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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제 의견은 일단 접어두고, 이 영화에서 제가 인상깊게 본,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한 면이 엿보이는 장면들 위주로 글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 "봉준호"스러운 명장면 BEST 5.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1. 매점 안에서 온 가족이 식사를 하는 장면.
현서를 잃은 슬픔과 막막함에서도 허기를 채워야 하는 씁쓸한 상황. 다들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속으로는 현서를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한국적인 가족의 정이 담겨있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다음 컷이 하수구의 현서가 빗물을 받아먹는 장면임을 볼 때, 현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오버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설명 하나 없이, 단 한 장면으로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잘 보여주는 가슴 짠했던 이 장면. 개인적으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2. 합동 분향소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
인재에 의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합동 분향소 장면.
참 슬프고 애통한 분위기임에도, 아이러니하게 뭔가 참 웃깁니다.
거기다 가족들이 바닥을 뒹굴며 오열할 때, 그걸 위에서 보여주는 각도의 센스까지..
이 분향소에서의 장면이 가장 봉준호다웠던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변희봉씨가 마지막에 총알 없음을 알고, 뒤돌아서서 손 흔드는 장면.
총알 수를 잘못 센 자식을 원망하기는커녕,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괴물을 뒤로 하고, 아무 말 없이 얼른 도망가라고 손을 흔들던 늙은 아버지의 그 몸짓과 애틋한 눈빛.
그리고, 자기 잘못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신문지로 가리고,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못난 자식.
변희봉씨와 송강호씨의 대사 하나 없었던 이 장면. 이 둘의 연기가 가장 빛을 발하면서도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4. 현서가 탈출을 결심하고, 꼬마를 타이른 후, 탈출 시도하다 실패하는 장면.
탈출을 결심한 현서의 그 결연한 눈빛. 탈출하다가 괴물에 잡힌 순간, 공포와 절망에 어우러져, 순간 멍해 보이기까지 했던 현서의 그 표정. 괴물이 현서를 땅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온 몸이 얼어붙은 듯, 발길도 떼지 못하고, 뒤의 꼬마를 바라보던 그 겁에 질린 눈빛.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현서 역의 고아성은 "아역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였다고 한 말이 새삼 이해가 되더군요. 제가 가장 가슴 졸이며 봤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5. 송강호와 꼬마가 TV를 끄고, 밥먹는 엔딩 장면.
괴물을 잡았지만,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는 소시민의 삶.
"밥 먹자"는 말 한 마디에 자다가 벌떡 일어난 꼬마와 "밥 먹는데 집중하게 TV끄자."는 꼬마의 말에 자기와 관련된 뉴스가 나옴에도 발로 TV를 꺼버리는 송강호.
그들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사회에 결국은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소시민의 삶을 가장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어떤 분은 리뷰에 이 장면에 대해,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살아간다." 이렇게 쓰셨던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여전히 사회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매점을 보여주는 엔딩씬은 "살인의 추억"의 엔딩씬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된 소재가 '괴물'이고, 헐리우드 영화 속의 괴물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국산(?)괴물이 단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반추해 보면, 괴물도 괴물이지만, 진한 가족애가 느껴졌던 장면들이 우선 떠오르는 걸 보니, 새삼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닌 거기에 맞서 싸우는 가족이라고 한 봉준호 감독의 말이 다시 한 번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 기타, 봉준호스러웠던 장면들.
1. 오프닝 장면. 독극물 방류 vs 한 시민의 자살.
오프닝부터 저를 감탄시킨 봉준호 감독. 괴물의 탄생과 동기부여에 설명 하나 없이, 완벽하게 의미를 전달했다고 보는 장면입니다.
독극물 방류에 의해 괴물이 탄생하고, 자살한 사람을 잡아먹고 새로운 맛(?)을 알게 된 괴물이 그 때부터 뭍으로 올라와 인간을 공격하게 됩니다. (다음 뉴스에 자살한 분이 상반신만 참혹하게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오죠.) 괴물을 만든 것도 이 사회(미국)이고, 괴물에게 인간의 맛을 알려준 그 사람을 처음에 자살로 내몰았던 것도 아마 이 사회였겠죠.
결국,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부조리한 이 사회에 있었음을 감독은 이 오프닝 단 두 컷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2. 송강호를 두 번이나 착각하게 만든, 안경 쓴 그 소녀.
처음에 송강호는 자다가 "아빠"하는 말에 현서인 줄 알고 벌떡 깨어나죠. 그러나, "아빠"를 부르며, 매점 앞을 지나가던 그 소녀. 결정적인 순간에 송강호를 또 한 번 착각(?)하게 만들죠.
그리고, 처음에 매점 과자를 슬쩍 하려고 했던 어린 꼬마와 그걸 말리는 소년. 누군 줄 아시죠?
또, 송강호가 처음에 현서 앞에서 넘어졌을 때, 이게 그냥 우연이 아닌 송강호의 습관임을 그 다음, 바로 일어나는 안타까운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디테일한 감독의 면이 엿보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3. 송강호와 같이 괴물에 맞서는 사람이 "미국인"이라는 설정.
여기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어떤 분이 리뷰에 이렇게 쓰셨더군요.
"이건 미국이라는 국가를 비판하면서도, 선량하고 정의로운 개개인의 미국인에 대해서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감독의 균형적인 설정."이라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이 말에 공감합니다.
4. 마지막에 괴물이 불타는 CG.
처음엔 그냥 어설프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상하더군요.
전체적인 CG의 수준높은 완성도와, 장면 하나하나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신경쓰는 감독의 성향으로 볼 때, 왜 저걸 저렇게 처리했을까 하는.... 그냥 정상적으로 불태우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만들기 쉬웠을텐데 말이죠.
전문가(?)들의 말로는, 휘발유나 신나 같은 인화성 물질을 바퀴벌레(괴물 같은...) 같은 것에 뿌리고 불을 붙이면, 그냥 일반적으로 불이 붙는 게 아닌, 영화 속 장면처럼, 불이 선명하지 않게 겉돈다고 하네요. 이것도 결국은 사실감을 높히려는 감독의 디테일함이 엿보이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미리 물고기를 가지고 직접 실험(?)까지 해보았다고 하네요.
5. 송강호가 골뱅이 먹는 장면. vs 수술 받는 장면.
처음 딸이 죽은 줄만 알았을 때, 송강호는 병원에서 배고픔을 못 이기고, 밤에 몰래 골뱅이를 먹습니다. 꼭 딸을 잡아간 괴물 같이 생긴 골뱅이... 망설이던 송강호는 허기를 달래고자 결국 골뱅이를 먹고 말죠.
그러나, 딸이 살아있음을 알았을 때는, 강한 마취와 수술에도 정신을 잃지 않는 송강호.
이 두 씬은 송강호가 정말 단순무식하게 생존본능에만 충실한 사람이지만, 그 본능마저도 이겨낼 만큼, 딸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6. 울면서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배두나. vs 자식들 컵라면에 먼저 물을 붓는 변희봉.
보통 고모 같은 친척들이 조카의 장례식장에 올 때, 울면서 오지는 않습니다. (아닌가?)
장례식장에 와서 울죠. 그런 건 친척이라는 약간의 거리감과, 장례식장에서의 '보여주기 위한' 울음의 성격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모인 배두나는 울어서 퉁퉁 부은 듯한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장례식장을 찾아 옵니다. 감독의 주문이었다고 하는데, 이건 배두나가 고모 이상의 한 가족으로써 현서를 평소에 돌보았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매점에서 식사할 때, 자식들 컵라면에 먼저 물을 붓는 변희봉씨. 마지막에 물이 부족해 자기 라면에는 미처 물을 충분히 못 붓는데, 이 장면도 감독의 주문이었다고 하니, 역시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가족들이 라면 먹을 때, 처음에 목이 매인 듯, '컥' 소리를 냈을 땐, 감독의 디테일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정말 배고플 때, 갑자기 무언가를 급히 먹으면, (특히, 라면) 순간, 목이 매는 듯한데, 거기다 아무 것도 못 먹고 굶고 있을 현서를 생각하면서 먹으려니 더더욱 그러했겠죠. 그 어떤 말이나 표현보다, 라면 먹으면서 목 매인듯한 '컥'한 표현 하나가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진한 가족애라고 했지만,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속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고, 살가운 말 한 마디도 잘 건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정말 끈끈한 가족애들 느끼게 하는 이런 장면들.. 봉준호 감독, 이제 칭찬하기도 입이 아프네요.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지만, 겉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우리네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 해서, 정말 가슴이 아려오는 듯 했습니다.
7. 마지막에 괴물 등에서 떨어지는 물고기.
개인적으로 이건 저 괴물도 처음에는 저렇게 작고 힘없는 물고기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 괴물에 애정이 담겨 있는 감독의 시선에 의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 이게 맞다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를 만드신 봉준호 감독도 어떤 질문에 대해 "이건 이게 맞고, 이렇게 해석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고,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고 자유라고 하셨죠. 제 의견도 어디까지나 같은 대상을 보는, 수없이 다양한 의견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8. 박해일의 한 마디. "좆 까!"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귀에 거슬리는 욕일수도 있지만, 동료마저 팔아먹으려는 이 부조리한 한국 사회에, 감독이 박해일의 입을 빌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순간 에서 권상우가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 그래!" 이 대사가 생각났다는..
9. 미국의 의료전문가의 한 마디. "노 바이러스!"
있지도 않은 결과를 미리 가정해 놓고, 자기 의도대로 할 짓은 다하고야 마는 미국을 비판한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순간, 존재하지도 않았던 생화학무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일으켰던 이라크 전쟁이 머리 속에 오버랩되더군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 다음의 "내 말도 말인데, 왜 안 들어줘?" 하는 송강호씨의 절규는 힘없이 무시당하는 소시민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해서 가슴이 아려오더군요.
10. 배두나의 대사 중, "지금 우리 말을 못 믿는다는 거?"
영화에서 수원시청 소속 양궁선수로 나오는 배두나의 이 대사. 말 끝에 "~거?" 이걸 붙이는 건, 경기도 수원 지방의 사투리라고 하네요.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시다니, 역시,,'봉테일'답죠?
Bonus.
이 영화의 괴물 목소리가, 배우 오달수씨의 목소리를 변형한 건 다들 아시죠?
특히, 마지막에 괴물이 몸부림 칠 때의 목소리를 연기하실 때, 오달수씨가 너무나 진지하게 열연(?)하셔서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봉준호 감독이 뭔지 모를 숙연함까지 느끼셨다고 하네요.
외모 못지 않은(?) 목소리로, 보이지 않게 영화를 빛내주신 오달수씨에게도 박수를!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