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이래 지금과 같이 과학계에서 일어난 일이 매스컴의 중요한 부분을 모두 도배해 버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황우석 박사의 연구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연관이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저도 그 분야연구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극히 제한된 정보로 인하여 진위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좀 더 두고 보자”라는 말 외에 더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활자화된 매체에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한 직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엉터리 업적은 학문 발전에 해만 될 뿐 이로운 점은 없을까요? 또 엉터리 업적으로 인하여 학문이 더 발전한 경우나 또는 엉터리 업적이 학문발전을 가로막은 경우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이제부터 여러 회에 걸쳐 엉터리 연구업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강조할 점은 “엉터리”라는 것인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엉터리”일 뿐이지 진리와는 반드시 어긋나는 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라는 것도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진리”일 뿐이지 이것이 진짜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암은 왜 생길까?
아무리 의학이 많이 발전했다 해도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공포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암으로 인하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매스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암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기에 앞서서 일단 공포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암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질병의 하나입니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좋은 치료나 예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할 텐데 오늘날에는 수많은 발암 원인이 알려져 있지만 인류역사 최초의 발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림 1. 담즙 이상으로 암이 발생한다고 생각한 갈레노스)
문헌에 남아 있는 최초의 발암 원인은 담즙에 이상이 생겼을 때 암이 발생한다는, 현재의 생각으로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황당한 이론이었습니다. 고대 의학에서 히포크라테스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30~201?)는 히포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체액을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증 등 네 가지로 분류한 후 그 중 황담즙의 이상에 의해 암이 발생한다는 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신학이 학문의 중심이던 중세 내내 그의 학문적 권위가 절대적으로 유지되었으므로 이 주장은 1,000년이 훨씬 지나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습니다.
학문적으로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몇몇 후계자들은 암의 원인을 비도덕적 행동이나 우울증, 성행위, 혹은 금욕(독신주의자의 경우)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단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이며, 학문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은 갈레노스의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가기 시작한 르네상스시기를 지나면서 발암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비르효의 자극설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직접 밝힌 자신들의 전공과목은 어느 과목이 가장 많을까요? 아마 맞추기 어려우실 텐데 정답은 “의학”입니다. 어떻게 의학이 한 개의 독립된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하실지 모르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과 같은 학문분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설이나 어록을 보면 자신이 “의학자”라고 한 경우가 생화학이나 생리학이라고 한 경우보다 훨씬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자신을 의학자라고 하는 경우가 없지만 말입니다.
중세가 끝나고 근대로 접어들면서 해부학, 생리학, 미생물학 등에서는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종양학 분야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단지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 또는 “의학의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진 19세기 의학계의 수퍼스타 비르효(Rudolf Virchow, 1821~1902)가 등장하여 물리적 또는 화학적 자극이 한 부위에 지속되면 그 자리에 암이 발생한다는 “자극설(irritant theory)”을 주장하면서 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한 정도였습니다.
(그림 2. 자극에 의해 암이 발생한다고 생각한 비료효)
비르효는 파스퇴르 등과 더불어 19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의학자일 뿐 아니라 인류학, 고고학 등의 분야에서도 학문을 창시하는 것에 가까운 훌륭한 업적을 남겼고, 정치가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었습니다. 의학 분야의 업적으로는 백혈병에 관해 처음 기술한 것을 비롯하여 색전증과 혈전증에 관한 실험적 연구, 폐결핵, 두개골에 생긴 혈종, 뇌혈관과 임파계에 관한 연구를 했고, 그 때가지 행해지던 육안적 관찰 위주의 병리학을 현미경을 이용한 세포의 관찰로 전환하여 병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질병을 세포와 같은 미세한 신체부위의 이상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를 통해 현대 면역학의 기초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미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때때로 학문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엉터리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세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는 말년까지 미생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베링에 의해 디프테리아의 혈청요법이 가능해진 후에야 미생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결핵이나 디프테리아에 대한 잘못된 이론을 내놓기도 했고, 진화론에 대한 엉뚱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창한 암 발생의 자극설은 기계적, 온열적, 화학적인 자극이나 방사선으로 인체의 어느 부위를 지속적으로 자극시키면 생체에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는 변화가 생겨 암이 발생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 학설은 그 때까지 방사선학자, 굴뚝청소부, 화학제품제조과정에 종사하는 노동자 등에서 암이 잘 발생하는 것을 관찰하여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동물 실험을 통해 지속적인 자극이 암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는 못했습니다.
콘하임의 배세포설
자극설이 수십 년간 의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과 달리 잠시 나타났다가 일찍 사라져버린 초창기의 발암설중에 배(아)세포설(embryo theory)이 있습니다. 배세포가 발생 단계에서 어느 특정 부분을 이루는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생성될 때 이 부위에 생식세포가 과다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암으로 발전한다는 이론인 배세포설은 비르효와 같은 독일의 콘하임(Julius Friedrick Cohnheim, 1839~1884)이 주장한 것입니다.
베를린 대학을 졸업한 후 병리학을 전공한 콘하임은 킬 대학, 브레슬라우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 등에서 병리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오늘날 암을 분류할 때 흔히 사용하는 carcinoma와 sarcoma를 최초로 구분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그는 백혈구가 혈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혈관이 없으면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 ,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갑상선암을 처음으로 기술한 독일 병리학자 아스카나지(Max Askanazy, 1865~1940)는 배아조직을 이식한 실험용 쥐에서 암세포가 자라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콘하임의 이론을 뒷받침해 주었으나 다른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발생학자 비어드(John Beard)는 1902년에 배세포설을 변형한 영양층 이론(trophoblastic theory)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연구를 계속하여 1911년에 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저서 를 발표했지만 이 책 역시 다른 의학자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극소수의 지지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었습니다.
콘하임 미아설이라고도 하는 배세포설이나 영양층 이론은 후속 연구결과를 얻지 못한 채 단지 학설에 머물고 말았다고 해야겠으나 최근에 와서 암이 줄기세포 단계에서 발생한 이상에 의해 유발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으니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으며 조만간 콘하임의 배세포설이 유력한 발암원인으로 등장하고, 콘하임이 선구자로 부각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림 3. 미생물학의 아버지 파스퇴르)
미생물 발암설
19세기 후반부는 “미생물학의 아버지”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의 활약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이 사람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이 문자 그대로 세상을 바꾸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뒤이어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등장하여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를 찾아내기 시작하면서 어떤 질병이든 원인이 되는 병원체를 찾아내어 그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와도 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예방하거나 병을 일으킨 후에라도 그 병원체를 사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미에 당기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특정 미생물에 감염되면 이 미생물이 사람에게서 암을 발생시킨다는 미생물 발암설은 자극설과 함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가장 흥미를 끌었던 발암 설이었지만 1910년에 발표한 라우스의 논문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는 세균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은 사용되고 있는 시기였지만 바이러스를 들여다볼 수 없는 현미경은 없던 시기였으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균이 암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증명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림 4. 바이러스에 의해 암이 유발됨을 증명한 라우스)
바이러스가 암을 발생시킨다는 라우스(Peyton Rous, 1879~1970,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연구는 닭다리에서 sarcoma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것이지만 현미경으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었으므로 20세기 중반에 바이러스학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한 후에야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어 업적 발표 후 56년 만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지금까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업적중 논문 발표 후 가장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화학적인 자극에 의해 암이 발생한다는 것이나 배세포에서 유래하여 암이 발생한다는 설, 또 미생물이 암을 일으킨다는 이론은 20세기가 중반부를 향해 치달을 때까지 이론으로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늘날이야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적어도 4가지 알려져 있지만 아무리 실험적으로 닭다리에서 암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되는 미생물이 검출된다고 해도 인체 실험을 해 볼 수는 없었을 것이고, 사람의 암 조직에서 분리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을 실험동물에 주입하여 암을 발생시킨 예도 없었으니 미생물 발암 설은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세포설도 역사 속에 잠시 나타났다가 지하세계로 숨어버린 학설이 되었고, 자극설도 다음에 소개할 기생충 발암설이 아니었다면 일찍 사라졌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정상세포를 계속해서 자극하면 암세포로 바뀌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정 화학물질의 자극에 의해 암이 생기는 것을 제외하면 비르효의 자극설도 진리라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라우스의 바이러스 발암설이 지나간 3년 후 화학물질에 의한 발암설과 기생충에 의한 발암설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