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성의 역사 탐방

1. 산행일시.
2006년 8월 26일(토)-10시(흐림).
2. 산행코스.
구파발(3호선1번출구)-북한산성(매)-대서문-중성문- 노적교- 태고사-
북한산대피소- 용암문- 위문 -백운봉- 백운산장- 백운대(매)-4시간.
3. 사찰 및 문화재.
1).태고사(太古寺).
태고사는 구암봉아래 중흥사 뒷 편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말인 14C
후반 명승 보우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암으로서 중흥사
소속이었다. 구암봉 기슭의 긴 계단을 오르면 2단의 석축이 나오고 그
위에 서향의 대웅전과 원증국사부도탑비(보물제611호)를 모신 비각이
있다. 비각의 왼쪽으로는 돌로 지은 산신각이 있으며 산신각 뒷편에는
노적, 만경, 백운봉과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가진 부도탑 3기가
남아있다.
태고사 대웅전
2). 태고사원증국사탑비(보물제611호-석비).
태고사 법당 바로 옆에 위치한 원증국사의 탑비는 원증국사
(1301-138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의
광지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배움에 전념하였다. 46세 때에는 중국에까지 다녀왔는데 이후
다시 중국에 갔을 때에는 순제(順帝)가 그 소식을 듣고 법의를
하사 하였다 한다. 공민왕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소설사로
들어가 지내었고, 우왕 8년(1382)에 이 절에서 입적 하였다. 비(碑)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등에는 길쭉한
육각무늬를 채워 두었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무늬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고려 우왕11년(1385)에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색이 짓고, 명필 권주가 글씨를 썼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형식에 그치고 있어 퇴화된 느낌을 받는다.
(국립공원 북한산 홈폐이지에서)
3). 태고사원증국사탑(보물제749호-부도).
고려 후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탑으로,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위로 탑신을 올린후 독특한 모습의 머리 장식을 얹었다. 기단의
맨 밑단이 되는 4각의 아래 받침돌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 그 웟면에는 굵은 선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또한 8각의 가운데 받침돌은 각 모서리에 원기둥을 새긴
후 면마다 큼직한 꽃무늬를 새겨 장식하였으며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은
굵은 선으로 연꽃을 새겼고, 꽃잎안에 고사리 무늬를 두었다. 탑신의
몸들은 원형으로 위쪽이 좁아져서 지붕돌 밑면에 들어 맞게 되어 있다.
지붕들은 처마가 거의 수평을 이루며, 각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투박하게
솟아있고, 지붕돌 위에는 머리장식이있다.
태고사원증국사탑비(보물제611호)의 건립이 고려 우왕11년(1385)이므로
이 사리탑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립공원 북한산 홈폐이지에서)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제749호-부도)
4). 중흥사지(重興寺址)-기념물 제136호.
중흥사터는 북한산성내 장군봉과 구암봉 사이에 있는 옛 절터이다.
중흥사는 고려 전기에 지어졌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며, 고려 말기에 고승 보우가 고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에 의하면 이 절은 본래 30칸 정도의 작은 규모에 불과했으나
숙종41년(1715)에 늘려 지어 136칸의 큰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8도의 절에 명을 내려 1년에 6차례 번갈라 의승을 뽑아서
산성내의 절에 주둔시켰으며, 승군들이 주둔하였던 용암사, 노적사,
경흥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원각사, 국녕사, 서암사, 태고사,
진국사, 중흥사를 관리 하였던 중요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1915년 홍수로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하여 주추돌과 축대만 남아 있으나 현재 복원중에
있다.
삼각산의 인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