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협주곡 임웅균(성악가)
국내 명문 음악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음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유학 갔을 때의 일입니다.
"돈이 벌써 다 떨어졌네......."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나는 학교 후배를 통해 오시모 음악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파바로티 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해 주신데....학비도 별로 안드는데다 그쪽은 집값도 아주 싸다구."
후배의 말을 듣고 나는 부푼 희망을 안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신원을 알 수 없는 외국인에게 방을 빌려 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장 잠 잘 데가 없으니 어쩐다....."
학비를 아끼기 위해 무작정 떠나오긴 했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 난감했던 나는 동네 야채 가게 주인에게 마을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야채 가게 주인 아저씨는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국립경찰인 페르난도 씨죠."
그 길로 페르난도 씨 집을 찾은 나는 가게에서 산 과일을 건네면서 그에게 정중하게도움을 청했습니다.
"난 뇌물은 받지 않습니다. 이건 도로 가져 가세요."
듣던대로 양심적이고 청렴결백한 경찰이었습니다. 그날 페르난도씨 덕분으로 허름하지만 저렴한 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싸긴 한데 전기도 안 들어오고, 손볼 데도 많겠는 걸요."
"걱정 말게, 내가 아주 살기 좋은 집으로 만들어 주지."
그 후 페르난도 씨는 수시로 집에 들러 집안 구석구석 페인트도 칠해 주고 전선을 이어 주기도 하면서 지저분한 집을 아늑한 보금자리로 꾸며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활비를 빌려주기도 하고 자신의 자가용으로 직접 땔감을 씰어다 주기도 했습니다.
"늘 폐만 끼치네요."
도움만 주는 페르난도 씨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던 나는 늘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페르난도 씨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소리 말게, 우린 이웃 아닌가."
페르난도의 배려로 안정을 찾은 나는 무사히 오시모 음악학교 오페라과 입학했고, 열심히 공부해 이탈리아 평론가들로부터 천부적인 테너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공적인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0년 만에 다시 이탈리아를 찾았을 때, 제일 먼저 페르난도 ㅆ를 만나러 갔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받았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텔레비전을 선물했더니 페르난도 씨도 이번에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뭘 바라고 도운 게 아니라네. 그저 자네가 훌륭한 성악가가 될 거라고 믿었을 뿐이야."
외롭고 힘들었던 유학 시절, 페르난도 씨의 따뜻한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성악의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페르난도씨야 말로 나를 무대로 이끌어 준 영원한 스승입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그의 편견 없는 신뢰야말로 내 음악을 및나게 해 준 절묘한 하모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