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오늘 선배가 강의 한 시간쯤 늦을 거 같다고 해서
수업시간에 미리 들어갔어요.
난 국문과 조교구, 선배는 아주 유명한 젊은 소설가예요.
한 시간동안 제가 때울 만한 꺼리는 아무것도 없었구요,
창밖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해서
모두에게 비에 관한 한번 얘기해보자고 했어요.
소설 창작 시간이라 뭐, 그런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았거든요.
근데 쑥스러운 듯 아무도 얘기를 시작하질 않아서
저는 땀을 조금 흘리다가 제 얘길 먼저 꺼냈죠.
비가 많이 오는 날, 경부선 기차를 탔다가
부산에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냥 다음 차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근데 제가 그 얘길 하는데 유난히 웃어대는 한 여학생이 있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저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후배였어요.
그래서 전 그 여자 후배에게 정중히 다음 얘길 부탁했죠.
내 얘기에 웃었으니까 이번엔 그쪽 차례라고...
근데 아무 말 못하고 얼굴만 빨개져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거예요.
누구는 지난 사랑에 대해서 얘기했고,
또 누구는 비로 청바지가 흠뻑 젖었는데 저울에 달아보니까
자그마치 7킬로그램이 더 나갔다는 얘기...
비의 가느다란 입자들이 마치 강의실 안을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50분만에 선배가 학교에 거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고,
저는 슬슬 정리도 할 겸 해서
마지막으로 더 얘기할 사람 없냐고 물었거든요.
근데 그때 아까 그 후배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거예요.
그 여자...♀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집에 내려가는 기차에서였어요.
내 맞은 편에 앉아 졸고 있는 한 남자를 봤죠.
정말 그 사람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자고 또 자고 그랬어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밤을 꼬박 새운 걸까...?'
어느덧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했어요.
종점까지 왔는데도 일어날 줄 모르는 그의 어깨를 툭 쳤더니
뜨거운 것에 데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눈을 비비더군요.
부산역에 내려 돌아가는 열차편을 예매하려고 창구에 줄을 서있는데
아까 그 사람도 제 뒤에 서더라구요.
제가 표를 끊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 사람이 창구 직원에게 이렇게 외치는 소릴 들었어요.
"지금 출발하는 서울행 기차표 한장 주세요."
난... 순간, 발걸음을 멈췄던 것 같아요.
'여섯시간을 달려와서 이렇게 금방 돌아가는 이유가 뭘까...?'
너무 궁금했어요.
난 그 사람의 얼굴을 그제서야 자세히 본 거 같아요.
순간, 그 남자의 모든 것들이 궁금해진 나머지 겉잡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난 내가 본 그 남자 이야길 소설로 꼭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뒤늦은 나이에 이 대학 국문과에 진학을 했고,
이 학교에서 그 남자... 바로 지금 앞에 서있는 선배를 보게 된 거예요.
내 얘긴, 그게 다예요.
< 이소라의 음악도시 - 그 남자 그 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