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자료: 김영대 님, http://cafe.daum.net/samchasa
중국에서 산삼을 약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5천 년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서력기원 1세기를 전후하여 중국 내에서는 이미 산삼이 남획으로 인해 거의 멸절되어 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나라 시왕(始王, BC 220년 경)이 방사(方士) 서시(徐示)를 한반도의 삼신산으로 보내서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대적 정황을 엿보게 하는 일화가 아닐까? 그리하여, 자국 내에서 산출되던 상당삼을 최고로 치던 중국인들이 점차 고려삼(한반도 지역에서 생산되던 산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자연스레, 조공무역의 주요 물목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반도 내에서 풍부히 산출되던 산삼도 중국과 한국에서 그 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조선 초기에 접어들어서부터는 급격히 그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공적인 재배가 성행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인삼의 약효 저하를 우려하여 처음에는 이를 엄격히 금했으나 밀경작을 끝내 막지를 못하여 조선 중엽부터는 이를 공적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당시 풍기군수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했던 주세붕이 임금의 윤허를 받아서 전라도 화순현의 동복삼 씨를 구해 가삼을 재배한 것이 바로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삼과 인삼(家蔘)은 어떻게 서로 다른가? 일부 본초학자들은 지금도 그 양자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식물분류학 상으로 동일한 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자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성분의 함유량과 구성 면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즉, 30년 이상 생존한 산삼의 농축분말에서는 153 mg/g의 총사포닌이 추출되었으나 6년 이내에 수확하는 재배삼의 그것에는 겨우 48 mg/g에 불과했다. 또, 산삼의 경우에는 상당량의 사포닌 배당체(일명 특이사포닌)를 함유하고 있지만, 일반 인삼에는 그것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히, 1~2년생의 묘삼이나 조직배양산삼의 경우에는 총사포닌 함량치가 4~6년근 인삼의 1/7 이하로 떨어진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삼의 약효는 그 씨종의 차이보다는 그 생존연한의 장단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인간에 의해 순치된 인삼은 자연적으로 번식된 산삼에 비해 그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30년 이상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30년 이상 생존한 야생삼은 그 씨종에 구애받지 않고 산삼(地種山蔘)으로 대접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