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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리아나" 석유 재벌의 합병은 어떻게 자살 테러의 씨앗이 되었나?

손일환 |2006.09.19 22:51
조회 43 |추천 0

의 오일 정치학 석유 재벌의 합병은 어떻게 자살 테러의 씨앗이 되었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국제적 음모를 추적하는 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적확한 형식으로 묘사한다. 낯선 인물들, 알지 못했던 사실들, 모호한 세계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테러와 중동 정책을 다룬 근래 할리우드영화 중 가장 정교하고 급진적이다.

 

‘석유를 알면 미국의 대외 정책이 보인다.’ 1990년대 초, 걸프전이 발발한 뒤 10여 년 동안 국제 정세를 분석해온 애널리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던 말이다.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페르시아 만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것"이라며 "미국을 공격하는 국가는 군사력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통해 격퇴될 것"이라고 서슬 퍼런 '카터 독트린'을 공표했다. 이 위협적인 선언을 시험하다 실제로 격퇴 당한 나라들도 부지기수다. 이라크는 그 대표격이다. 미국이 일으킨 무수한 전쟁과 테러의 배후에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천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연료전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걸프전과 이란으로 대표되는 중동 국가에 대한 경제 봉쇄, 9.11 테러, 이라크전 등이 모두 ‘석유’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최근의 사건들이다. 심지어 분석가들은 “한국인들은 북한이 산유국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이 석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라크처럼 침공을 당하거나 지금보다 더한 압박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알려진 조지 부시의 갈지자 행보는 이 같은 심증을 확실하게 굳혀준다. 지난해 말 "이라크전은 그릇된 정보에 기초해 시작한 전쟁"이라고 말해 스스로 판단착오를 실토했던 그는 얼마 전, 이라크전 개전 3주년 논평에서 "3년 전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한 건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라는 말로 입장을 번복했다. 전쟁의 목적에 대한 끝없는 회의 속에 '중동의 석유'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이 직면한 가장 위태롭고 도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이라크전이 미국의 석유 창고 확보를 위한 경제전쟁이었음이 드러난 상황에서 누구보다 민감하게 여기에 반응하고 있는 것은 할리우드의 양심적 감독들이다. 미국의 정,재계와 중동 오일 황제들과의 뿌리깊은 유착 관계는 에서 마이클 무어가 이미 보여준 바 있으나 무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9.11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들이 부시 일가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인척들이었다는 발상이었다. 석유와 테러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루지만 의 관심사는 더욱 사실적이고 그래서 충격적이다.

 

은밀하고 모호하게

 


 

 

짙은 안개가 낀 어슴푸레한 새벽녘. 버스 한 대가 도착하자 무리를 이룬 아랍인들이 서로 버스에 먼저 오르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서로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이들을 보여주던 카메라, 이번에는 낯설고 생경한 그들의 얼굴을 정면에서 잡는다. 일견 기괴해 보이는 이 장면은 어떤 의미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한 의 오프닝 신이다. '낯설음'과 '모호함'이야말로 와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지금, 이곳의 세계'를 설명해주는 말이다. 는 초국적 석유 재벌의 야욕과 미국 정부의 오일 확보 정책이 어떻게 테러와 연결되는가를 밝혀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성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불가해한 사건들을 다룬다. 로버트 베어가 쓴 소설 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을 지닌 인간들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군상형 플롯'을 채택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석유 확보를 위해 합병과 국제적인 음모를 꾸미는 초국적 석유 기업 코넥스, 코넥스의 합병 과정을 조사하게 된 흑인 변호사 베넷 할리데이(제프리 라이트), 아랍인들에게 미사일을 밀매하는 CIA 요원 밥 반즈(조지 클루니), 개혁을 통해 저개발의 중동을 각성시키려는 석유 왕국의 왕자 나시르(알렉산더 시디그), 그의 경제자문 역할을 맡게 된 스위스의 독일계 에너지 회사 직원 브라이언 우드맨(맷 데이먼), 조직에 충성했던 요원을 제거하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아랍국 왕자 나시르를 제거하려는 CIA, 그리고 코넥스의 합병으로 실직자가 된 뒤 영혼의 삶을 희구하게 된 자살 테러리스트 와심 아흐메드 칸(마자 무니르). 에는 이 모든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분리된 삶은 동시대의 좌표 안에서 기묘하게 교차한다.

 

 

스티븐 개건 감독은 첫 영화 의 자료 조사를 하면서 초국적 석유 산업의 음모에 대해 난생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워싱턴과 펜타곤에서 반마약정책을 펴고 있는 관리들을 만나면서 마약 밀매와 석유 산업에 작용하는 힘의 역학 간에 묘한 유사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펜타곤의 반테러리즘과 반마약정책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됐다. 미국인들의 '중독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에 미국이 걸린 가장 거대한 중독증 중 하나는 어떻게 싼 외국 석유를 낚을 것 인가였다. 스티븐 개건이 묘사하는 세계는 은밀하게 정보들이 유통, 거래되며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하는 세계다. 다중 내러티브를 통해 는 석유 산업의 내적 동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해부하듯이 파헤치고 있다. 새로운 석유 공급원을 얻기 위해 벌이는 국가 간 힘 겨루기,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 첩보전, 막대한 이권을 노린 석유 기업들의 반칙 합병, 국적을 초월한 국제 경제 전문가들의 합종 연횡, 그리고 이 거대한 파워 게임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 제3세계 테러리스트의 또 다른 전쟁까지. 1976년부터 1997년까지 중동에서 활동했던 원작자 로버트 베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를 읽고 감독 개건은 '석유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발광적으로 중독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는 근래에 나온 포스트 9/11 세계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 중 하나다. 이 영화가 생생한 보고서 혹은 신빙성 있는 음모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생생하게 그곳의 현실을 체험한 중동 스페셜리스트의 육화된 경험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원작자 로버트 베어는 영화를 위해 자료 조사를 하고 있던 스티븐 개건 감독에게 중동의 친분 있는 인사들을 소개시켜줬다. 그 안에는 석유 사업가, 무기상, 스파이, 그리고 심지어 무장 이슬람 단체인 헤즈볼라의 지도자까지 포함돼 있었다. 영화 안에 묘사된 다종다기한 인물들로 태어난 이들의 커넥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호한 가치체계 속에 굴러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거기엔 선인도 없고 악인도 없으며 긴박해 보이는 문제에 대한 어떤 대답도 없다. 인물들은 전통적인 캐릭터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스토리는 산뜻하게 이해되지 않은 채 질문을 남기며 끝난다. 흡사 오프닝 장면에서 보인 불가해한 아랍인들의 표정만큼이나 세상은 모호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상황과 복잡성, 모호성을 보증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들을 공존시킨다. 온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합병을 이룬 석유 기업의 음모를 폭로하는 듯하지만 결국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없는 변호사 베넷 할리데이, 석유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됐다 자살 테러리스트로 변신하는 파키스탄 청년, 무기 밀매로 사리사욕을 취하다 테러의 빌미를 제공하고 조직에게 버림받은 CIA요원 등 어떤 누구도 진실을 대변하는 승자는 아니다.

 

Blood for oil

 


 

 

는 수십 년간 미국의 국제정책에 일관되게 관철돼온 '오일 정치학'의 최신 버전을 보여준다. 미국인들에게 석유는 삶의 문제요, 생존의 문제다. 미국은 전 세계 산유량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최대 소비국이지만 그중 53%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임을 자임할 수 있는 근거는 '석유 조절 정책'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에는 "중국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이유는 산업의 발전 속도만큼 석유 조달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오일의 세례를 받은 나라였다면 벌써 미국을 앞질렀을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에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75% 이상이 몰려 있는 페르시아 만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착이 이해가 된다.

 

 

3년 전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전 세계 반전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오일을 위한 피는 이제 그만!(No Blood for Oil!)'이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소유를 빌미로,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그룹 알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을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부시 행정부의 진짜 속셈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은 이라크의 석유 때문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다. 1990년 첫 번째 걸프전이 발발한 이후 석유는 피를 부르는 화약과 같았다. 90년대 이후 미국 대중동정책의 관용구가 된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중앙아시아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등 카스피해 연안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석유라는 키워드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는 피보다 진하고 귀한 액상 천연 자원을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건 미국의 무자비하고 비타협적인 전쟁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페르시아 만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개발에 실패한 글로벌 석유 그룹 코넥스는 일개 기업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을 넘어선 초국적 이익집단이다.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국가기관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들의 하수인이 이 초국적 석유 그룹을 위해 합동작전을 벌인다. 미국의 석유 자산을 늘리기 위한 사적, 공적 사안은 테러도 불사하는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 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익을 위해 모든 걸 거는 미국인들의 일치된 성향을 보여준다. 하물며, 코넥스와 킬린의 합병 과정을 조사하던 변호사 베넷과 그를 추궁하던 법무부 관료마저 합병을 승인할 수 있는 선에서 희생양을 만듦으로써 잡음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에서 마약에 중독된 미국인들의 의식을 보여줬던 스티븐 개건은 에서 석유에 중독된 미국인들의 행태를 관찰한다. 여기서 중독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석유 이권을 위해 코넥스와 킬린의 합병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횡령한 거간꾼 달튼은 자신을 찾아온 변호사 베넷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패가 우리의 방패 아닙니까. 부패는 지금까지 우리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호해줬어요. 부패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 단호한 어조에 아연실색할 지경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스스로 포기한 이 같은 발언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타락한 경제 사기꾼들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에 석유 이권을 넘기려 하는 중동 국가의 개혁적 왕자 나시르를 암살하고 허수아비 친미 정권을 세우려는 CIA도, 막대한 이권을 위해 제3세계 노동자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면서 '소비자들에게 싼값에 석유를 공급할 수 있는 소임' 운운하는 석유 기업도 모두 부패의 수혜자들이다. 부패의 수혜자들은 석유 때문에 피를 본 사람들, 석유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석유 때문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눈물을 대가로 기름을 얻는다.

 

모든 건 연결돼 있다

 


 

 

멀게는 로버트 알트만의 에서 가깝게는 폴 해기스의 까지, 90년대 이후 영화 내러티브 작법에서 군상형 인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활개치는 '다중 플롯 드라마'는 유행처럼 번져갔다. 알트만과 타란티노의 적자를 자처하는 감독들이 앞다투어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한 까닭에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멀티 플롯 영화의 범람은 형식의 진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개중에는 드라마 구조가 지닌 미덕을 영화의 테마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분산된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는 방식이 얼마나 기발한가, 연결에 개연성이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나뉘어진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수법이 어떤 주제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가 첫 번째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다중 플롯의 조직화라는 점에서 는 도전적이다. 일차적으로 다중 내러티브를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중동과 오일 산업 활동가들의 망에 대한 이해다. 석유를 둘러싼 정세라는 좌표에서 선택한 사안들은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동된다. 개건은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진행된 사전조사를 통해 미국 내 산업 시스템의 내적 작동, 원유 산업을 구성하는 힘의 역학과 그 고리를 면밀히 추적했다. 원작자 로버트 베어의 살뜰한 안내를 받으며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레바논, 두바이, 시리아 등지를 돌았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스티븐 개건은 시선에 따라, 이해관계와 관점에 따라 동일한 사안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놀라움을 관객들에게 체험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고안하기로 했다. 산개한 플롯들의 교차와 연결을 통해 주제가 드러나는 방식은 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개건의 장기다. 감독으로서 스티븐 개건의 능력은 하찮은 사건부터 거대한 정치, 경제적 현상까지를 관통하는 질서와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예민한 감식안에 있다.

 

 

에 이어 는 '보이지 않는 힘들이 작동하는 세계는 모종의 커넥션 속에 굴러간다'는 인식을 재확인시킨다. 그러나 폭력의 뿌리를 용감하게 건드리는 대담성은 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역시 파편화된 세계와 그들 사이의 연결을 보여주는 형식이었으나 는 이와도 조금 다르다. 예컨대 미사일과 석유, 테러, 돈, 가족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이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많은 개별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미국 석유 회사의 합병은 3만7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뒤흔들고 석유 가격 상승으로 아시아에 오일 쇼크를 야기하며, 이란, 터키,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160여 개국의 국내 정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영향관계는 예상가능하고 분석가능한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짜 혜안은 그 물밑에서 벌어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 영향관계들에 대한 탐사와 추측이다. 단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테러의 순환고리에 대한 절묘한 시각이다. 스티브 개건은 의 영감이 9.11 테러에서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영화에는 세 가지의 테러가 있다. 이란 테헤란에서 CIA 요원 밥이 미사일을 팔아 넘긴 뒤 무기밀매상들의 자동차를 폭파시키는 테러가 첫 번째, CIA가 반미적 개혁 성향이 강한 중동 국가 지도자 나시르를 사막 한복판에서 위성 추적으로 암살하는 테러가 두 번째, 그리고 코넥스 사의 합병으로 직장을 잃고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가 된 와심 칸이 밥이 밀매한 미사일로 벌이는 테러가 세 번째다. 세 종류의 테러에 모두 연루되는 인물은 밥이다. CIA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는 나시르의 암살을 막기 위해 맹렬하게 달려가지만 끝내 테러를 막지 못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자신이 팔아 넘긴 미사일이 자살 폭탄 테러에 사용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버린 조국에 타격을 가했으니 밥은 복수를 한 것일까? 한때 그 자신도 가담했음직한 방식으로 처단된 나시르의 암살은 밥의 업보일까?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신가?

 


 

 

의 객관화된 태도는 각성과 성찰과 우리를 이끈다. 인종과 계급, 국경을 가로지르며 얽혀 있는 이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되돌아보게 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달고 가는 내러티브 단편들의 연결만큼이나 주목할 것은 이들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연결이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숨가쁜 국제 전쟁을 묘사하는 와중에 영화가 끈질기게 보여주는 것은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가족'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에서 보여준 테러와 가족의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변형하고 있다. 네 주인공들의 사적 영역은 문제적인 가족의 풍경을 통해 묘사된다. 수영장에서 감전사한 우드맨의 아이, 무능한 아버지를 부양해야 하는 와심 칸의 딱한 처지, 갈 곳이 없어 아들의 집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베넷,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떠돌이 삶을 살았던 과거를 끔찍해 하는 아들과 소원한 관계에 놓인 밥의 모습 등이 그러하다. 이들의 가족사는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석유 전쟁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스티븐 개건은 가장 일상적인 개인사 역시 석유 산업, 테러리즘, 중동 민주화 등의 이슈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밥에게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중동에서의 무기 밀매와 연결돼 있다. 우드맨 아이의 참사는 철없는 중동 왕자의 말 한마디가 빌미가 됐으며 와심은 아버지 부양을 위해 직장을 구하다 자살 테러에 가담한다. 이 거대한 국가적 음모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으며 누구나 가족의 안위를 원한다. 공적인 임무를 마치고 그들이 돌아가는 곳은 늘 가족이 있는 집이다. 집을, 가족의 안녕을 지키려는 마음은 국가의 이익과 안녕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자란다. 영화의 결말은 우드맨의 가족으로의 귀환과 소원했던 베넷 가족의 화해를 암시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완전하고 무결한 토대 위에 건설된 가족일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가족이 살아야 자신의 가족도 안전하다는 관념은 다른 어떤 가족의 희생을 대가로 삼은 결과임에 분명하다. 베넷과 우드맨 가족의 회복 뒤에 이어지는 장면, 즉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별을 뒤로 한 채 자살 테러에 나서는 와심의 담담한 최후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가치로 뒤범벅된 세계의 진경을 보여준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면, 모든 걸 완전히 끝내지 않음으로써 아주 다른 방식으로 얻을 게 남아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뿐이다. 이 순간 점점이 박힌 이야기 단위들의 점묘화처럼 보였던 는 정교하게 스케치된 우리 세계의 세밀화로 바뀐다.

 


 

장병원 기자

 

기사제공 : 필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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