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왕의 유언을 들은 두견새는 세상으로 날아가 밤낮으로 피를 토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토해낸 피가 불게 물들어 피어난 꽃이 바로 두견화, 오늘날의 진날래가 되었다고 한다.
봄이 되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달래는 아마 많은 사람에게 특별히 기억으로 남는 꽃은 아닐것이다. 개나리와 함께 봄꽃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진달래는 화창한 봄날만큼이나 상큼하고 싱그러운 빛으로 무장한 화사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생김새도 장미와 같은 붉은 유혹의 빛도 띄지 못하고, 달래꽃처럼 소박한 내음도 풍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카시아와 같은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시기에 피는 개나리만한 화사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옅은 연분홍에 삐쭉 튀어나와있는 암술과 수술도 그리 자신을 이쁘게 치장하지 못한다.
진달래에 대한 전설을 들은 것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였다. 언제나 '이별의 정한'이라고 못박듯이 단정짓고 달달 외우게 만들었던 교육풍토에서 두견새의 전설은 자못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렸을 적 이었다. 진달래가 활짝 핀 것으로 보아 봄날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따사롭고 화창한 봄날의 기운에 못이겨 할머니와 함께 뒷산에 올랐다. 그저 콧노래가 흐르고 마냥 즐거운 이 봄소풍을 인도하는 길의 주변에는 진달래가 맞아주었다. 연보라빛의 붉은 홍조가 그저 평범하게 비췄고, 매번 봄마다 너무 흔하게 피어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진달래에 대한 기억이 서려 있는 것은 진달래의 '미'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길을 오르시며 산의 기운을 음미하셨고, 중간에는 진달래를 직접 따서 드셨다. 꽃을 먹는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고, 호기심에 따라서 입에 넣었다. 약간의 씁쓸한 맛에 물기가 번지듯 퍼지는 맛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똑' 따먹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하지만 진달래를 먹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저 재미나 향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훌쩍 커버려서 였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이 진달래를 배고픔을 이기는 하나의 식량으로 취급했다. 분홍빛 설사를 찍 갈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명부지를 위하여 먹어야만 했던 비운이 서려있는 꽃. 6.25라는 분단을 겪으시면서 온갖 고생과 배고픔속에서 할머니도 진달래를 식량으로서 취해야 했던 날들이 그려졌다.
진달래의 체취는 모두 아릿하게 잊혀지고, 그 자취마저도 모두 감춰져서 기억하기 힘든 어느 가을날, 어떤 시인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사뿐히 즈려 밝고 가시옵소서.'라는 구절을 읊조리며 진달래는 밟히면 피멍과 같은 빛을 발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그녀의 증언에 약간의 감흥에 젖어본다.
가만히 생각하면 진달래는 봄만되면 너무 흔하게 피어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봄의 이미지와도 너무도 잘 맞는 노란 개나리의 기세에 눌려 분홍빛 진달래가 사람의 눈에 차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진달래는 그런 무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질게 몰아치는 추위가 가시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그의 존재는 또 잊혀질지도 모르겠다. 만약 진달래가 없었으면 우리의 할머니, 혹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우리네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린 허기속에서도 그저 인내심으로 버텨야 했을 것이고, 한편의 시와 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던 감성들도 함께 묻혀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우리와 함께 동반하며 길을 걸었던 것은 진달래가 아닐까 싶다.
때가 되면 진달래는 어김없이 피어날 것이다. 이제는 물질적으로 세상이 풍족해지고, 수많은 오염들로 인하여 진달래가 먹을 이유가 없기에 더욱 야멸찬 환대를 받아야할지도 모르지만 진달래는 어김없이 피어날 것이다. 어쩌면 멋 훗날 진달래는 그저 사진과 시나 소설속에서만이 찾아볼 수 없는 더이상은 쓸모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진달래의 애환은 세상의 합리성과 실용성에는 더이상 필요가 없을테니까.
바람이 분다. 지긋한 여름이 그치고 가을이 오려나 보다. 이맘때쯤 되면 시인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우수에 젖으리라. 하지만 어둠이 몰려오고 달빛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나는 진달래 한송이가 그리워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