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이 있다고 치자. 칠 년이나 팔 년쯤. 그보다 더 오래이거나 짧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연애 기간이란 상대적인 것이니까. 일 년이라도 십 년 같고, 십 년이라도 일 년 같은 것이니까. 어쨌든 그들은 오랫동안 연인 사이였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보듬어주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런 남녀가 있다고 하자.
어떤 방식으로 연인이 되었든 상관없이, 그들이 연인이었던 동안, 그것도 아주 오래, 관계를 유지했던 그동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상상할 수 있을 만큼만 상상해보자. 그들은 종종 싸우고 화해했을 테다. 곧 끝장날 듯 격렬했던 싸움은, 의식처럼 요란했던 화해의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고 무뎌졌을 테다. 다치지 않을 만큼의 다툼과 화해의 방법을 그들은 알아갔을 것이다. 가끔은 관계가 흔들릴 정도의 위기가 있었을 테고, 때론 현명하게 때론 어쩔 수 없이 그 위기를 넘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한동안의 열정, 한동안의 폭풍, 또 얼마간의 위기와 조정, 그러는 동안 자연적으로 쌓인 정.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을 한 덩어리로 붙여놓았던 것은 그놈에 ‘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 오랫동안 함께해온 그들이 헤어졌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헤어지게 된 걸까.
그들이 헤어진 이유를 상상하는 것은 오랜 연애 과정을 상상하는 것보다 어렵다.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거나,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거나,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가 멀리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아무 이유도 없었는지 모른다. 그들조차도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그런 이유로 헤어질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이유들, 가령 손톱 사이에 낀 때나 앞섶에 흘린 김칫국물 같은 것. 아니면 무심히 던진 농담이나 말 한마디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연애란 그런 거니까.
# 2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이 있다고 치자. 그들은 각자 새로운 연애를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결혼을 하거나 학부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연애는 시작도 못하고 혼자 지낼 수도 있다. 옛 연애의 기억 때문에 새로운 연애를 방해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연애를 끝낸 연인들은 그 오랜 기간의 기억을 끝낼 수도 있을까?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만큼의 기간이 필요할까?
오랜 연애를 하는 동안 알아왔던 모든 것. 습관처럼 인이 박힌 그 모든 것들. 생선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주던 여자의 손길을, 바다만 보면 무작정 뛰어들며 까르르 웃던 여자의 목소리를, 화가 나면 입을 쭉 내밀고 먼 데만 바라보던 여자의 눈길을, 남자는 잊을 수 있을까?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여자가 주면 말없이 받아먹던 남자의 입을, 고민할 때면 세 갈래로 모아지는 남자의 미간을, 잡은 손이 부끄럽다고 끝내 주머니 속으로 가져가던 남자의 촉촉한 손을, 거짓말을 하면 금세 발개지는 남자의 작은 귀를, 여자는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이 함께 갔던 카페나 공원이나 시장이나 길 한 모퉁이에 다시 섰을 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옛 연애의 기억을 환기시키기도 할 것이다. 함께 먹었던 팥빙수나 감자탕이나 곰장어 같은 것을 먹을 때, 팥을 골라내던 여자를, 돼지 등뼈에 붙은 살을 너무나 잘 발라내던 여자를, 징그럽다고 하면서도 남자가 주는 곰장어를 잘도 받아먹던 여자를, 남자는 떠올릴 것이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는 대단한 것이 필요치 않다. 수박 끝에 칼끝을 집어넣으면 순간적으로 퍼지는 단내만으로도, 갑자기 쏟아 붓기 시작하는 소나기의 그 매캐한 흙냄새만으로도 된다. 아주 미세한 음성, 짧은 노랫말, 버스 부저, 시장 상인들의 외침, 손끝에 묻은 아이스크림, 그 속에 내재된 기억의 단초들은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잊으려고 해도 쉽게 잊히지 않는 감각들.
그것들을 모두 잊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얼굴이 잊히고, 손길이나 눈길이 잊히고, 목소리가, 약속들이, 서로의 전화번호가 모두 잊힌 후에도, 헤어진 연인들을 끝끝내 붙잡아두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만큼, 아니 그 시간의 몇 곱절이 흐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쉽게 잊힐 수 있는 것일까?
# 3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이 있다고 치자. 또 오랜 시간이 지나 옛 애인의 기억이 거의 잊혔다고 치자.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치자. 옛 연인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고, 기억을 떠올린다 해도 그저 기억일 뿐,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치자. 그때 꿈에 옛 애인이 나타난다면?
얼굴을 기억할 수는 없어도, 분명 그 혹은 그녀인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지는, 스스로도 옛 애인이라고 밝히며 나타난 그 혹은 그녀를 보았을 때 오래전 헤어진 그 연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그가 혹은 그녀가 결혼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자신이 옛 애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옛 연애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자신하던 때, 옛 애인의 꿈을 꾼 여자가 있다고 치자. 며칠 혹은 몇 주 간격으로 그 옛 애인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치자. 지우려 애를 썼든 저절로 잊혔든 지금은 어렴풋하기만 한 기억을 되살리려 하지 않겠는가? 몇 개의 숫자로만 기억나는 옛 애인의 전화번호를, 한때는 좋아라 지냈으나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옛 애인의 친구들을, 옛 애인과 함께했던 장소와 수많은 시간들을 기억해내려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해낸다 해도 바뀌어버렸을지 모르는 옛 애인의 전화번호를 불현듯 누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어쩌다 보니 옛 애인의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4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이 있다고 치자. 그 연인이 첫사랑이었다고 치자. 첫사랑을 오랫동안 지켜왔으나 헤어진 연인이 있다고 하자. 그 헤어진 연인들이 첫사랑을 떠올릴 때 가슴께를 치고 올라오는 감정이 있지 않겠는가? 촉촉함과 풋풋함과 따뜻함, 그리고 억울함과 미안함과 후회 같은 것이 마구 뒤섞여 가슴께를 치지 않겠는가?
지금보다 훨씬 젊고, 훨씬 많은 가능성과, 훨씬 풍부했던 감정선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그것은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그 시절. 그 시기. 그 시간들. 옛 애인은 떠났으나 그 시간만큼은 붙들어놓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시기 그 시간들을 다듬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잊혔던 기억들을 변조하고 왜곡하고 부풀려서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하나의 이미지로, 단 하나 첫사랑의 영상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첫사랑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5
아주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이 있다. 첫사랑이었고, 해명할 수 없는 사소한 이유로 헤어진 연인이 있다. 헤어진 순간 아팠고, 시간이 지나도 그 아픔이 잘 아물지 않았던 한 여자가 있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많은 기억을 지우려 애를 썼고, 애를 쓴 만큼의 기억을 버린 여자가 있다. 때로 떠난 남자의 꿈을 꾸기도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눈동자 하나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꿈에 부쩍 자주 옛 애인이 나타난다. 수 년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옛 애인의 영상에 당황하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처럼,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을 상상하는 것, 그런 연인의 가능성들을 점치는 것, 그 가능성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일한 위안이다. 그런 연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라는 위안, 자신의 미망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위안, 남들도 그러하리라는 위안.
그런 여자가 있다고 하자. 칠 년이나 팔 년쯤 연애를 하고, 얼추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어도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고 치자. 새로운 연애를 하려 할 때마다, 유령처럼 혹은 테러범처럼 나타난 옛 연인의 기억에 일격을 당하는 여자가 있다고 치자. 여전히 꿈속에서 옛 연인의 얼굴을 보고, 가끔은 울며 깨어날 때도 있는 여자가 있다고 치자. 그 여자가 위안하는 것이라고는 객관화하고 상상하는 일이라고 치자. 그 여자가 너무 미련한가? 너무 멍청한가? 너무 바보 같은가?
천운영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들을 기억하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