개 검법(2만8천원) - 육회와 스테이크를 접목시킨 마치 쇠고기회와 같은 것으로, 쇠고기의 가운데는 안 익히고 겉만 익혀 특별 소스는 붓고 야채를 함께 곁들여낸다. ·서유기 강원도편(1만3천5백원) - 샤브샤브 돼지고기. 살짝 익힌 돼지고기의 부드러움과 튀긴 감자의 바삭한 맛을 즐긴다. ·중원만리 만만리(1만1천원) - 닭고기 참깨 소스. 삶은 닭 안심을 차게 식혀 고소한 참깨 소스로 즐기는 매콤한 맛이 일품인 중국풍의 요리 ●지중해풍 분위기, 비교적 저렴한 가격, 젊음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시츄러스' 다른 퓨전푸드보다 저렴한 가격(대부분 1만원 이하)으로 즐길 수 있는 젊음이 넘치는 곳. 지중해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낭만적인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시츄러스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식을 믹스해서 만들어 낸 음식들을 선보이고 있다. 색감을 고려한 소스로 음식 코디네이션이 독특하다. 방문객을 위한 끊임없는 시츄러스의 젊은 열정에 과감히 도전해 봄직한데.... ·치킨 캐슈넛(Chicken Cassoulet, 1만원) - 중국 닭고기 요리식. 닭고기에 캐스넛츠(땅콩의 일종), 각종 야채를 넣은 볶음 음식으로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매콤한 맛을 낸다. ·랍스타 캐슈넛(Labster Cassoulet, 9천원) - 시츄러스의 스페셜 요리. 크림소스를 곁들인 바다가재 까슬레. 일반 랍스타와 달리 바다가재를 솎아서 요리한다. ·시저 샐러드(6천원) ●목조와 철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세련된 인테리어에 맛까지 가미된다면 '시안' 먼저 시안의 절제된 인테리어를 빼놓을 수 없지. 검정 외부 강철에 위압감을 느끼며 문을 열면 유리벽과 목조의자, 철기둥의 절묘한 조화 속에 비치는 햇살이나 조명에 포근함을 갖는다. 멀리서라도 시안의 인테리어는 한번쯤 봐 둘만하다. 시안의 기본 메뉴는 프렌치 아시안 퓨전(French-Asian Fusion). 주방장 토드 니시모(Todd Nishimoto) 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퓨전푸드가 발달한 로스앤젤레스에서 요리를 배웠다. 세계 각국의 와인도 40여 종 준비되어 있다. ·새우, 관자, 광어, 홍합, 오징어 등의 해물에 페스토 드레싱을 곁들인 동양식 해물탕-1만7천5백원 ·포치니 버섯, 검은 콩 소스를 곁들인 신선한 관자와 타이거 새우 - 2만9천7백원 ·안남미로 만든 시안 야채볶음밥 - 9천원 ●중후한 분위기에서 Japanese-American 요리를 맛보는 기회 '와사비 비스트로' 모두 3층인데, 바깥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는 깔끔하면서 중후한 분위기. 하와이에 본점이 있고, 정통 일식에서 벗어나 캐주얼한 미국식 스타일의 일식음식을 선보이는 점이 독특. 일식을 좋아하는 젊은층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낮에는 주부층이 많으나, 저녁에는 가족모임과 데이트를 즐기는 낭만파들이 이곳의 주인공들. ·레인보우롤(1만5천원) - 스시와 캘리포니아롤의 복합체 ·두부 야채 샐러드(8천원) - 연두부와 야채 샐러드에 독특한 샐러드 소스가 함께 나오는 요리 ·이스트 웨스트 와사비 스페셜(2만5천원) - 말 그대로 동양음식과 서양음식 여러 가지 즐길 수 있는 요리. 게살 에피타이저, 게살 샌드위치, 생선초밥, 닭튀김, 그린티, 아이스크림의 코스요리 맛과 멋이 어루러진 다른 공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리… 청담동의 이색,정통 공간들. 꼭 한번 가봐야만 할 곳들이 사실 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곳만은 빼놓지 말도록! 안 그럼 후회하지. ●커피의 본 고장이라 불러도 될 듯 '하루에' 보통 원두는 오래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커피의 맛은 바로 생두에서 볶아지는 그때부터 잃어가기 시작. '하루에'는 최상급의 커피 맛을 위해 원두가 아닌 생두를 수입하고,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양만 볶아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신선한 커피 맛과 향을 자랑하는 곳. 그날 남은 커피는 모두 휴지통으로 날려버리지. 그래서 '하루에'서 커피 맛을 한번 맛본 사람은 다른 커피에 입 대는 것을 싫어한다는데... 한번 경험해 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