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밀꽃이 흐드러지니, 이제 가을이다
여름 해바라기가 고개 숙인 들녘으로
하얗게 망울을 터트린 메밀꽃이 송이송이 은빛물결을 이룬다.
주저주저 선 가을이 동구 밖에서 지난 계절을 재촉한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봉평마을
동구 밖에서 가을이 머뭇거린다
봉평마을 들머리의 장승군
봉평의 가을은 메밀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새하얀 눈꽃같은 메밀꽃은 여름 끝 무렵에서 가을의 초입까지 햇살 아래 눈을 시리게 하고, 달빛을 머금고는 점점으로 수채화를 그려낸다. 메밀꽃밭을 빙 둘러 앞으로 나란한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봉평땅의 가을풍경, 소박한 고향마을의 정겨움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원도 평창의 봉평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산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장돌뱅이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가 밤길을 걸으며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봉평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마을 들머리에 소설가의 이름자를 훈장처럼 새긴 장승군이 까치발을 딛은 듯 하늘에 솟아 있다. 먼 손님을 맞는 반가움이다.
눈꽃처럼 부서지는 메밀밭
봉평의 구경은 허생원과 조선달의 걸죽한 입담과 흥정이 오고 갔던 봉평장터가 그 첫 걸음. 지금도 여전히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5일장이 서는데, 끝물에 다다른 시골장터지만, 어쩌면 때 빼고 광을 낸 품이 그럴싸한 장돌뱅이를 대면할 지도 모른다. 봉평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메밀묵밥으로 요기를 뚝딱하고 장을 둘러본다.
지역의 특산음식인 메밀국수와 메일묵밥
소설의 실제 배경인 충주집, 물레방앗간, 봉평장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전통메밀음식 시연 및 경연, 전통놀이장, 메밀꽃 압화체험, 메밀꽃 바디페인팅,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봉숭아물들이기 등 다양한 난장이 펼쳐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물레방앗간
천천히 봉평중학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흥정계곡이 흐른다. 소설 속에서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건넜던 작은 개울이다. 개울을 건너면 오른 편으로 하얗게 꽃망울을 터트린 메밀밭이 널찍하게 펼쳐진다. 그 곁으로 동이와 허생원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충주집이 재현되어 있다. 가산 문학공원이다. 선생의 동상과 문학비 그리고 허생원이 하룻밤 몰래 사랑을 나누고 동이를 잉태시킨 물레방앗간이 자못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 물레방아가 돌고 디딜방아와 독이 몇 개 있다. 호기심이 많은 관광객이 빈 방아 찧는 시늉을 하니 감회가 사뭇 새롭다.
문학공원을 둘러보고 농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전형적인 강원도의 농가 모습 그대로인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처마 밑에 걸린 현판이 이 집이 소설가의 생가였음을 알려준다. 흙벽을 따라 농기구가 가지런하고 앞마당에는 꽃밭 겸 울타리를 쳐 놓은 집단장이 알뜰하고 소박하다. 아버지의 사진촬영에 포즈를 잡아보는 어린 소년의 머뭇거림이 소설가의 유년을 떠올리게 그럴싸한 풍경을 만든다.
가산 이효석 선생의 생가터
흥정계곡따라 허브나라, 오대산까지
이외에도 봉평에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유적지와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장평 나들목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봉평마을로 들어서는 길 곁에 판관대, 봉산서재, 팔석정이 차례로 줄을 지어 서 있다. 봉평면 창동리 쯤의 길가엔 까만 비석 몸돌에 자연석을 얹어 놓은 ‘판관대’라는 기볌비가 서 있다. 율곡 이이가 잉태된 곳으로 아버지 이원수의 벼슬에서 이름을 따 ‘이판관의 집터’란 뜻으로 불리어진 것으로 짐작한다. 다시 봉편 쪽으로 더 오르면 오른 쪽으로 봉산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고을 유생들이 율곡을 본받기 위해 1906년에 세웠다 한다.
흥정계곡의 팔석정
한편, 길과 나란히 누워있는 흥정계곡은 아직도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데, 냉수성 어류인 열목어와 송어 등이 다량 서식하고 있다. 또 아기자기한 기암괴석 사이를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부근의 푸른 노송들이 어울려 절묘한 선경을 이루어 낸다. 그 청녹색의 물길자락에 아름다운 8개의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 팔석정도 꼭 둘러보아야 할 곳. 팔석정은 조선 중기에 시와 글씨로 유명했던 양사언이 이곳의 경치에 반해 8일간 머물다 가면서 이를 기념하기 지은 정자. 정자 부근의 여덟 개의 바위에 글을 새기고 정자에도 친필로 '팔석정‘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바위 여덟 군데에 각각 여덟 문구의 글자가 남아 나그네의 궁금증을 자아 낼 뿐이다.
허브나라 농원의 호젓한 풍경
또 흥정계곡의 중류쯤에 자리한 허브나라농원(www.herbnara.com·033)335-2902)도 둘러보면 좋다.허브나라는 페파민트, 캐모마일, 로즈마리, 라벤다, 로즈마리, 머쉬맬로우, 샌토리나 등 허브 꽃의 짙은 향내를 만끽하고 색다른 볼거리와 먹거리를 풍부해 계절이 관계없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특히 숙박을 할 수 있는 숙박동은 민트, 세이지 등 허브 이름으로 예쁘게 꾸며져 향기로운 잠자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방은 모두 6개로 2인실부터 10인실로 꾸며져 있는데, 몇 주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만 숙박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봉평에서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 영서지방이 대표적인 답사지인 오대산 월정사이다. 월정사는 워낙 그 터잡이가 뛰어나고 1km를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호흡하기엔 그만. 두 팔을 벌리고 장쾌하게 뻗은 전나무 숲 사이의 햇살자락을 들이 쉬며 산중의 한가한 겨를에 젖어봄직 하다. 또 절집 마당에 오롯이 장솟아있는 팔각구층석탑은 월정사에서 대표한다. 아홉 개의 지붕돌과 그 추녀 끝마다 달려 있는 풍경이 사뭇 이채롭다.
봉평으로의 가을 여행. 소금을 흩뿌린 듯한 메밀밭이 머뭇거리는 가을을 재촉하고, 길 곁의 연분홍 감자꽃이 묘한 색감으로 수수한 풍경을 그려내는 산골동리. 이제 가을,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의 길이다.
■ 길라잡이
강원 평창은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봉평은 영동고속도 장평나들목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둔내쪽으로 가면 된다. 길 곁에 판관대, 봉산서재, 팔석정이 차례로 줄을 지어 서 있다. 팔석정은 봉평마을 쪽으로 오르다 보면 길 왼편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서 2시간 30분소요. 또 오대산은 상진부교차로에서 역시 6번 국도를 타고 오대산국립공원 월정사 지구로 찾아가면 된다.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메밀 막국수 등 맛난 먹을거리, 가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봉평마을
(자세한 위치는 확대를 클릭하면 나옵니다)
효석문학축제는 9월 8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이제 효석문화제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을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메밀꽃 축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진다. 또 올해는 지역민들이 입은 수해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벤트성 행사를 가급적 줄이고, 뜻깊은 문학행사 위주로 진행된다. 효석백일장, 이효석문학상 시상식, 평론가들이 참여한 ‘이효석 작품에 나타난 성의식’ 심포지엄 등 다양하다. 또 ‘작고문인의 육필을 만나다’ 행사를 비롯 ‘추억의 헌책방’도 운영된다. 김유정, 정지용, 유치진, 이상, 박태원, 이태준 등 가산과 함께 참여했던 구인회 문인의 고서를 전시한다.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를 만나보는 자리도 마련된다.
그동안 길을 걸으면서 나름대로 느끼고 있던 것들을 '여행의 기술'이란 제목으로 정리해 봅니다. 문득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으로 가슴이 벅차질 때, 쓸모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간혹 처음 만나는 분들이 '어디가 제일 좋아요?'하고 묻습니다.
그 때면 어김없이 어느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릅니다.
'길은 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결국, 모든 아름다운 여행은 여행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일상은 잠시 놓아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바라 보세요.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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