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Horace N.Allen.한국명 :安 運. 1859-1932)

주한 선교사들은 한국을 사랑했다. 보기를 들자면, 한국에 와서 활동했던 개신교 선교사 1호였던 알렌은 너무 친한(親韓), 지한적(持韓的)이라 미국 정부의 이익추구에 방해가 되었으므로 본국에 소환되었다. 왜냐하면 1895년 을미사변으로 왕후 민비가 일본 폭도들의 손에 무참히 죽임을 당했을 때 알렌은 민비 시해의 음모가 일본 공사관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거듭 통보하고 일본의 만행을 속속 공개 규탄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알렌이 우호적인 인물(persona gratia)이 못된다며 미국에 불평했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과 친근하기를 원했으므로 알렌의 말을 무시했고 그를 대리 공사의 자리에서 파직시켰다.
헐버트 박사(Hulbert, Homer Bezaleel,한국명: ‘할보(轄甫)’.1863-1949)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살의 나이로 육영공원 교사를 맡은데 이어 교육 및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 황제를 보좌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 등 밀사를 파견할 것을 고종황제에게 건의하고 지원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된 그는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미국은 대한제국과 1882년 5월22일 제물포에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일방이 제3국의 위협을 받을 때는 ‘거중조정(good office)'을 하도록 했다. 조약 상대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장치’ 였다. 대한제국은 이 조약후 미국에 최초의 철도부설권과 운산금광 체굴권 등 막대한 특혜를 주고 미국에게 ‘거중조정’을 요구했지만 거부되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시시각각 노골화 되면서 나라의 존망이 위협받던 시기 고종은 국권을 지키기위해 서구열강들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이같은 계획을 실행한 사람은 고종의 정치고문 헐버트 였다. 1905년 10월 헐버트는 일본이 무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는 사실을 알리며 한미수호조약의 규약을 들어 을사조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을 도와줄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 상황에서 왕이할 수 있는 한가지 일은 미국대통령에게 개인적인 서신을 보내 조선에서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과오에 대해 환기시키고 이 사태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조선에 협력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였다. 그 서한은 10월에 조선의 황제로부터 나에게 전달되었다.
고종은 한미수호조약을 들어 도와줄것을 요청하지만 미국은 계속 거부한다. 고종의 요청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한미수호조약의 일방적 파기와 함께 일본의 조선합병을 인정해줄테니 조선과 필리핀을 일본과 미국이 사이좋게 빅딜하자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채결하였다. 미국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본에 한국국권을 넘기는 밀약을 체결했던 것이였다. 헐버트는 그때서야 미국정부가 이전 1882년 맺었던 한미수호조약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이 한국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이기적 잇속을 차리기 위해 일본을 지지했다”면서 그 외교정책의 부도덕성을 통렬히 비난한다. 헐버트는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면서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이렇게 들어내고있다.
"전 국민들이 일본의 강압적인 태도에 치를떨고 조선관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서도 조선주재미국공사 모건은 한민족의 멸망을 초래한 일본인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있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는 간절함이 북받혀 한국인들이 일본에 무력으로라도 맞서 독립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기에 이른다. 1907년 8월27일자 대한매일신보는 그의 연설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일본이 비록 강하나 이천만 민족을 다 멸하지는 못할지라. 한인이 다 분격하여 혈심(血心)으로 싸우면 3년을 지나지 못하여 일본의 재정이 탕진할 것이요 한국 안에 있는 일본의 권리가 그림자도 없어지리라 하였더라. "
헐버트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다른나라와의 약속을 배신하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끔한 자신의 조국 미국의 부도덕성에 분노하며 자신이 죽으면 미국이 아닌 조선에 묻어달라 유언한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