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중국여행 앞에 웰빙이란 말을 쓴 이유가 있다. 그건 중국 각 지방의 도시들이 아직 현대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숙박업소나 식당을 잘못 택할 경우 중국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 사람은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텔인데 가능하면 3성급 호텔 정도를 잡는 것이 좋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대부분 식당도 함께 있다. 배낭여행자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론리 플래닛-중국’편을 보면 지역별로 갈만한 호텔들을 소개해 두었는데 식당은 소개되어 있어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호텔은 대부분 책에 소개된 대로 오래 존속하기 때문에 믿을만하고, 전화로 예약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많이 선택하는 패키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3성급 이상의 호텔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식사의 경우는 여행사에서 제시하는 매끼 식사 가격이 대부분 5천원 이하일 경우가 많다. 중국실정 상 5천원 이하라 하더라도 좋은 식사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히 고급 식사를 즐길 생각이 있다면 5천원을 초과하더라도 좀 더 가격을 높여 세계최고라는 중국요리를 고급으로 경험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돈 많이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사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한국에서 컵라면이나 김치, 고추장 등을 준비해 가면 음식 맛이 맞지 않을 경우에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식사 중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 기름기가 많은 중국요리를 먹는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패키지가 아닌 경우는 론리 플래닛 책자에서 호텔 중에서도 음식 맛이 좋다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태산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동성에 위치해 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의 문인 양사언의 시조를 보지 않더라도 태산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갈수록 태산’, ‘걱정이 태산’, ‘할 일이 태산’ 등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산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5대 명산을 「五岳(오악)」이라 하였는데, 東岳(동악)인 산동성의 泰山(태산), 西岳(서악)인 섬서성의 華山(화산), 中岳(중악)인 하남성의 崇山(숭산), 南岳(남악)인 호남성의 衡山(형산), 北岳(북악)인 산서성의 桓山(항산)이 오악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태산은 「五岳之長(오악지장)」이니 「五岳獨尊(오악독존)」이니 하여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제왕이 이곳에서 하늘의 뜻을 받는 封禪(봉선)이라는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이 산은 신령스런 산으로서 태산에 한번 오르면 지상에서 적어도 10년을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태산등정이 숙원이었다고 한다.
해발 1천5백32m의 산으로 등산이 시작되는 岱宗坊(대종방)으로 부터 정상까지 약 9km고 등산에는 5~6시간이 소요된다.최근에는 케이블카로 오르는 경우도 많아 케이블카를 탈 경우 하차지점부터 정상까지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태산은 사실상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다.
하지만 옛 시구절이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높다고 표현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직접 올라보면 알게 될 것이다. 중국에는 산이 많지 않고 평야지대가 대부분이다. 태산은 그런 평야지대에 갑자기 불쑥 솟아 있어 더 높게 보이는 산이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저지대의 평원을 굽어볼 수 있고 그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진시황 이후 모두 72명의 황제가 하늘의 뜻을 받는다는 봉선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황제들 사이에는 태산에 오르지 못한 황제도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는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거행해야 하늘에서 윤허를 받은 황제로 그렇지 못한 황제는 정통성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하니 중국 사람들에게 태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틀림없다.
태산은 등산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태산을 정식으로 오르기 시작한다는 일천문에서 산꼭대기에 있는 신전인 碧霞祀(벽하사)까지 7천4백12개의 돌계단이 가파른 비탈을 따라 이어져 있다. 멀리서 그것만 바라보아도 장관이고 어떻게 사다리처럼 세워진 저런 곳을 오를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9km나 되는 등산로 양쪽에는 역사상 유명한 명필들이 남긴 글씨가 새겨져 있는 비석들이 늘어서 있다. 등반 중에 1천4백 년 전 바위에 세긴 金剛經(금강경)도 볼 수 있다.
또한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했다는 노송이 있는 五松亭(오송정)이 있다. 진시황은 이 소나무에 오대부라는 작위를 주었다고 하는데, 사실 소나무는 2천년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 있는 소나무는 그때의 소나무가 아니고 후대에 심은 가짜 혹은 짝퉁 소나무일 것이다. 세상에 이런 곳에도 짝퉁을 만들다니 하하! 알고 보니 이 나무는 청의 옹정(雍正)황제 8년(1730년)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정상까지 가면서 7412개의 계단의 끝인 남천문과 벽하사, 옥황사원을 볼 수 있다. 정상은 천주봉이다.내려오는 길은 좀 더 여유 있고 쉽게 올 수 있다.
태산의 일출을 감상하고 싶으면 정상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숙박비가 좀 비싸긴 하지만 일몰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성수기 때는 사람들이 붐빈다.
태산을 가기 위해 묵는 태안은 기차역이름을 태산으로 바꾸면서 관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태안에는 태산의 신을 모시고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대묘(岱廟, 따이미아오)가 있다.
대묘 안에 있는 天皇殿(천황전)은 북경의 고궁이나 曲阜(곡부)의 大成殿(대성전)에 비길 수 있는 중국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태산에 오르기 전이나 다녀온 후에 감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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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는 공자의 고향이다.
태산의 도시 태안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공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유교의 개조이자, 동양 최고의 성인으로 꼽힌다. 여기서는 공묘, 공부, 공림의 세 유적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공묘는 공자의 사당으로 사당으로서는 세계최대 규모이며, 북경의 고궁, 태안의 대묘와 함께 중국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공자가 타계한 다음 해에 제자들이 공자가 직접 강의하던 자리에 사당을 지은 것이 시초가 되어 공묘가 되었다고 한다.
공묘는 과거 황제만이 쓸 수 있었던 궁전의 양식을 쓰고 있고 오래된 명필이 조각된 비석들이 즐비하다. 공부는 황제가 공자의 후손들에게 제후의 자리를 주었는데 바로 후손들이 공무를 보며 생활하던 곳이다.
공림은 공자와 후손들의 묘가 있는 20ha나 되는 울창한 숲이다.
공자의 후손들이 공자를 왕으로 모시기 위해 비석의 마지막 글자에 ‘王’자를 쓰고 또 황제에게 발각되지 않게 ‘干’자처럼 써놓고 내리긋는 획을 길게 써 밑에서 ‘왕(王)’자를 완성하고 제를 올리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가려놓은 것이 재미있다.곡부를 돌아보면 공자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고,
또 문화대혁명 때 공자가 박해받은 흔적도 비석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오늘날 중국에서 왜 유교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공자의 도시답게 고전적인 건축물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자동차와 마차, 인력거, 자전거 등 100년에 걸친 교통수단이 한 도로에서 조화롭게 다니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곡부에는 闕里賓舍(궐리빈사)라는 유명한 호텔이 있다. 곡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고전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투숙객들을 흡족하게 하고 음식도 정갈하다. 곡부의 저녁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호텔에 문의하면 화려한 중국의상과 가무를 뽐내는 공자연극을 감상할 기회가 있다.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런 경험이 될 것이다.
곡부에서 멀지않은 인근 추성시에 亞聖이라 불리는 맹자의 묘와 사당도 볼 수 있어 산동성은 유교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성지순례를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행객 중에 삼베옷을 입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어르신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산동성에 오시면 꼭 태산과 곡부, 추성 등지에 들러 관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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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살아남기” 한꺼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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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의 싸이홈피(/www.cyworld.com/rak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