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앞에서 소녀 팬들이 괴성을 지르다 졸도하는 장면은 팝 음악 또는 영화 록 음악의 무대에서만 발견되는 히스테리적 광경이다. 비틀즈, 마이클 잭슨 등이 그런 장면 하면 떠오르는 스타들이지만 그 부분의 원조는 역시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50년대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엘비스 이전에 십대 소녀의 아우성과 기절 소동을 일으킨 스타가 분명히 있다. 그 주인공은 40년대 빅 스타 프랭크 시나트라가 되는 셈이다.
40년대를 통해 그는 여성팬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42년 그가 '타미 도시와 그의 오케스트라'의 싱어로 활약하면서 누욕의 파라마운트 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가졌을때 수많은 여고생들이 입장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당시는 '빅 밴드' 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었지만 소녀들은 빅 밴드의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젊고 깡마른 가수를 보려고 벌떼처럼 몰려든 것이다.
그가 무대에서 입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객석의 십대 소녀들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복도에서 졸도하기가지 했다. 물론 이때 졸도한 소녀들 가운데는 홍보의 일환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도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져 '흠집'을 남겼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현대의 '팝 히스테리'가 탄생된 순간이었다. 44년 10월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공연에서는 무려 2만 5천명의 틴에이저들이 거리를 막고 아우성치는 대소동이 일어나 십대 우상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재확인되었다. 그래서 한때 시나트라는 '졸도 유발의 황제' '수백만을 전율시키는 목소리' 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젊음의 음악인 록 음악이 아닌 당시의 팝, 그것도 '어른적인' 스탠다드 팝을 가지고 소녀 관객의 흥분을 자극했다는 점은 실로 기념비적이었다. 그만큼 그는 충분한 매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때는 전시였고 남자들은 끌려가 없고 여성들 가슴에 고독이 엄습해 왔을때 '이웃집 청년'같은 그는 알맞은 해소 상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히트송 레퍼터리는 나열이 벅찰 정도로 무수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것이다. 원래는 프랑스 생송으로, 라스베가스에 함께 출연하고 있던 폴 앵카가 은퇴를 앞둔 시나트라를 위해 영어 가사를 붙여 개작해준 곡이다. 시나트라의 인생이 그려진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그다지 크게 히트하지 못했으나, 영국에서는 40워권내에 무려 122주간 랭크되는 전무후무한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로 이생을 정리한 그는 70년 은퇴를 공식 선언했으며, 71년에는 화려한 고별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불과 2년 후인 73년 그 결심을 번복하고 다시 팝계에 복귀해 노래와 연기를 계속했다. 그러한 것이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